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 중간 점검
3주간 연속으로 남의집을 돌리고 이번 주말엔 간만에 휴일을 맞았다. 보통 주말은 휴일이라지만 남의집을 운영하며 그 경계가 사라졌다. 오랜만에 맞이하는 휴일에 뭘할까 고민하다가 남의집 중간 점검을 해보기로 했다. 그동안 남의집을 이끌어 오면서 가졌던 생각의 편린들을 모아보고 앞으로 어떻게 이끌어 나갈지 정리해 본다.
Number
먼저 남의집을 숫자로 들여다 보았다. 네이버 예약으로 운영해 온 덕에 데이터가 온전히 남아있다. 마음먹고 예약건수와 완료수 등등의 데이터를 까보니 요런식으로 얼개가 잡히더라.
운영일수: 308일
SNS 팔로어수: 1,500 여명 (인스타:1천명, 페이스북:500명)
총이벤트수: 24건
총호스트수: 13명
총예약건수: 341건
총예약자수: 270명
총방문자수: 123명
예약자/방문자: 2.19
이벤트당 평균 예약건수: 14.2건
이를 플랫폼 비즈니스 지표로 치환하자면,
SNS 팔로어수 = 가입자 지표
이벤트수 = 상품수 지표
호스트수 = 상품을 공급하는 사업자수 지표
예약자수 = 유료결제 이용자 지표
방문자수 = 서비스 이용자 지표
예약자/방문자 = 공급대비 수요 지표
이를 보고 있는 독자분들 중 사업에 관심있는 분이라면 재방문률과 매출 데이터가 궁금할터인데 그건 밥이나 술을 사시는 분들께만 알려 드리기로ㅎ 굳이 앱이나 웹페이지를 만들지 않고, 서버를 두지 않아도 이렇게 서비스가 굴러가고 데이터까지 축적할 수 있는 걸 보니 마음만 먹으면 사업하기 좋은 세상이구나 싶다.
Lesson
위에 기재된 대부분의 지표는 시장 사이즈에 준해서 판단해야 하는데 남의집은 특정 지을 수 없는 시장이라 아직 뭐라 판단하기엔 이르다. 다만, '예약자/방문자' 지표는 유의미했다. 2명이 신청해도 1명만 입장할 수 있는 상황, 즉 남의집 상품에 대한 수요가 남의집 공급을 초과했다는 신호다. 이 둘의 벨런스를 맞추기 위해서는 가격을 높여 수요을 낮추거나, 공급량을 늘려야 하는데 플랫폼 확장을 위해서는 공급량을 늘리는 것이 답이다.
남의집은 양면시장이다. 모르는 사람의 집에 가보고 싶은 게스트의 니즈와 낯선 이들을 집으로 들이고 싶은 호스트의 니즈. 이 두가지 니즈가 네트워크 효과를 발휘할 때 비로소 플랫폼 비즈니스로 기능할 수 있을 터. 지난 300여일간의 운영을 통해 게스트의 니즈에 대해서는 확신이 섰다. 남의집을 찾은 손님들이 현장에서 전하는 만족감 뿐만 아니라 2배가 넘는 공급 대비 수요 지표가 이를 입증한다.
문제는 호스트의 니즈인데, 지금까지의 host acquisition 패턴은 아웃바운드 영업이 90% , 인바운드 요청이 10%를 차지한다. 나의 지인 혹은 내 생활 영역에서 발견되는 분들을 꼬득였거나, 남의집을 응원해 주시는 분들이 호스트로 적합한 지인을 추천해 주셔서 참여하게 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렇게 비자발적인 호스팅 패턴이 지속된다면 결국 공급은 고갈될 것이 자명하다.
뿐만 아니라 일회성에 그치는 현재의 호스팅 패턴 역시 재검토해야한다. 숨은 진주를 채굴하듯 어렵게 발굴한 호스트의 콘텐츠가 지속적으로 공급이 되어야 하는데 한번에 그치고 말면 호스트 섭외를 위해 투자한 비용 대비 효과가 떨어지게 마련이다. 호스트들이 정기적으로 그들의 집을 개방하여 콘텐츠를 제공하게 만들 동인을 찾아야 한다.
답은 현장에 있다.
자발적이며 지속가능한 호스팅의 동인을 찾는 것. 이건 책상에 앉아 자료를 뒤진다고 답이 나오는 게 아니다. 더 많은 호스트를 만나서 그들을 남의집 무대에 올려보는 경험치를 늘리는 과정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고로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호스트 발굴에 더더욱 박차를 가해야 하는 시점이다. 어떻게? 나는 몸뚱이가 하나이니 또다른 몸뚱이를 찾아야 한다. 나와 함께 남의집 호스트를 발굴할 수 있는 동료가 필요하다.
value
처음엔 남아도는 거실을 유의미하게 재활용하자는 공유경제의 프레임으로 시작한 프로젝트였다. 뭐든 재밌고 엉뚱한 이벤트가 거실에서 펼쳐질 수 있는지를 다양하게 실험해 보자는 것이 주목적이였다. 그러다 다양한 사람들의 집으로 확장하며 호스트가 가진 콘텐츠를 전달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게 되었고 그렇다 보니 자연스레 강연 형태의 꼴을 갖추게 되었다. 이때까지는 누군가의 가정집이라는 독특한 공간에서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콘텐츠로 소비하는 것이 남의집 프로젝트의 핵심가치였다.
