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남의집 문지기 Sep 17. 2017

남의집 마당놀이 1

남의집 5호 호스트 3인방

몇달전 동네 책방에서 진행하는 도시 재생 관련 책의 저자 강연을 들으러 갔다. 강연 후 참석자들끼리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남의집 프로젝트를 진행한다고 나를 소개하니 옆에 앉은 분들께서 남의집 인스타를 팔로우 하신단다. 게다가 옥자로 기획했던 남의집 영화제에 신청까지 하셨더랬다. 신기방기. 미약한 인스타 팔로어수를 감안하면 연희동 구석에 위치한 동네서점에서 팔로어를 만날 확률은 더더욱 희박할텐데. 더더욱 신기방기.


제가 아는 언니집에 예쁜 마당이 있어요.
거기서도 남의집을 하면 괜찮을 것 같아요


오호라. 남의집 호스트가 넝쿨째 굴러왔다. 게다가 마당이라니. 덥썩 물고 늘어져 다음번 남의집 프로젝트 때 놀러오시라 농을 던졌다. 그리고 몇주 뒤 소개해준 분과 마당집 언니라는 분이 남의집 건축학개론 참석했다. 경험상 남의집에 끌어들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남의집을 직접 체험해 보는 것이다. 건축학개론을 마치고 남아서 마당집 언니분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니 그분은 이미 남의집 매력에 빠져 계셨다. 브이!


당시가 장마철이라 마당에서 활동하기엔 시기가 부적절하니 조금 선선해지면 해보자며 서로의 마음만 확인하고선 헤어졌다. 마당에서 뭘할지, 주제를 어떻게 잡을지에 대해선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마당인데. 마당에선 뭘해도 재밌고 신나지 않을까라는 정도의 깊이로 고민했을 뿐.


몇달이 흘러 늦여름이 다가올 즈음 마당집 언니에게 연락을 했다. 마당 프로젝트를 슬슬 준비하자고. 마당집 언니도 좋다며 일단 집 구경을 오시라 했다. 비가 철철철 내리던 광복절날 망원역 근처에 위치한 마당집을 찾았다. 찍어준 주소로 카카오맵을 확인해 보니 집의 사면이 다른 집들로 둘러싸여 있더라. 여길 어떻게 들어가지? 고개를 갸우뚱하며 이곳저곳을 맴돌다 겨우 집을 찾았다. 뭔지 모르겠으나 간판같은 게 눈에 보이고 작지만 마당이 있을 것 같은 집. 남의집 5호와의 첫만남.


남의집 5호의 첫인상


초인공을 누르니 띵동띵동 소리가 나고 잠깐의 적막이 흐른다. 이 적막 속에서 낯선 곳에 들어선다는 주저함 (그냥 갈까?)과 설레임 (어떤 집일까? 주인은 어떤 사람일까?) 이 엎치락뒷치락. 우리집에 놀러온 수많은 낯선이들도 초인종을 누르고 몽글이가 짓는 소리를 견디는 동안 비슷한 감정을 느꼈겠구나. 싶었다. 그러고 보니 초인종을 누르는 경험 역시 요새같은 도어락 시대에 택배업에 종사하지 않는 이상 쉽사리 접할 수 있는 건 아니네. 남의집이 주는 또하나의 가치가 초인종?


적막을 깨고 마당집 언니가 반갑게 맞아 주었다. 들어서니 마당이 한눈에 들어왔다. 작고 아늑한 느낌의 마당였다. 연희동에 있는 큰 마당들은 집을 압도하는 느낌이 들어 집과 마당이 분리된 인상을 주는 반면 이 집의 마당은 딱 적당한 크기여서 마당이 집의 일부로서 자연스레 녹아들어 포근함을 전했다. 거기에 바닥에 깔린 붉은색 육각 타일 사이로 삐집고 자라난 초록색 잡초가 보색효과를 일으켜 화사함을 더해 주니 몽환적이기까지 했다.


남의집 5호 마당 전경


비가 오니 일단 거실로 들어가니 눈앞이 하얗다. 마당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의 거실. 새하얀 벽과 노란색 백열등의 조화가 인상적이다. 군데군데 자리잡은 초록색 식물들이 마당과의 싱크를 맞춰주고 있었지만 달라도 너무 다른 분위기의 두 공간이 맡대고 있는 집이였다. 뭐라고 표현해야 하나. 음... 마당은 라오스, 거실은 킨포크 스타일?


