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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길성 Dec 24. 2023

버리지 못하는 '애물단지'

노욕으로 물들어 가는 사회


    빛바랜 휴대폰이나 노트북, 카메라는 어느 가정에서 볼 수 있다. 버려도 무방하지만 함부로 버리지 못한 것들이다. 비싸게 사서 애착을 갖던 물건이니 아까워서 쉽게 버리지 못한 것이다. 고장 나서 못 쓰면 버려도 괜찮다. 하지만 아직 쓸만하다는 믿음이 있으면 미련을 갖기 마련이다. 철 지난 애물단지는 나이를 먹은 사람도 마찬가지다. 나이는 노화를 의미하고 나이 들면 무기력해지기 때문이다. 노인이 되면 애물단지로 변하는 셈이다. 하지만 심신이 쇠약해져도 노욕은 좀처럼 버리기 어렵다. 애물단지의 노욕을 경계해야 하는 까닭이다.


   갈수록 사회는 노욕으로 물들고 있다. 고령화 사회가 되면서 심각한 수준에 이르지 않았나 싶다. 7~80 노인이 청년 실업을 걱정하는 아이러니한 현실이 아닌가.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제맛임을 노인들이 부정하고 나선 꼴이다. 미래는 미래 세대가 이끌어야 한다면서 정작 자신은 내로남불인 것이다. 진보 정당 총선 후보로 나선 특정인들이 그 예다. 수십 년 민주화를 위해 노력했어도 올드보이가 된 그들은 이젠 애물단지로 변했다. 그들에게 미래 희망을 기대하기 어렵다. 기득권을 지키려는 식상한 메아리로 들린다.


    며칠 전 24년 공직 생활에 구청장을 지낸 친구를 만났다. 출세를 위해 당적을 옮겨가며 공직에 몸 담았던 그가 이번에도 국회의원을 재도전한다 한다. 생존에 내몰려 경쟁에 뛰어든 친구였다면 기꺼이 돕고 응원할 일이다. 기득권을 포기 못한 그의 도전은 민망스러웠다. 용기나 신뢰보다 구태와 염증이 느껴졌다. 자신의 경험이나 역량으로 정치에 자신감을 가진 친구에게 미안했다. 아날로그 세대가 디지털 AI시대와 소통이 두렵지 않게 준비하면 성공할 거라는 말을 끝으로 헤어졌다.


     구관이 명관이니 연륜이 중요하다는 말은 고사에서 유용하다. 공자나 소크라테스가 아무리 훌륭해도 그들의 철학으로 현대를 이끌 순 없다. 어둡고 미개하던 시절에나 통하는 덕이고 지식이지 않는가. 문명이 우매한 시절에나 통용되던 삶의 방식을 현대에 꺼내 들고 만병통치로 삼으면 곤란하다. 진화의 세계에서 역사에서 배울 건 하나밖에 없다. 어리석음이 불행을 자처한다는 교훈이다. 베이비 붐이 살아온 지난 60여 년만 봐도 그렇다. 3년이 멀다 새로운 문화와 문명이 유행처럼 등장했다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새로운 유행이 등장하면 구버전은 밀려나기 마련이다. 제아무리 최신 유행도 3년이 지나면 애물단지 취급받거나 유물이 될 운명에 처하고 마는 것이다. 박사학위 논문을 쓸 당시 유일무이한 지식이지만 지금은 처지곤란 쓰레기일 따름이다. 30년 전 유용한 지식이나 주장이 현대엔 무용지물이 된 것이다. 무용지물은 재활용할 수도 재활용해서도 안 되는 애물단지다. 뼈아픈 식민시대나 독재 권력의 치욕과 상처를 향수인양 꺼내 들고 태극기를 흔들어 대는 이들이 애처롭게 느껴지는 까닭이다.

  

    결혼 40년이 흘렀다. 아내 생일과 겹친 올해 결혼기념일이다. 딸이 사준 자킷과 핸드백으로 이벤트를 대신했고, 사위가 예약한 퓨전 한정식에서 점심을 먹었다. 한적한 시골 너와집에서 케이크를 자르고 차도 마셨다. 근사한 기념행사를 가졌음에도 아쉽고 조용한 하루였다. 선택권이나 주도권이 아이들로 옮겨간 기분 때문이다. 일상이 예약제가 보편화되고 AI로 소통하고 거래하는 요즘이다. 편리해진 삶이지만 아날로그 사고에 익숙한 기성세대에겐 이방인처럼 느껴진다. 아무리 좋아지고 편해져도 불편하고 부담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다.


    초롱불 세대가 화려하고 밝은 세상을 맞은 격이다. 춥고 어두운 세상에서 상상조차 할 수 없던 편리한 세상인 것이다. 산업화와 민주화로 눈부신 사회 발전과 경제 성장 덕이다. 때문에 격차가 벌어지고 그로 인한 갈등도 심각해진 게 사실이다. 의식이나 사고가 문명의 진화를 따라잡지 못한 것이다. 기존의 사고에 머물러 애물단지를 고집만 해선 안 되는 까닭이다. 새로운 사회에 적응하고 동참하기 위해서라도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애물단지로 몰려 버림받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5년 전 아내 생일로 준 선물이 향동백나무다. 생일을 맞아 피던 동백꽃이 작년부터 피지 않는다. 사진처럼 꽃몽오리가 생겨 기대를 했다가 피어나지 못해 실망을 하게 된다. 겨울나무인 동백이 나이가 든 모양이다. 양분이 모자라 더 이상 꽃을 피워내지 못하나 보다. 나이 들어 우리는 동백나무처럼 살고 있는 게 아닐까.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기 위해 추위와 싸우며 안달하는 모습이 닮지 않았나 싶다. 애처롭게 꽃은 피우지 못해도 얼어 죽지 않고 겨울을 버티는 것만으로 다행이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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