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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길성 Nov 08. 2023

허물에 익숙해진 삶이 편하다!

나답게 살기가 참 힘든 이유

    행복이나 불행의 원인이 관계에서 비롯된다. 가까운 인연일수록 진한 감정이 느껴지고 크게 다가온다. 내 삶에  미치는 영향이 큰 관계일수록 가깝고 소중한 사람이다. 그들과 맺은 소중한 인연도 챙기지 못하면서 관계에 매일 까닭은 없다는 생각이다. 그동안 삶이 그랬다. 인정과 사랑에 목말라 관계에 의존한 삶이 아니었나 싶다. 혼자 살 수 없다는 이유로 불필요한 인연에 기웃거리며 낭비한 시간이 많았던 것 같다. 관계에 약한 존재가 미숙하고 허술한 관계에 의존한 삶이 아니었나 싶다.


   삶의 성패에 관계가 작용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성공을 목표한 삶이 허망한 까닭이기도 하다. 치열한 눈치 경쟁에서 살아남는다는 자체가 타인의 욕망을 추종한 삶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관계에 기대 살면서 자신의 의지나 양식을 믿고 살아온 것으로 착각하기 때문이다. 돈과 명예, 성공과 성취를 위해 자존마저 잊고 모르고 살아온 지난날이 그랬던 것 같다. 즐겁고 유쾌한 기억보다 씁쓸한 기억들이 많은 걸 보면 그런 것 같다. 어리석고 지우고 싶은 기억에서 달아나고 싶을 때가 많다. 후회와 성찰로 혼자 시간을 보내는 까닭이다.


   내 마음과 달리 요즘 아내는 신바람이 났다. 요즘처럼 아내가 신난 모습은 많지 않았다. 40년 결혼생활에서 그런 기억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아침 등산을 마치면 아내는 세종을 향한다. 생후 5개월 된 손자를 보기 위해서다. 손자를 안아주고 엎어주고 온 날이면 몸이 아파 죽겠다면서 세종은 하루가 멀다 가려고 한다. 웃는 손자를 보면 삶이 행복하다는 것이다. 얼마 전까지 낯가림하던 손자가 요즘은 할머니를 편하게 반겨준다. 좋아서 어쩔 줄 몰라 다리를 흔들어 댄다. 할머니 사랑에 반응하는 손자인 것이다.


   그런 아내를 보면 28년 전에 돌아가신 장모님이 생각난다. 여러모로 장모님을 많이 닮은 아내다. 현재의 아내처럼 장모님도 일하는 딸이 안쓰러워 자식을 돌봐주셨다. 아이를 살갑게 잔정으로 대하지 않는 성격도 닮은 것 같다. 아이들 양육을 엄마로서 역할에 충실한 사무에 가까운 육아라 생각한다. 사람을 부드럽고 유연하게 대하거나 눈치나 비위를 맞추는 성품이 아니기 때문이다. 최근 손자를 보는 아내 모습에 놀란 이유다. 손자와 놀아주고 신나서 즐거워하는 아내가 새삼 경이롭게 느껴진다.


    팔도 아프고 무릎도 아프지만 행복을 느끼기 그럴 수 있다. 손자가 유난히 따르고 좋아하니 모든 걸 잊고 좋아할 수밖에 없다. 가장 소중하고 예쁜 손자에게 사랑을 표현하니 세상 부러울 게 없을 수밖에 없다. 아끼고 사랑하는 핏줄을 만나 즐겁고 기뻐하지 않는 사람은 없지 싶다. 사는 보람이고 사는 의미를 느끼기 마련이다. 하루가 멀다 손자를 보러 가는 할머니가 신나서 즐거워하는 까닭이다. 손자 보는 일상으로 생기가 돋아나고 사는 멋을 느끼게 됐으니 얼마나 좋은 일인가.


  아내가 예전과 달라진 점도 많다. 사소한 일로 투정이나 짜증을 부리는 일이 거의 없어졌다. 뿐만 아니라 소소한 일상생활에서 기쁨도 즐거움도 찾으려고 노력하는 아내로 변한 것도 사실이다. 싫은 일이나 불편한 일에도 침묵으로 애쓰는 모습도 여러 번 보았다. 예쁜 손자 사랑에 빠진 이후 후회나 불안으로 흥분하여 마음이 상한 모습을 본 적이 거의 없다. 몸은 아프다고 하면서 마음의 상처나 아픔이 사라져 평온해진 아내라 할 수 있다. 할머니에게 즐겁고 행복한 삶을 선물한 우리 이도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60여 년 인생 반추해 봐도 인생 별 것 아니라는 생각이다. 좋아하는 일 즐기면서 사는 게 인생의 전부가 아닌가 싶다. 그렇게 사는 게 지혜로운 삶이고 나답게 사는 법이라 생각한다. 누구나 자신이 주인공이지만 현실은 엑스트라 인생처럼 살고 있지 않나 싶다. 나이 들어 내가 깨닫고 느낀 바이기도 하다. 타자의 욕망에 사로잡힌 지난 시절이 후회스럽고 미련이 남은 까닭이라고 생각한다. 기대나 욕심이 줄어든 지금도 마찬가지다. 사랑하는 가족들과 좋아하는 친구들의 안녕을 늘  걱정하면서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내 삶에 불안을 느끼는 원인은 간단하다. 남 권리를 자신의 권리처럼 존중하지 않는 사람들과 공존하고 있어서다. 남을 짓밟고 무시하여 이익을 추구하는 행위를 아무런 죄책감도 없이 저지르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내 삶이 불안하고 두려운 까닭이다. 내 삶이 안심 못하고 아파하여 그 상처로 인해 평상심을 잃게 된다. 공정과 상식을 외친 사람이 공정과 상식을 무너뜨리는 현실 사회에 화를 내는 이유이다. 안정된 삶을 위한 책무를 방기하고 주어진 권한을 남용하고 있는 그가 못마땅해 분노하는 것이다.


   오늘은 당구를 치는 멤버들과 무한리필 장어구이집을 다녀왔다. 5명이 모여 당구를 치고 개인당 2만 9천 짜리 장어와 4천500원짜리 소주 9병을 마셨다. 모처럼 좋아하는 친구들과 함께 한 즐거운 자리였다. 다만 그런 시간과 돈이 아까워하지 않는 나를 이해 못 하는 아내에게 미안할 뿐이다. 좋아서 마시고 즐거워했던 술이 측근들과 회식으로 세금을 낭비하는 자를 성토하느라 씁쓸했던 것도 사실이다. 불공정과 비상식으로 억지 부리는 언행을 참는데 한계에 이른 것 같다. 민심이 평정을 잃기 전에 내려오는 것이 바람직한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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