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주변 유일한 정신건강사회복지사
엄마의 물건을 챙겨서 면회를 갔다. 입원하는 동안 맛있는 거 잔뜩 먹으라고 간식비는 오만 원으로 달아 놓았다. 면회실에서 만난 엄마는 다른 사람 같았다. 약에 취하는 것 같다는 그의 말대로 힘이 쭉 빠져 있었다. 엄마는 자기 얼굴을 쓸어 만지며 교주를 만나지 못해 생기가 돌지 않는 거라고 했다. 우리를 구원할 문이 다 열렸는데, 한 발자국만 더 내딛으면 되는데 병원에 갇혀 버렸다며 울상을 지었다.
대화가 정상적으로 되지 않아 싸울 가치도 없었다. 나는 병실을 소개해달라고 주제를 바꾸었다. 엄마는 간호사, 실습생, 같은 방 환자들과 인사를 시켜 주었다. 바로 옆 침대 아주머니는 수면제를 아무리 많이 먹어도 잠을 못 자는 사람이었다. 반대편 여자는 나랑 동갑인데 아주 조용해 보였고, 나머지는 TV 드라마에만 관심을 가지는 할머니들이었다.
엄마는 다른 방을 쓰는데도 친해진 사람이 있다며 문 밖을 나섰다. 그는 휴게실에서 실습생들과 루미큐브를 하고 있었다. 나는 그 옆에 앉아 명절날 모르는 어르신을 만났을 때처럼 어색하게 인사했다. 그는 대뜸 내 손금과 신점을 봐주었다. 은색 목걸이를 껴야 복이 들어온다나 뭐라나. 와중에 엄마는 그걸 또 진지하게 듣고 있었다.
면회가 끝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아 시험은 진작 포기했고, 인터넷으로 비슷한 사례와 대처법을 찾기 바빴다. 폐쇄 병동에는 휴대전화를 반입할 수 없는데, 엄마와 연락이 닿지 않자 교회 사람들로부터 전화와 문자가 쏟아져 왔다. 엄마가 사전에 가족들의 개인 정보를 모두 알려준 상태라 우리 집, 아빠의 회사, 언니의 가게에 찾아오기 시작했다. 집에 아무도 없을 때는 음료수가 가득 들어 있는 비닐봉지를 문고리에 걸어 두고 갔다. 하지만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그들은 언니의 영업장에 손님인 척 접근해 건물을 영상으로 남겼다. 엘리베이터는 어디서 타면 되는지, 가게의 이름은 무엇인지 불법으로 촬영하다 걸려 경찰을 불렀다. 그들은 엄마를 찾기 위해 우리를 늘 감시하고 있었다. 나는 그날로 중무장을 하고 다녔다. 모자와 마스크는 기본이고, 후드티로 한 번 더 얼굴을 가렸다. 그리고 10초에 한 번씩 뒤돌아 보았다.
누군가 나를 감시하고 있다는 생각에 혼자서는 잠에 들지 못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있다는 걸 확인하려고 아침 해가 뜰 때까지 눈을 뜨고 있거나 언니와 붙어 있었다. 나에게 조금이라도 친절한 사람은 모두 사이비에 빠진 사람처럼 보였다. 사회생활을 하다 만난 사람이면 종교가 있는지 없는지, 사이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떠보기 바빴다. 엄마가 퇴원을 하면 바로 교회에 달려가 우리를 배척할까 봐 무서운 것과 내가 불안에 떨며 살아야 한다는 억울함이 공존했다. 혼자 있기 무서워 자취방은 그냥 빼버리고 캐리어를 들고 도망치듯 나왔다. 학교에 나가기는 했지만 출석체크를 하는 것에만 의의를 두었다.
나는 정신과와 관련한 경험을 많이 해 본 어른이 필요했다. 다니던 학교에 정신건강사회복지사로 일했던 교수님이 한 분 계셨다. 주변에 믿을 사람은 한 명도 없다고 생각했지만, 교수님이라면 이런 사례를 흔하게 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연구실을 찾았다. 그는 따뜻한 차 한 잔을 내주고 머리를 귀 뒤로 쓸어 넘겼다. 들을 준비가 되었다는 뜻인 것 같았다. 교수님은 내 이야기를 끝까지 듣더니 엉뚱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라흐마니노프의 협주곡을 아느냐는 물음이었다. 우울증이 심했던 라흐마니노프가 최면요법 치료를 받고 발표한 곡으로, 의사에게 헌정했다고 한다. 묵직한 멜로디와 베이스, 그리고 가끔씩 날아드는 높은 음의 흐름이 아름답다고 했다. 강렬하게 휘몰아쳤다가 잔잔해지는 리듬이 하루에 수십 번씩 요동치는 감정과 유사해 몰입이 잘 될 거라고 덧붙였다.
교수님은 라흐마니노프의 연주를 자기 전마다 듣는다며 강력하게 추천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했다.
"주변에서 아무리 너를 못 살게 굴어도 네 인생을 살아야 해."
엄마의 인생을 바꾸려고 에너지를 쏟지도 말고, 걱정된다는 이유로 무리하게 도와주지 말고, 나쁜 소리를 들어서 기분이 엉망이어도 지금 내가 해야 하는 걸 지켜 내라는 거였다. 교수님에게는 그게 자기 전마다 피아노 연주를 감상하는 것이었다. 주변에서 자기를 아무리 못살게 굴어도 평소에 좋아하던 음악을 듣고 사랑하는 사람과 식사를 하며 우선순위를 지키면 그 뿐인 거다.
교수님은 엄마의 심리를 해석하기 보다는 내가 뭘 좋아하는지 물어보셨다. 앞으로 어떤 인생을 살고 싶은지, 어느 나라를 여행하고 싶은지, 좋아하는 작가는 누구인지, 자기 수업은 어려운지 쉬운지. 그런 걸 궁금해 하셨다. 내가 상상한 면담은 이런 식이 아니었지만, 오랜만에 나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다. 엄마가 입원한 날부터 매분 매초 그의 인생만 생각했었다. 어떻게 하면 회복할 수 있을지, 어쩌다 그 사이비에 빠진 건지, 앞으로 엄마가 어떤 인생을 살았으면 좋겠는지 같은 질문이 머릿속에 꽉 차있었다.
그래서인지 교수님과 나눈 대화 한 번으로 모든 게 바뀌지는 않았다. 평소처럼 엄마를 보러 면회를 갔고, 엄마가 하는 말에 무슨 뜻이 있을지 하루 종일 생각하고, 전국에 있는 이단 상담소에 전화를 돌려 가며 조언을 구했다. 1년 전부터 계획한 포르투갈 여행을 취소하고 엄마를 간병할까 고민하기도 했다. 내 삶의 주인공은 여전히 엄마였다.
하지만 교수님의 질문에 답한 나의 말들은 잔상처럼 남아 있었다. 상처를 치유하는 인생을 살고 싶다는 말, 유럽 여행을 하고 싶다는 말, 김영하와 이슬아의 글이 좋다는 말, 교수님의 수업은 이미 놓쳐서 더 어려워졌다는 말. 나의 머릿속에 가득 차 있던 의문의 주어가 엄마에서 나로 조금씩, 아주 조금씩 바뀌었다.
2019년 5월 30일 (목) 일기
사례관리론 교수님과 면담을 했고, 나도 교수님 같은 어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나저나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을 들었는데 너무 내 스타일이 아니다. 이걸 어떻게 자기 전에 듣지? 나는 아무래도 재즈힙합이 더 잘 맞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