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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경 Apr 21. 2016

심향(心鄕)

빠이(Pai), 나의 마음의 고향



내가 초연 스님을 찾아간 이유는 믿음이나 종교적인 이유에서가 아니었다. 치앙마이에서 머물 적 숙소 주인장이, ‘빠이에 가면 나이 지긋하신 스님 한분이 운영하는 게스트 하우스가 있는데 밥도 삼시 세끼 다 챙겨 먹일 뿐더러 스님이 고기를 그렇게 잘 썬다더라’고 말한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잠깐, 스님과 고기. 중은 생명을 아끼고 살생을 범하지 말아야 하는 존재인 반면 고기는 살생의 산물이다. 처음엔 두 대상 사이에는 일종의 당위적인 괴리가 존재한다고 믿고 있었으나 어쩌면 우리의 삶 자체도 이러한 모순덩어리일지도 모른다. 초연 스님으로부터 인생의 답은 아니더라도 한 가닥 실마리라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심정으로 애당초 잡아놓았던 일정과 숙소는 뒤로 하고 나는 무작정 빠이로 향했다.     


세 시간 반 꼬부랑 산길을 지나 야밤에 도착한 빠이엔 부슬부슬 비가 내리고 있었다. 우산 대신 빨간 담요를 뒤집어쓰고 야시장 노란 불빛으로 가득 찬 좁은 거리를 활보했다. 길을 잃었다. 아니, 어디선가 흘러나오는 라이브 음악을 따라 목적지 없이 방황했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빗물이 옷을 타고 흘러 들어와 몸을 식히는 차가움을 실감하고는 비를 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 즈음, 거리에 서있는 한 청년을 붙잡고 전화기를 빌려 썼다. 잠시 후에 자신도 어제 도착한 투숙객이라고 소개한 사내가 스쿠터를 타고 나를 데리러 왔다.      


숙소에 도착하니 머리가 길고 한 손에는 라이터, 입에는 담배가 물려있는 한 노인이 나를 맞이했다. 내가 알던 스님의 이미지와 크게 다른 그의 모습에 의아해 했지만 돋보기안경 너머로 쳐다보는 총명한 눈빛과 볼까지 내려온 그의 귓불을 보고 흡사 부처와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나의 젖은 머리를 가리키며 수건을 건낸 초연 스님은 말을 꺼내셨다.


“먼 길 오느라 밥도 제대로 못 먹었을긴데 된장찌개 끓여놓았으니 좀 드시게. 잠시 여기 앉아서 내랑 얘기 좀 하지”     

부산에서 태어나 자랐다는 스님은 경상도 사투리가 말에 배어 있었다.

“그래, 여기는 어떻게 알고 왔노? 여기가 그리 편한 곳은 아닌데...”

“전에 묵었던 숙소 주인장이 소개해줘 왔습니다”

“아...그 카오산 인 치앙마인가...뭐시기”

그는 마당 한켠에 공사중인 공터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보이나? 저게 바로 우주에서 온 이티들과 싸우는 유에프오가 뜨는 활주로야”

“...”     


오래 살았으면 형님이고 좀 덜 살았으면 아우가 되는 이곳에선 암묵적인 규칙이 몇 가지 있다.(스님은 자신이 열네 살이라고 믿는다. 자고로 스님이 이곳에서 제일 어리다) 첫째, 설거지는 개인이 하되 단 저녁엔 가위바위보 이긴 사람이 설거지를 한다. 그 이유는 진 사람은 기분이 나쁠 텐데 설거지까지 하면 얼마나 더 나쁘겠냐는 논리(?)에서 나온다. 둘째, 모든 사람이 이곳에서 편하게 지낸다. 즉 다른 사람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는 자는 이곳에 머무를 수 없다. 그런 사람은 이곳을 떠나야한다. 스님은 인간 사이의 관계 맺음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사랑도 하지 말고 원한도 사지 말라. 사랑하면 보지 못해 괴롭고, 원수를 만들면 볼까 괴로우니...”  



