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로 또 같이
속도, 남의집을 1인 프로젝트로 진행하니 좋은 점은 내 머리에 떠오른 생각을 바로 저지르는 속도감. 누군가와 의견을 조율하거나 보고할 필요없이 나 혼자 상상하고 바로 실행하면서 스스로 생각을 정리해 온 것이 지난 10개월간의 남의집 여정였다. 덕분에 생각보다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동시에 서서히 한계가 보이기 시작했다. 혼자서 북치고 장구치며 휘몰이 장단을 몰아친들 에너지원이 나혼자면 장렬히 산화하는 불의 전차에 다름이 아닐테니. 재미로 하고 그만둘 프로젝트였다면 잘~~ 놀았다며 내 안의 에너지를 전부 불살라버리고 깔끔하게 정리했을테지만, 남의집을 통해 발견한 가치를 맛보니 이를 지속가능하게 유지시키고 싶은 바람이 생겼다.
아집, 혼자서 모든 걸 하다보면 시나브로 주관이라는 것이 생기게 마련이다. 초반에는 이것이 노하우 혹은 전문성으로 기능할지 모르겠으나 길어지면 아집이 될까 우려스러웠다. 게다가 남의집은 그 누구도 해보지 못한 업이여서 나 혼자 이어가면 짐이 곧 법이요로 변질되기 십상. 남의집의 가치를 나의 테두리에 가두고 싶지 않았다. 지금까지 여러 매체에 소개되며 ‘남의집=김성용’ 의 프레임이 굳어져 가는데 이를 막기 위한 프로젝트의 체질 개선이 필요했다.
그러니 자연스레 나 이외에 남의집 프로젝트의 가치에 동의하는 이들을 포섭해서 함께 굴려보자 마음먹게 되었다. 박지성만 두개의 심장을 가질쏘냐? 남의집도 복수의 에너지원을 장착해 더 오래, 더욱 다채롭게 굴려보는 그림을 그렸다. 남의집을 함께 기획하고 운영하는 동료들, 남의집 크루를 만들자!
일도 아니면서, 취미활동도 아닌 이 정체불명의 프로젝트를 다른 이와 함께 꾸려간다는 것이 어떤 그림일지 상상해 봤다. 법인을 세워야 하나? 개인사업자가 나은가? 그러면 누군가 회사를 나와야 하잖아. 그건 싫은데 (밖은 추우니까. 아직은) 협동조합이라는 게 있다던데 그게 정확히 뭔지 모르겠고, 그럼 어떻게 조직을 만드냔 말이냐! 이런 의식의 흐름에서는 답을 찾지 못했다. 주관식 문제를 객관식으로 풀려니 이럴 수 밖에.
회사다니면서 딴짓한 거.
그동안 나혼자 남의집 프로젝트를 끌어온 행태를 돌아보니 이런 결론이 났다. 그래~ 딴짓해 온 걸로 무슨 법인이네마네냐. 다른 이에게도 함께 딴짓을 하자고 꼬시자. 좀더 의미있게 신나는 딴짓거리를 모의하는 작당들.
문지기: 헤이요~ 나랑 남의집할래?
누군가: 어머 그게 뭐에요? 주식회사 남의집?
문지기: 우리의 주식은 딴짓이지. 너에게 딴짓 10만주를 스톡옵션으로 주겠어.
누군가: 꺅!
현재 남의집 프로젝트에서 시급한 업무는 여기에도 썼듯이 본인의 집을 낯선이들에게 기꺼이 개방해 줄 호스트의 볼륨을 늘리는 것이다. 있어빌리타이징하자면 host acqusition. 이 업무에 적합한 이가 누구일까 생각해 봤다. 직장에서, sns에서, 어쩌다 알게 된 지인들 중에 성격좋고 인맥도 넓으면서 일을 똑부러지게 잘하는 사람은 많다. 근데 남의집에 잘맞을런지는 미지수다. 경험해 보기 전엔 알 수 없으니.
해서 남의집의 가치를 알아주고, 이에 잘맞는 이들부터 찾았다. 자연스레 게스트이건 호스트로 남의집에 참여했던 분들이 후보선상에 올랐다 (내 맘대로). 하니 바로 떠오른 이들이 있었으니, 남의집에서 처음으로 별주제없이 노는 것이 컨셉이였던 '남의집 마당놀이'의 호스트 3인방.
위 브런치글을 통해 보면 아시겠지만 이들의 기획력은 정말 어마어마했다. 나라면 절대 생각치 못했을 아이템들로 남의집을 꽉채워서 무려 8시간동안 낯선이들을 한데 묶었다. 호스트 세명 각각에 대해 자세히 알지는 못하지만 이미 저들간에 생겨난 딴짓 팀웍이 탐났다. 게다가 셋다 콘텐츠 관련 업계의 선수들여서 업무적으로도 손색이 없겠다 싶었다. 저 팀웍과 역량이 남의집을 만나면 불타오를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어 세분 모두에게 남의집 크루를 제안하기로 마음먹었다. 회사를 재능인수하듯 그들을 통째로 모셔오는거다.
