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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길성 Sep 22. 2023

후진 기어로 달린 순 없다

고장 난 자동차가 멈춰 불안해진 한국 사회

    늘 다니던 카페에 조금 일찍 도착했다. 카페 앞에서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는데 지나가던 여인이 갑자기 앞에 앉는다. 미군 철수 반대 서명을 받는 사람이었다. 그가 나는 기억 못 하겠지만 나는 그를 안다. 두 차례나 그의 서명을 거절한 기억 때문이다. 50대로 보이는 그는 인근 지역을 담당하는 여성이었다. 그 일을 하고 싶어 하든 해야 해서 하든 일하는 모습은 적극적이었다. 내가 서명에 거절 의사를 밝혀도 막무가내로 공격적으로 따져드는 그녀였다.


    이번에도 그녀가 "미군 철수는 반대해야 하지 않나요?", "대한민국을 지키려면 종북 주사파는 몰아내야 하지 않나요"를 되풀이했다. 순간 아무런 연고 없는 여인에게 섬뜩함이 느껴진다. 사이비 교주에 심취한 맹신도의 유혹을 뿌리치고 싶은 것처럼 도망치고 싶었다. 그녀의 정체를 알기에 두려울 건 없어도 자기 생각을 강요하는 그녀가 불편하고 언짢았다. 마치 흉기를 들고 위협하는 사람처럼 느껴져 불안하고 긴장도 됐다. 사실 상대 기분이나 생각을 무시하고 자기 입장만 생각하는 사람처럼 무서운 사람은 없다. 


    그런 사람을 만나면 피하는 게 상책이다. 하지만 신념이나 가치가 다른 사람을 상대하고 부딪쳐 사는 게 삶이다. 삶이 피곤하고 고통스러운 까닭이다. 종교와 정치는 삶에 직결된다. 가치 충돌을 피하기 위해 터부시 한다고 종교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종교 전쟁을 아직도 벌이고 있다. 우리 사회 분단 트라우마가 그렇다. 반공은 60년 꺼려온 금기사항이다. 숨긴 채 침묵한다고 갈등이나 충돌이 줄어들진 않는다. 터놓고 논쟁해야 이해도 타협도 가능하다. 반공 이데올로기로부터 멍든 충격과 아픔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녀도 반공 방첩 시대를 살아온 나를 그렇게 봤던 모양이다. 국민교육헌장으로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태어났다.'를 외친 세대였고, '반공 민주 정신에 투철한 애국애족을 삶의 길'이라 믿었던 세대라는 사실을 알았던 것이다. 6~70년대 깜깜한 시절에는 남침 땅굴 발견이니 무장 공비 침투 사건 뉴스에 세뇌당할 수밖에 없었다. 6.25 전쟁 후 반공 이념이 이끌던 사회였으니 북한에 대한 적대감에 사로잡힌 세대였다. 그런 나였기에 만만하게 믿고 서명에 순수히 응해줄 거라 생각했던 모양이다.


     베이비 붐 세대들이 살아온 지난날은 그랬다. 빈곤에서 벗어나기 위해 힘들기도 했고 김일성 주체 사상과 맞서 싸워야 했다. 학생시절엔 누구나 학교 공부와 고된 군사 훈련을 받아야 했다. 군사 문화가 국가를 통치하고 지배하던 시절이니 당연한 것으로 알고 따랐다. 나는 전방부대에서 북한에 총을 겨누고 있는 동안 10.26 사태와 12.12 사건, 5.18 운동을 겪었다. 그 당시 나는 주한 미군을 든든한 동지라 여기고, 김일성 주체 사상을 추종하는 불순 세력을 처단해야 한다고 당연히 믿었다. 국난을 극복한 군인으로서 당연했다. 


    그러나 현재 그녀의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미군 철수를 북한을 이롭게 적을 돕는 일이라 단정하지 않을뿐더러 반공 이념에 사로잡혀 종북 빨갱이를 몰아내야 한다는 주장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슬프고 부끄러운 지나간 역사라 생각한다. 불행한 역사는 반복되지 않도록 반성할 일이다. 폐기 처분될 도구를 다시 꺼내 사용하자는 주장에 반대하는 까닭이다. 후진 기어와 백미러는 뒤로 갈 때 쓰는 것이다. 달리는 자동차에 쓸 필요가 없다. 쓴다면 큰일 날 일이다. 그녀처럼 상처를 후벼내 재활용을 주장하는 사람이 그런 것 같다.


    최근 반공이념이 지배하던 암흑의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다. 억압과 무시로 점철된 역사가 재현되는 듯하다. 국정을 책임지는 총리를 탄핵시킬 정도로 망가진 사회다. 야당 대표를 체포하자는 안이 가결되기도 했다.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친일 정권이 친일의 방패막이로 반공주의를 이용하던 역사가 고개 들었다. 반공법을 정적 탄압에 동원하던 것이나 검찰력을 총동원해 집권을 비판하는 세력을 제거하려는 모습이 다를 바 없다. 후진 기어를 넣고 달리자는 주장과 다를 바 없어 보인다.


    역사가 말해줄 것이다. 공동체 사회가 주춤할 적은 있지만 미래를 향해 달려왔다. 민심이 위기를 그 때마가 극복해 냈다. 일제 식민 지배에 독립운동가가 그랬고, 분단의 아픔과 상처를 극복하는데 다수의 산업 일꾼의 역할이 그랬다. 민주화로 독재권력을 몰아낸 것도 독재에 염증을 느낀 성난 민심이 있었다. 미군 철수 반대를 애국이라 여기고, 북한과 대화를 추진하는 민주정권을 반국가 세력으로 모는 이들이 있어도 민주 세력이 정권을 세 번씩이나 차지한 것도 깨어난 시민들이 대한민국을 걱정했기 가능했던 일이다.


    60여 년 세월 동안 엄청난 변화가 있었다. 원조에 의존하던 사회가 국제사회가 인정하는 자랑스러운 사회로 변했다. 미래를 선도할 대한민국으로 발전하고 성공한 것이다. 사회가 변하면 개인의 사고나 삶도 변해야 마땅하다. 후진 기어를 넣고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어 기성세대가 득세하는 모습이 불안하다. 부당하고 못마땅해도 나를 따르라는 목소리가 크게 들려선 곤란하다. 평화 대신 전쟁 공포로 선제타격에 반대하는 사람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 탄압의 정당함을 주장하는데 불과하다.


     평화를 위해 협력과 교류를 펼치는 민주 세력을 퍼준다고 비난하던 세력이 정권을 차지하자마자. 잘 나가던 한국형 자동차가 멈춰 선 기분이다. 미래를 향해 나아가던 차가 망가지고 고장 난 것 같다. 헌법에 보장된 언론이나 표현의 자유조차 통제했던 지난날로 후진 중에 있다. 지난 우리의 역사가 말해주듯 민심을 외면한 정권치고 냉혹한 평가를 받지 않은 권력은 없다. 후진기어를 넣고 앞으로 달리겠다는 주장을 없애지 않으면 여론 심판과 저항을 견뎌내지 못할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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