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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나물을 먹으며

사이좋게 살아야지

by 여상

[ 산나물을 먹으며 ]


산나물 먹고
산이 되려 하네
산에서 난 봄나물 먹으며
맛나게 살다 보면
내 마음 푸르른 산이 되려나

마음 젖어 강이 되고

노래하며 바람 되고
어느 밤엔 별 헤이다 하늘이 되어
그렇게 잘 살다가

우주가 되어야지


봄숲 들꽃 바람에

새 울음 되었다가

구름이 되었다가

따순 봄비 내리는 날

푸릇푸릇 산나물로 자라나


얼기설기 어우러져

미워하다 이뻐하다

한 그릇 세상사에 버무려져

별 일 없이 살아 가면

것 참 좋은 거지


구성진 산새 소리

햇살이 좋은 날에

한 입 가득 산나물 먹고

청푸른 산이 되고 싶다네





머위가 꽃을 피웠다.

산나물로 밥상이 풍성해지는 계절이다. 방풍, 신선초, 화살나무순, 망초대 등 온 산에 먹거리가 천지이다. 여름이면 백합 닮은 주황꽃을 피우는 원추리와 머위 어린잎도 나물로 무치면 봄향기가 그만이다.


"엄니, 뭐는 먹고, 뭐는 먹음 안 되나요?" 동네 할머니께 여쭌다. "봄에 나는 어린잎은 다 먹어도 돼." 할머니가 빙글빙글 웃으며 대답하신다. 당신께선 척척 구분이 되시기 때문이다. 하지만 곧이곧대로 다 뜯어먹었다가는 큰일이 난다. 독성이 강한 풀들이 더러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산마을에 오래 살았어도 관심을 가지며 직접 채취하지 않으면 새순으로 올라오는 산나물을 구분하기 어렵다. 나도 뚜렷한 몇 가지는 알아보고 채취도 하지만 나머지는 생활장터에서 사다가 먹는다.


음식을 하는 사람들은 잘 알겠지만 산나물 무침요리는 대체로 단순하다. 그럼에도 데치거나 볶기도 하고, 참기름 들기름과 깨를 곁들여 버무리기도 하고, 때론 된장 고추장을 가미해 풍미를 내어 반찬을 만들어 내다 보면 어느새 밥상이 다채롭고 향기롭고 풍성해진다.

나도 오늘 어린 머위 잎을 뜯어다가 절반은 장과 들기름으로 무침을 만들고, 절반은 양파와 함께 너무 짜지 않게 장아찌를 만들었다. 밥을 새로 지어 방금 무친 머위나물을 크게 한 젓가락 입에 넣는다. 입 안에 가득 펼쳐지는 개성만점의 머위향! 행복한 봄의 맛이다. 산의 맛이다.





며칠 전에 동아리에 무언가 분란이 생겼었다. 서로 돌보며 의지하면서 가족처럼 지내는 이웃사촌 간인데, 가끔 자리에 참여하곤 했던 외부사람 하나가 취중에 K선배를 향해 오해의 불씨가 될만한 해프닝을 벌인 것이다. 듣자 하니 경솔하기 짝이 없는 취중 망발들인데, 문제는 근거도 없는 말들 때문에 좋았던 선후배 사이에 균열이 생기게 된 것이다. 특히 성격이 활달한 H누님이 발끈하신 것이다.

다행히도 품이 넓으신 K형님의 아량과 H누님의 찬찬한 이해, Y동생 부부의 진실하고 인내심 있는 대응으로 모든 오해를 풀고 제자리를 찾을 수 있었다. 그리하여 어제 하루는 1차로 Y동생 부부가 마련한 음식을 나누어 먹고, 내친김에 내 식당에서 음식을 조금 더 만들어 늦은 시간까지 술과 대화를 나누었다. 오해가 풀리자 덕담과 칭찬이 오고 갔고, 서로 쳐다보며 많이 웃었다. 모두에게 소중한 시간이었다.


더불어 산다는 것은 조금씩 얼기설기 얽히는 것이다. 얽혀 살다 보면 사소한 오해는 종종 발생한다. 그것이 오히려 인간사에 자연스러운 것이니, 다만 어떻게 지혜롭게 풀어나가는가에 따라서 관계의 지속성이 결정되는 것일 게다. 지혜롭게 얽혀 살면 우리네 삶에 잘 버무린 산나물무침처럼 봄향기와 들기름 꼬순내가 가득할 것이다.




밤이 되자 비가 내리면서 제법 추워진다. 밖으로 나가 신선한 찬공기를 한껏 들이킨다. 산의 초목이 내게 나누어 주는 이 청량한 산소의 값은 공짜이다. 이 얼마나 관대한 선물이며, 소중한 환경인가. 이 아름다운 곳에서 착한 이웃들과 함께 살고 있으니 부족한 나를 얽어준 인연들이 어찌 고맙지 않겠는가.

그러하니 산나물 무침맛으로 살기 위해서는 무지한 사람이 되지 않도록 자주 나를 돌아봐야 한다. 지혜롭진 못하더라도 최소한 방자하진 말아야겠지. 봄산이 자애롭고 넉넉한 미소로 마을을 내려다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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