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지기라는 별명으로 남의집 프로젝트를 시작한 지 2년이 지났다. 장난처럼 시작한 남의집은 그 사이 나의 업이 되었고 문지기는 별명이 아닌 직함이 되어 내 명함에 고스란히 새겨졌다. 초면인 누군가를 만나면 으레 대표가 아닌 문지기라고 불러 달라며 이렇게 얘기한다.
제 업을 가장 잘 정의내리는 단어에요.
누군가의 집 문을 열고 그곳에 낯선이들을 들이는 일을 하거든요.
그렇게 문을 여닫는 일을 하니 문지기죠.
문을 여닫는 장소가 집이라는 사적인 공간이였고, 그렇게 열린 문을 통해 오가는 것이 취향이였다. 처음부터 취향을 의도하지는 않았다. 개인적으로 취향에 무심했고, 그 의미에 대해 깊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한데 집이라는 공간이 주는 맥락이 집주인들의 소소한 일상을 끄집어 내게 했으며, 그것을 공유하고 공유받은 사람들이 취향으로 향유하기 시작했다. 거실을 열었을 뿐인데 그곳에서 취향을 발견한 셈이다.
한두달에 한번꼴로 열리던 남의집이 지금은 하루에도 서너개씩 동시에 열리며 다채로운 취향이 남의집 플랫폼을 통해 공유되고 있다. 이 모든 남의집이 열리기 위해 집주인들은 문지기를 컨택해서 함께 기획하고 오픈하는 프로세스를 거치는데, 이 과정에서 문지기라 불리우는 내게는 온갖 취향이 모이게 되었다. 2년간 100여명의 집주인이 남의집 호스트가 되어 거실을 열어 주셨으니, 내가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취향만 100여개나 되는 셈이다.
감사하게도 이렇게 뚜렷한 취향을 갖고 계신 호스트분들과 친분이 생기니 내 삶이 참으로 풍성해졌다. 그분들 덕에 내가 어떤 취향의 사람인지 새롭게 발견을 하게 될 때가 많았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내게 이렇다 할 취향이랄 것이 없었다. 없었다기 보다는 알 길이 없었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겠다. 한데 남의집을 통해 다양한 취향을 접하면서 내 취향의 호불호를 확인하게 되었고 이 과정을 통해 지금은 나의 취향을 몇문장 정도로 표현할 수 있다.
남의집 건축학개론, 남의집 취향투자 의 이재헌, 장인성/이현주 호스트께서 전해준 집짓기 그리고 집에 취향을 더하는 이야기를 들으며 내 집, 내 공간에 대한 선호도가 생겼고, 남의집 한옥취향 김정훈 호스트께서 내어주신 다양한 위스키 덕에 내 입에 맞는 위스키를 발견했다. 남의집 고수에 참석해서 8시간동안 고수로 만든 음식을 먹으며 '난 정말 고수랑 안맞는구나' 깨닫기도 했다.
이처럼 취향은 타고나는 것일 수 있지만 그것을 발견하고 끄집어 내어 인지하는 과정에는 어느 정도의 노력과 환경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를 위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다양한 취향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서 직간접적으로 경험하는 것이다. 타인을 통한 자기 발견만큼 확실한 것이 없듯이.
남의집에 신청하시는 손님들 중 많은 분들이 신청 동기로 '나의 취향을 찾아가는 과정입니다'라는 말씀을 남기신다. 취향이 존중받고, 중요한 요즘이기에 다들 각자의 취향을 알고 싶으나 이것을 클래스로 학습받기 싫은 분들이 남의집에 놀러가서 집주인의 취향을 옅보고 본인에게 대입해 보는 것이다. 그렇게 각자의 취향을 찾아 남의집에 놀러오시는 분들이 늘고 있다.
모든 분들이 남의집에 놀러올 수는 없기 때문에 문지기라는 이름으로 경험한 다양한 취향을 더 널리 공유하고 알려서 각자의 취향을 발견하고 싶은 분들에게 도움을 드리고자 책을 한권 쓰기로 했다. 이분들께는 남의집 문을 열어 드리는 대신 남의집으로 담았던 취향을 전한다는 의미로 취향의 문지기라는 이름으로 나를 소개해볼까 생각 중이다.
출판사와 계약을 맺은지 언 5개월이 다되어 가지만 이제사 첫 글을 두드리고 있다. 남의집 프로젝트를 사업으로 굴려보겠다는 압박감 때문에 글을 쓸 마음의 여유가 도통 생기지 않았다. 해서 사업이 조금더 궤도에 오르면 글을 써보자 했는데, 사업으로서의 남의집은 산넘어 산이라 에라 모르겠다며 이렇게 설연휴의 강제 휴식을 발판삼아 책을 쓴다고 공표를 해본다. 나름 초강수인데 이러면 글을 좀 쓰지 않을까? 부디 이 글로 내 책의 편집자 M의 마음이 한결 놓이길..
남의집은 창업 아이템이기 이전에 내가 거실에서 꼼냥꽁냥 놀면서 굴려온 아이여서 그 경험과 인사이트는 꼭 책으로 남기고 싶은 바람이 컸다. 해서 어떻게든 시간을 짜내어 2년여의 편린들을 한권의 책으로 내어놓고 싶다. 부디 성공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