젊어서 월남전에 참전하고 자식 둘을 키워냈으며 산전수전을 겪으며 살아오신 스님은 매일 꼭두새벽부터 일어나 늘 같은 자리에 앉아 줄담배를 태운다. 그리고 그는 매일 같은 하늘을 봐도 매일 매일 새롭다고 말한다. 모든 게 마음에 달려있으니 그에게는 담쟁이에 만개한 나팔꽃도 팡파레를 울리며 아침을 깨우는 나팔수다. 스님을 모르는 이들은 그를 일개 땡중 혹은 파계승이라 여길 수도 있겠다. 하지만 적어도 나에게 그는 수행을 다 마친 부처요. 그가 있는 이곳은 부처가 설법을 펼치던 바라나시다. 오랫동안 깊은 잠을 잘 수 없던 나는 이곳, 나의 ‘마음의 고향’에서 오랜만에 달콤하고도 깊은 잠을 잘 수 있었다.


photo by  은소시

심향을 방문하는 여행객들과 가장 비슷한 동물을 꼽자면 고양이가 아닐까. 고양이들 사이에도 입소문이란 것이 존재하는지 한 마리가 두 마리가 되고, 두 마리가 네 마리가 되고, 이렇게 늘어난 것이 어느새 여섯 마리가 이곳에 눌러앉았더란다. 이제는 각자 제 밥그릇 갖고 살아가는 이들은 여김 없이 적은 돈으로 삼시세끼 얻어먹는 우리와 다름없는 투숙객 신세다.      


심향에 머무르는 고양이들은 고양이 치고는 꽤나 거창한 이름을 가지고 있다. 스님은 이들을 니체, 칸트, 헤겔과 같은 철학자의 이름을 붙이셨다.


“이분들은 느그들보다 훨씬 인생의 대 선배님들이니 함부로 다루지 마래이”

언제 잡았는지 고양이들이 새앙쥐를 입에 물고 이리저리 술래잡기 놀이를 하고 있다.      

이렇게 제 멋대로 들어와 제 집인 양 살아가는 고양이들을 지켜보고 있자니 얼마 전 방문했던 일본인 히피촌이 떠오른다.  빠이 시내에 살던 히피들이 몰려드는 관광객으로 인해 시내 땅값이 상승하자 어쩔 수 없이 산골짜기까지 밀려나 그 곳에 히피촌을 건설하고 문 빌리지(Moon village)라 명명했다. 심향과 문 빌리지의 공통점은 항상 열려있다는 것. 단 두 곳 모두 찾아가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정처 없이 등짐살이 하며 돌아다니는 이들이나 히피들은 고양이처럼 슬금슬금 들어와 자릴 잡는다. 나 또한 고양이와 다름없는 신세를 가장하여 들어가 대접 받고자 하는 심정으로 문 빌리지를 찾아가기로 결심했다.      


“스님, 여기 주변에 문 빌리지라는 곳이 있다고 들었는데 어딨는지 아세요? 지도에는 아무것도 안 써 있어서...”

“문 빌리지? 거긴 찾아가기 힘들긴데...나도 가끔 가는 길이 헷갈려. 와? 거기 갈라꼬?”

“예. 가서 히피들 좀 만나 보려고 합니다”

“내 거기 추장하고 좀 알제. 가면 찌압이라는 양반이 있을게야. 내가 보냈다고 하면 봉다리에 과일도 싸주고 할 테니 받아오게나”

“예 알겠습니다. 그런데 가는 길이...”     


스님은 지도에 대충 X표시를 해주시고는 그 쯤 있을 거라고 하시더니 저기 히피 한 명 앉아 있으니 꼬셔서 데려가는 게 빠를 거라고 하셨다. 스님은 미스터 박을 가리키고 계셨다. 족히 몇 달은 안 깎았을 곱슬진 머리카락과 허름한 옷가지, 그리고 입에 물린 담배. 세상 걱정 없는 듯한 말투까지... 그는 자유로운 영혼이었다. 문 빌리지에서 여러 번 같이 살자는 제의도 받았지만 그 역시 쉽사리 고향을 떠나지 못하는 모양이다.     


미스터 박을 따라 도착한 문 빌리지. 스쿠터를 타고 산길을 따라 삼십 여분을 달리다보니 히피들의 영역을 나타내는 표지가 나타났다.      