일단 배불리 밥을 (주문)해 먹으면 마음이 열리지 않을까 싶어 세분을 남의집 1호에 초대했다. 근황토크를 하며 분위기를 고조시킨 후에 준비한 PPT를 꺼냈다. 10개월간 진행한 남의집 프로젝트 지표와 내가 발견한 남의집의 가치를 구구절절하게 풀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안을 했다. 남의집을 함께 만들어가자고.
보통 제안이라면 명확하게 무엇을 주겠다는 것을 명시하겠지만 난 남의집의 비전만 제시했다. '모르는 사람의 집에 놀러가서 처음 만난 사람들과 어울려 시간을 보낼 수 있는 플랫폼' 이를 운영하면서 얻을 무언가에 대한 판단은 그들에게 맡겼다. 아래의 말을 덧붙이며.
저를 도와준다는 생각으로 남의집 프로젝트에 합류하시기를 바라지 않아요.
여러분이 성장하는데 남의집이 유용하게 활용되길 바랍니다.
월급도 없고, 사무실도 없어요.
제가 드릴 수 있는 건 마음껏 딴짓을 펼칠 수 있는 놀이터 뿐.
몇주뒤, 고맙게도 세분 중 두분이 나의 제안을 받아 주었다. 최은영님과 김지현님. (이 글을 빌어 다시 한번 감사 또 감사) 이렇게 남의집 프로젝트에 올라탄 이들끼리 의기투합하자며 연희동에 위치한 이끼에 모여 오뎅탕을 먹었다. 역사적인 남의집 크루 킥오프 현장. 최은영님은 모두에게 양말 선물을 돌렸다. 나의 선물 포장엔 이런 문구가 적혀 있었다. '좋은 콘텐츠는 발바닥의 힘으로부터'
그 뒤로 몇주간 매주 만나서 나의 남의집 경험치를 두분에게 전달해 주고 있다. 남의집 호스팅 업무의 프로세스와 관련된 사이트(네이버 예약, 플러스 친구 등) 운영방법을 전해주는데 뭐 이리 자잘한 것들이 많은지. 그간 시나브로 체화된 업무 하나하나를 전달할라치니 새삼 남의집이 노가다 운영의 극치였구나 싶은 생각이 절로 들었다. (김성용, 칭찬해!) 다행히 두분은 빠르게 습득해 나가고 있다.
호스팅도 해보시라 제안해서 김지현님은 독립출판과 아빠를 주제로 ‘남의집 PAPA’ 라는 타이틀의 남의집을 오픈했다. 운영자 입장에서 남의집을 기획하고 모객하는 일련의 과정을 직접 경험하며 말과 글로 전할 수 없는 프로젝트의 본질이 전달되기를 바랬다.
다함께 남의집 호스팅 미팅도 다녀왔다. 12월 중에 오픈 예정인 남의집 호스트분 집에 처음으로 방문해서 인사를 나누고 어떤 식으로 남의집을 꾸릴지 논의하는 자리였다. 매번 혼자 머쓱하게 찾아가서 이야기 나눌 때보다 든든했다. 미팅 후 느낀 점들을 공유하니 서로 다른 관점에서 기획 포인트가 샘솟았다.
직접 현장을 다녀오니 두분은 더욱더 남의집 프로젝트 매력에 빠진 듯 했다. 처음 방문한 집의 초인종을 누르고, 모르는 사람이 현관문을 열어주며 환영해 주는 느낌. 그리고 그 공간의 주인이 나에게 조근조근 본인의 이야기를 들려줄 때의 따뜻함. 이건 직접 경험해 보지 않으면 상상할 수 없는 무언가다. 이를 직접 경험한 두분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각자 별명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남의집 프로젝트에서 '문지기'로 통하고 있다. 재미삼아 스스로 붙어본 별명인데 사람들이 정말로 그렇게 불러주는 게 신기해서 그대로 두니 이대로 굳어 버렸다. 낙장불입. 근데 은근 이런 별명이 마음에 든다. 정체불명의 남의집 프로젝트에 어울리게 서로 말도 안되는 대외 직함(?)을 달아보는 거다. 하여 최은영님은 '최마당'으로, 김지현님은 '안테나'로 별명을 정했다. 각 별명의 이유는 두분이 조만간 브런치를 통해 얘기해 줄 예정. 아이홉쏘ㅎ
업무 스타일은 ‘따로 또 같이’를 지향하기로 했다. 셋이 각자 남의집 PM이 되어 호스트 섭외, 기획, 운영 거기에 콘텐츠 생산(브런치)까지 전부 맡는다. 이렇게 몇달 운영해 가며 남의집 경험치가 쌓이고 호스트들도 많아지면 새로운 상황에 맞춰 업무 방향을 재조정하기로 했다.
앞으로 남의집 프로젝트는 최마당, 안테나 그리고 문지기 이렇게 셋이서 사부작사부작 거리며 굴러갈 예정이다. 혼자하던 때보다 좋은 점도 있을 것이고, 땅을 치고 후회할 순간도 올테지. 아무렴 어떤가? 이 역시 배움의 과정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