이 집의 직전 세입자는 신포우리만두 대표였는데, 인근 신포우리만두 가게의 직원들의 휴게소 혹은 숙소로 쓰였던 집이라고 한다. 그래서 처음 입주했을 때의 집내부는 노란색 바닥으로 도배가 되어 있고, 주거가 아닌 휴식을 위한 임시 거처로서의 어수선함이 가득한 공간이였다고 한다. 그런 곳을 마당집 언니가 손수 하얀색 페인트로 칠하고 꾸며서 이렇게 근사한 공간으로 재탄생한거였다.


남의집 5호 거실 풍경


마당집 언니의 이름은 최은영. 광고 대행사에서 날라다니며 일하다가 최근 회사를 때려 치우고 나와서 본인의 사업을 준비 중이였다. 이런 기가 막힌 집을 구하게 된 사연을 물으니 대뜸


제가 복순이거든요.


이란다. 부동산 아주머니를 통해 이집을 소개받았는데, 희안하게도 집주인의 면접을 통해 입주 여부가 결정되는 집이란다. 집주인이 어렸을 때 자랐던 집이라 애착이 남달라 전세 가격보다는 집주인 마음에 드는지 여부로 세입자를 택하는 집였다. 마당집 언니의 인상이 복순이라 면접도 한큐에 통과해서 좋은 조건으로 이 집에 입성했다고 (주장)한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 받는 사이 처음 마당집 언니를 소개해 준 지현님과 그녀의 회사동료 혜수님이 도착했다. 사실 오늘 답사 자리에 이렇게 여러 명이 모이는 줄은 몰랐다. 알고보니 이번 프로젝트의 호스트는 3명였다. 남의집에서 여러명의 호스트로 진행해 보기는 첨이라 어떤 식으로 진행해야 하나 살짝 고민을 했는데, 이분들과 이야기 나눠보니 '나 없이도 잘 굴러가겠구나' 싶었다.


남의집 5호 호스트 삼인방 (혜수, 은영, 지현)


일단 이번 남의집의 컨셉은 잘먹고 잘노는 걸로 정했다. 마당은 거들 뿐. 이분들 어찌나 에너지가 넘치시던지 마당을 활용해서 놀고 먹을 수 있는 아이템들이 쏟아졌고 역할분담도 확실했다. 혜수님은 쉐프를, 지현님은 한창 공부 중이신 미술치료 상담을, 은영님은 마이크로 흥을 돋구는 MC를 맡기로 결정했다.


그동안 남의집 프로젝트에서는 무언가 경험을 한다거나 정보를 얻어가는 식의 아이템 엣지가 명확했었다. 한데 이번처럼 먹고 노는 것에 방점이 찍힌 사례가 없다보니 우려와 기대가 반반였다. 단순히 노는 것에 사람들이 호응할 것인가라는 모객의 관점에서는 걱정이 되었으나, 호스트분들이 제안한 노는 아이템을 보고 있노라니 정말 흥겹게 놀 수 있을거란 확신이 들었다. 그 확신을 예로 들자면 이렇다.



1. 이분들 노는데 엉겹결에 껴있다보니 나도 모르게 마이크를 쥐고 주저리주저리 내 얘기를 꺼내 놓기 시작했고,



2. 다짜고짜 벌칙으로 스위스 소녀 가발을 써야 한다며 가위바위보를 시켜서 열과 성을 다해 바위를 날렸다. 남자는 주먹.



3. 허나 바위은 보자기에 잡혀버려 결국 난 이렇게 스위스 소녀가 되어 와인을 홀짝홀짝 들이키게 되는데....


이렇게 정신없이 노는 사이 남의집 프로젝트를 어떻게 꾸며갈까에 대한 고민은 내려놓고 (이미 정해졌으니) 회의와 무관하게 낯선 이들 사이에 껴서 웃고 떠들며 놀았다. 여자 셋에 남자 혼자 깍두기로 있으니 영화 '처녀들의 저녁식사'의 조재현이 된 것 같기고 하고.


