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겨울을 견디는 지혜
해마다 김장철이면 대둔산에 간다. 수락 계곡에 있는 처남 밭을 가기 위해서다. 올해도 며칠 전 그곳을 다녀왔다. 번거로움이나 경제성을 생각하면 마트에서 채소를 사는 게 낫다. 굳이 그곳에 가는 이유는 처남과 쌓인 정과 의리 때문이다. 처남의 농작물이 맛과 질에서 좋은 것도 사실이다. 평생 동안 농사일을 보급하고 가르쳐온 농촌지도사로 일하던 처남이다. 그동안 그가 베풀어 먹어 본 과일이나 채소가 실제 그랬다. 그의 밭에서 자란 배추와 무를 뽑아 담근 김치는 정말 맛이 있었다.
다가오는 추위는 막아낼 수 없다. 보증 수표였던 처남도 팔순이다. 1등 농부의 밭은 주인을 닮아 예전과 달라졌다. 싱싱하던 배추가 자라지도 못해 비실댔고 속은 차지 않았다. 벌레 먹어 시든 배추가 절반이 넘었다. 땅에 묻어 두어 쓸만한 무 4단과 파와 갓을 뽑아 차에 실었다. 고랑을 따라 골라낸 배추 10 포기를 갖다 겉절이를 버무리는데 만족해야 했다. 허탕 친 기분에 마음이 가라앉기도 했지만 앞으로 밭농사가 힘들어진 처남 처지에 마음이 아파왔다. 찬서리가 내려 허옇게 얼어붙은 채소처럼 느껴졌다.
대전에 사는 처남은 대둔산을 오가며 농사를 지었다. 평소 부지런하고 강직한 분으로 술 담배를 멀리한 건강 체질이다. 보청기를 끼어야 겨우 들을 순 있지만 팔순이 되기 전까지만 해도 활동적인 분이었다. 하지만 처남댁이 치매가 심해진 상태가 되면서 쇠약해진 모습이다. 어린아이처럼 행동하는 아내 병시중과 가사에 지쳐있는 힘든 모습이다. 가문과 전통을 소중히 여기며 칠원 윤 씨 종친회를 이끌던 그의 기백은 아쉽게도 사라졌다. 한학을 배워 꿋꿋한 선비처럼 살던 그의 모습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게 되니 아쉽다.
추위를 두려워하는 까닭은 겨울이 상실과 고통을 상징하기 때문이 아닐까. 빙상이나 스키를 즐기는 사람이 아니면 추위를 기다리진 않는다. 겨울은 죽음이 다가오는 것처럼 불안에 떨게 만든다. 그렇다고 어둠이나 불안은 거역할 수 없다. 어김없이 찾아오기 때문이다. 피해 지나가면 다행이고 견뎌내면 행운으로 여기며 살아갈 따름이다. 김장철을 맞는 느낌이 그런 것 같다. 빈 김치 냉장고를 꺼내 김장으로 가득 채우면 마음이 든든해진다. 겨울을 이겨낼 수 있는 믿음이나 용기가 생기기 때문은 아닐까.
김장철 김치의 위력은 따지고 보면 대단하다. 김치 하나만 있어도 먹거리 걱정이 사라지지 않는가. 추위를 이겨내기 위한 한국인의 지혜가 사계절 식탁의 주인이 된 셈이다. 세계 시장에 김치가 진출할 수 있게 됐다. 김치의 풍부한 영양과 맛이 세계화에 성공한 것이다. 한국의 겨울을 나기 삶의 지혜와 건강 비결을 국제 사회가 인정하게 된 것이다. 해마다 김장철이면 우리의 오랜 음식 문화인 김장 담그기에 최선을 다하는 까닭이 아닐까 한다. 김치 하나만 있어도 먹고사는 걱정은 사라지기 때문이다.
지난해 김치가 일찍 동이 났다. 두 번이나 김치를 담가 먹었다. 해서 올해는 단단히 별렀다. 일찌감치 소금 2포를 사서 간수를 빼두었고, 볕에 잘 말린 고추도 30근을 방아를 찧었다. 마늘 3접과 새우젓 2Kg, 액젓 1 통도 준비했다. 줄기가 얇은 고소한 배추 30 포기를 생산자에게 주문하여 절였다. 대둔산에서 가져온 무를 채 썰고 갓과 파를 섞어 버무렸다. 김치 냉장고 두 개를 가득 채운 야심 찬 김장 파티가 아니었나 싶다. 김치통 2개를 채워 처남집에 갖다주고 나니 든든한 마음이 더욱 훈훈해진 기분이 들었다.
예년에 비해 더 매서운 추위가 온다 한다. 김치 냉장고가 있기에 두려울 건 없다. 김치 냉장고가 있어 걱정은 사라졌지만 현실은 여전히 불안하다. 겨울나기 김장조차 포기한 현실이 그런 것 같다. 민생을 팽개친 자들의 권력 놀음에 속수무책인 현실 사회가 그런 것 같다. 서민들의 삶이 절망과 한숨소리가 커지고 있다. 추위와 불안에 떠는 민생은 외면하고 해외 나들이를 즐기는 자를 향한 원성은 높아만 가고 있다. 추위가 다가오기 전 혈세를 낭비하는 자를 서둘러 몰아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