‘빠이 어디쯤(Somewhere in Pai)-닌자 조’      

두 개의 나무 기둥 위에 붙인 판자. ‘빠이의 어디쯤’이라니 참 그럴싸하다. 이들은 지도에 조차 속하기를 거부하는 것일까?      


문 빌리지의 히피들은 새로운 친구를 맞이할 때면 파티를 열어준다고 들었던 터라 들뜬 마음을 감추지 못하며 다들 길가에 삐뚤빼뚤 스쿠터를 주차했다. 하지만 그곳에 도착했을 때 나를 맞이한 건 시끌벅적한 환영이 아닌 세상 그 어디에서도 느껴볼 수 없었던 고요함이었다. 아뿔사, 히피들은 이미 떠나고 없었다. 얼마 전 까지도 북적댔던 히피들이 이제는 모두 뿔뿔이 흩어져 어딘가에서 곧 다시 쌀 짐을 풀고 있을 터였다. 그 곳엔 왕초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프슥 슥 슥슥... 프슥스슥 슥 스스스슥...


풀이 왕성하게 자라 입구조차 찾기 힘들만큼 적막한 마을을 나는 한걸음씩 길을 내며 들어갔다. 몰락한 왕국의 숨겨진 흔적을 발굴하는 고고학자처럼 나는 잊혀진 마을을 경건한 마음으로 입장했다.      

버려진 제단, 차갑게 식은 아궁이, 녹이 슬어 붉어진 식기, 더 이상 의식에 쓰이지 않는 북...     

그들이 섬기던 신은 그 어디에도 없었고 풀이 무성한 공터에는 그들이 춤을 추며 찍었을 발 도장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짚으로 지은 오각형 모양의 의식의 장소에 들어섰다. 누가 이곳에 마지막으로 들어선지 몇 달이나 지났을까, 겨울 아침 차창에 얼어붙은 서리처럼 나무 마루 위에 하얗게 쌓인 먼지를 밟으며 여름이 한창인 팔월에 이곳은 벌써 쓸쓸한 겨울이 왔음을 느꼈다. 흙으로 지은 아궁이 옆면에 파인 숫자 2015. 아마도 2015년을 뜻하는 것이리라.

‘과연 이곳에 2016년이 올까...’     

나는 뒹굴어져 있는 북채를 집어 들었다.


둥둥둥둥둥... 둥 두루둥둥... 둥둥... 두두두두둥... 반응이 없다. 둥...둥...식은땀이 흘렀다. 둥...둥둥...빈 공간을 울리는 북 소리. 두웅...두웅...탁!


북 장단은 더 이상 절정에 이르지 못하고 내 마음 속으로만 잔향을 울리며 서서히 사라져갔다. 신이 나서 집을 떠난 고양이는 풀이 죽어 다시 심향으로 돌아왔다.       

마이 팬 라이(Mai-pen-rai)를 신조로 외치며 살았을 그들은 떠나보냄에도 아무런 여운을 남기지 않았나보다. 언젠가는 다시 돌아온 히피들로 북적거릴지도 모를 이 장소를, 아궁이 옆면에 새로운 년도가 새겨질 그 때를 제단 위 외롭게 앉아있는 그들의 신은 기다릴지도 모르겠다.

문빌리지. 우거진 풀은 우리를 경계하는듯 했다.

고향이란 언제든지 돌아갈 수 있는 장소이며, 또한 그곳을 떠나 타지에 있을 때 더 큰 의미를 갖는다. 말 그대로 심향은 언제든 지친 나의 마음을 이끌고 가도 돌아온 탕자에게처럼 안식처를 제공해줄 나의 마음의 고향이요, 초연 스님은 떠나간 자식을 기다리며 고향을 지키고 있는 노인이다.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고향이 있다는 안도감 때문일까. 나는 이제야 비로소 이곳을 떠날 수 있음을 느꼈다. 익숙함을 넘어서 나태함이 나를 붙잡기 전에 나는 곧장 터미널로 가 치앙마이로 가는 버스표를 끊었다. 내일은 아마 다른 곳에서 아침을 맞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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