그새 비가 그쳤고, 본격적으로 마당을 음미할 타이밍이 왔다. 밤 11시가 다된 시간의 마당이라 조용히 이야기 나눌 줄 알았으나 넓어진 무대에서 호스트들은 더욱 격렬하게 놀기 시작했다. 거실에서 재미삼아 가지고 놀던 마이크가 본격적으로 노래방 아이템으로 제 기능을 되찾아 호스트들은 큰소리로 노래를 부르며 춤추기 시작했다. 이도 성에 차지 않는지 난데없이 사자머리 탈까지 등장했다.


사자탈이 웨이브에 하우스 댄스까지 커버


'띵동띵동' 광란의 마당 파티를 즐기고 있을 때 초인종이 울렸다. 망원동 폴리스가 떴다. 너무 시끄럽게 놀아서 주변 이웃들이 경찰에 민원을 넣은거다. 조용히 하겠다고 사죄를 구해 경찰 아저씨를 보내고 나서야 남의집 5호 답사가 마무리되었다. 이미 자정을 넘긴 시간.


시작은 답사였으나 뭔가에 홀려 모든 걸 내려 놓고 놀다온 기분이 들었다. 마당이 주는 마력은 생각보다 강력했다. 이 마력을 남의집 5호 프로젝트명에 어찌 담을까 고민하다가 마당놀이가 떠올랐다. 마당에서 노는데 이만한 이름은 없겠다 싶어 결정하고 아래와 같이 상품페이지를 만들었다.


[네이버 예약] 남의집 마당놀이

친구집 마당에 놀러 가본적 있으신가요? 벽돌 타일 사이로 자라난 잔디, 그리고 담벼락을 둘러싼 갖가지 나무와 잡초의 생명력이 묘한 기운을 내뿜고 있죠. 덕분에 이곳에선 마음이 열리면서 누구와도, 무슨 이야기라도 나눌 수 있습니다. 특별한 강연이나 콘텐츠가 없어도 우린 잘 놀 수 있어요. ㅇ 이벤트 소개 낯선 이들과 마당에 모여 앉아 본인의 이야기를 전하고 남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 오늘은 과연 어떤 이야기가 자라게 될까요? ㅇ 이벤트 개요 일시: 9.2(토) 오후 6시 장소: 서교동 477-8 (망원역에서 도보로 10분 거리) 정원: 최대 4명 ㅇ 참여 대상 낯선 이들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 분들을 격하게 환영합니다. - 꿈을 이루고 싶은 분 - 성장욕구를 해소하고 싶은 분 - 좋은 친구를 사귀고 싶은 분 - 맛 좋은 가정식을 즐기고 싶은 분 ㅇ 이벤트 일정 - 저녁 식사 (남이 차려준 밥상에 숟가락만 얹으시면 됩니다.) - 마법의 마이크 (마이크를 통한 자기표현의 향연, 비트 주세요!) - 미술 테라피 (본인도 몰랐던 내면의 이야기를 그림으로 표현하는 시간) ㅇ 호스트 소개 팀명: 4778 팀구성: 브랜드/홍보 컨설턴트 출신의 창업가와 방송 마케터들로 구성된 흥부자 3인 (최마당, 김작가, 조쉐프) 팀공간: 4778 스토리 가든 (이들의 실제 거주지이자 아지트입니다) ㅇ 입장료 금액: 2만원 용도: 식사/음료 준비 비용 * 방문객 전원에게 4778 프레스 기프트 증정 ㅇ 신청 방법 1) 예약하기 - 마감일: 8월 21일(월) 2) 예약확정받기 - 8월 22일(화) 예약 확정문자 발송 - 최대수용인원 초과 예약시 신청동기 등을 고려해 선정 3) 입장료 2만원 입금 - 예약 확정자에 한해 입금 계좌 전달 - 입금 마감일: 8월 23일(수) - 해당일까지 미입금시 예약은 취소되며, 다른 분께 참석권이 주어집니다. ㅇ유의사항 - 주차는 불가합니다. - 과하게 시끌벅적해지면 망원동 폴리스가 출동합니다.

booking.naver.com

 


흥부자 3인방 호스트들과 낯선 이들은 남의집 마당에서 무슨 경험을 공유하고, 어떤 교감을 나눌까? 2부에서 계속. 커밍쑨.



매거진의 이전글 남의집 영화관 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