남의집에 참석하는 손님들에게 항상 서비스 피드백을 받아왔다. 구글폼 형식으로 작성한 설문지를 카톡으로 보내 솔직한 의견을 구했고, 너무도 고맙게도 대부분의 손님들이 정성스럽게 의견을 전해주었다. 설문 덕분에 내가 현장에서 캐치하지 못했던 많은 불편, 불만 사항들이 노정되었고 이를 계속 개선해 나가고 있다. 그 중에서 아쉬웠던 점을 묻는 질문 항목에 '참석한 다른 손님들과도 자유롭게 이야기 나누고 싶어요' 라는 답변을 여러번 받았다. 당시엔 호스트와 게스트를 연결시켜주는 것에만 집중했던터라 전혀 예상치 못했던 게스트의 니즈였다.
'일단 해보고 판단하자'는 마음으로 손님들끼리도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자리를 마련했다. 남의집 영화관 뒷풀이가 그 테스트 베드였다. 해보니 왠걸, 세상 재밌게 놀더라. 모르는 사람 여럿이 한데 모여 놀면 어색하지 않을까? 이야기가 지속될 수 있을까 싶었지만 서로 이야기를 술술술 꺼내 놓는 폼이 원래 알던 사람들 같더라.
그렇다면 특정한 주제없이 노는 걸 주제로 남의집을 해보자! 고 생각해서 내놓은 것이 남의집 마당놀이였다. 말그대로 집마당에서 놀아보자는 것이 기획의도였고, 호스트분들께서 너무도 기가 막히게 진행을 해주어 장작 8시간을 내리 먹고 놀다가 새벽 2시에 '겨우' 자리를 파했다. 도심형 게스트하우스 느낌으로 낯선 사람들끼리 찐한 시간을 보낸 셈인데, 내가 체감하기에 게스트나 호스트의 만족도가 이전의 남의집과는 차원이 달랐다. 이때부터 남의집 프로젝트의 핵심가치가 콘텐츠 전달이 아닌 관계 형성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모르는 사람의 집에 놀러가서 처음 만난 사람들과 어울려 시간을 보낸다.
현재 버전으로 남의집 프로젝트의 핵심가치를 이렇게 명문화해 보았다. 마지막 두 어절인 '시간을 보낸다'가 너무 두루뭉술한 면이 있지만 실제로 낯선 이들이 모여서 나누는 경험이 여러가지 형태여서 '논다', '먹는다', '영화를 본다' 식으로 일반화할 수 없기에 여러 경험을 아우를 수 있는 표현을 택했다. '이게 최선입니까?' 물으신다면 그렇다.
next
호스트 섭외에 박차를 가할 것이다. 목적은 두가지인데 1)자발적이고 지속가능한 호스트 동인 발굴 2)공급량이 늘어났을 때의 이용자, 게스트의 반응을 보며 플랫폼 비즈니스로의 가능성 타진. 이렇게 더욱더 공격적으로 호스트를 발굴하기 위해 남의집 프로젝트에 두가지 변화를 주기로 했다.
내가 풀타임으로 남의집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함께 할 동료를 꼬셔서 남의집 프로젝트를 함께 운영한다.
하늘도 돕는지 이 타이밍에 회사에서 3개월간 안식휴가를 받게 되었다. 카카오는 5년 근속한 직원에게 3개월간 유급 휴가를 주는데 며칠전 내가 5년을 채웠다. 이런 타이밍에 3개월의 시간이 주어진 것은 운명의 데스티니라 여기며 풀타임으로 남의집 프로젝트를 이끌어 볼 생각이다. 동료를 꼬시는 계획은 어느 정도 진행이 완료되었으니 조만간 상황을 업데이트할 예정.
위의 글들과 결이 다른 이야기이나 공유할 것이 한가지 더 있다. 조만간 남의집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던 남의집 1호를 떠날 예정이다. 전세로 머물던 공간이였는데 이런저런 이유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이미 남의집 프로젝트는 다양한 사람들의 집에서 진행하는 방향으로 정착이 되었기 때문에 1호가 없어지는 것이 프로젝트를 운영하는데 큰 지장은 없다. 다만, 상징적인 공간이 사라지는 것에 대한 정서적 박탈감은 어쩔 수 없다.
남의집 1호에서 지낼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남은 기간엔 남의집 1호에서 정말 하고 싶었던, 모시고 싶었던 사람들과 뜻깊은 남의집 프로젝트를 진행해 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