송광사 광원암에서 방장스님이 이끄는 산행을 시작하였다.
며칠 전 비가 와서 땅이 폭신하다. 유골함을 안고 오르는 묵직한 마음을 산이 부드럽게 반기는 느낌이었다. 산입구에 피어 있는 흰 영산홍 꽃을 하나씩 따서 올라가자고 하신다. 발아래 웃자란 쑥, 고사리, 머위 잎이 방해받지 않고 막 자라나 있다. 민들레 홀씨들도 무더기로 드문드문 자라서 몸을 멀리 날려줄 바람 인연을 기다린다. 함께 외며 오르기 시작한 '나무아미타불' 염불이 스님 몇 분들 목소리만 들릴 때쯤 돼서야 방장스님이 걸음을 멈추셨다.
"저기... 굴목재가 보이죠?...
비구 무인 영가여,
여기서 매일 종소리 듣고 더 높은 전당으로 오르시라..."
1주기 추모제, 슬픔의 다음 페이지가 펼쳐지는 시간이다.
헛헛한 아쉬움도 있고, 추억담 끝에 하하 웃기도 하고, 극락왕생을 발원하는 진심도 더 편안하게 숙성되었다. 1년간 유골함을 가까이 두고 계셨던 은사 방장스님의 마음도 그러셨을까. 오늘 1주기에 수목장으로 무인스님을 조계산의 흙, 공기, 물에게 맡기게 되었다.
(스님 평소 위트처럼, 인스타그램샷으로. 마음에 드셔요? ^^)
국내 최우수 템플스테이 기획자
송광사 포교국장 무인스님-
이야기를 만드는, 기획자셨다.
그래서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마다 크고 작은 에피소드들이 있다. 내게는 '텀블러', '손전등','이동식 스피커'와 얽힌 이야기를 남기셨다. 2018년도에 처음 와봤던 송광사에서 이틀간 템플스테이를 마치고 가는 내게 텀블러 있냐고 물으셨다. 마침 가방에 빈 텀블러 병이 있어서 드렸더니 가득히 따뜻한 차를 내려서 담아주셨다. 그리고
"언제 또 보나?"
하고 물으셨다. 그 짧은 말이 울림이 깊었는데, 섭섭치 않은 적절한 말로 대답하고 웃으며 일어났다.
".... 다녀오겠습니다!"
2020년에 다시 한번 템플스테이를 가게 되었는데, 그때 문득 내게 손전등을 하나 선물해 주셨다. 그러며 하셨던 말씀이 이랬다.
"여기에 살려면 이게 있어야 해."
'여기에 산다'는 건 당시에는 티끌만큼의 상상도 못 했던 일인데 말이다. 아무튼 결과적으로 정말 여기에 살고 있다. 그리고 이동식 스피커 이야기는 이렇다. 스님 입적 전 마지막 계절이었던 작년 봄에 내가 불교대학을 다니게 되었는데, 큰 절에 머무는 일정이 생기자 방에서 쉬고 있는 나를 종종 불러내었다. 이동식 스피커를 목에 걸고 스님은 마이크를 들고 설명하는 사찰 안내길을 따라다니게 하셨다. 주로 천년고찰인 이곳의 역사와 건물 등에 대해 알고자 온 단체 방문객들에게 1-2시간짜리 사찰 가이드를 하는 여정인데, 꼬봉처럼 쫓아다녔다. 그때 귀로 발로 알게 된 정보들이 내가 이곳을 애정하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흰 영산홍을 유골함 위에 살포시 얹고 삽으로 흙을 떠 그 위에 뿌렸다. 스님께 감사하다고, 인연이 다음 생에도 이어지면 좋겠다고, 극락왕생하시라고 빌고 빌었다. 하산길에 한 보살님이 말했다.
"올라갈 때는 길더니, 내려올 때는 금세네요."
내려오기 전 굴목재를 돌아보았다.
굴목재는 순천 조계산의 양대 사찰, 송광사와 선암사를 오가던 옛 고갯길이다. 동서로 나있는 6.5km 길 양 끝에 각 절이 있는데 한 곳은 조계종 승보종찰이고 다른 곳은 태고종 태고총림이다. 여러 오랜 이야기들이 있기도 하고, 실제 산 아래 마을사람들까지 파가 나뉘기도 했다고 한다. 이젠 천년불심길이라는 불심 안 날 것 같은 이름도 덧붙여졌지만, 여전히 길은 그대로다. 그 길 사이에 30년 넘게 운영 중인 조계산 보리밥집을 가야 굴목재 힐링이 완성이라는 얘기도 있으니 기억해 두자. 좋고 따뜻한 건 마음에 오래, 기억해 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