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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wi Sep 02. 2022

정신과 병동에서의 돌발상황, 어떻게 대처하면 좋을까?

폐쇄병동은 처음입니다만

정신건강사회복지사 2급 수련 과정이 모두 끝났다. 2021년 3월부터 2022년 2월까지, 1년간의 수련 경험은 대부분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돌이켜 보면, 수련이 시작되고 환자분들을 처음으로 한 분 한 분씩 만났을 때가 가장 떨렸던 것 같다. 병동마다 분위기도 너무 달랐고, 처음 보는 사람에게 당최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몰라 막막했기 때문이다.


내가 수련을 받았던 병원에는 조현병, 우울장애, 양극성 정동장애를 진단받은 환자분들이 가장 많았고 품행장애, 지적장애, 알코올 사용 장애를 가진 환자분들도 적지 않게 만날 수 있었다. 환자의 연령대, 질환의 종류와 정도, 성격이 너무 다양하다 보니 이런저런 일들이 많이 있었다. 그래서 솔직히 수련 초반에는 넋이 나간 채로 다녔다. 여러 명이 동시에 자기 말을 들어달라고 호소하고, 갑자기 욕을 하고, 무리한 부탁을 하는 상황을 처음 접해서 더 당황스러웠다.


매일 기가 빨렸지만 역시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 했던가. 언젠가부터 웬만한 일에는 당황하지 않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지금부터 내가 직접 경험한 각종 돌발 상황을 통해 초보가 어떻게 대처하면 좋을지 이야기해 보려 한다.


※ 모든 예시는 실제 상황을 각색한 것이다.





상황 1.

선생님, 저 큰일 났어요!


Photo by Ben White on Unsplash



갑자기 한 환자가 나의 팔을 확 잡아당기면서 큰일이 났다고 한다. 복도 끝으로 나를 끌고 가서 속삭인다.


"선생님, 큰일 났어요. 이리 와 봐요. 우리 동생이 사실은... 골목에서 맞았거든요? 식당에서 장사할 때. 그날 비가 참 많이 내렸어. 아니 키가 180cm가 넘는 아저씨들이 찾아와서 갑자기 내 동생을 막 끌고 가더라니까요? 내가 처음에는 조용히 지켜봤어. 그랬는데 동생이 계속 우니까 참을 수가 없잖아요 내가 또 가족인데. 그래서 이봐요 아저씨! 큰소리를 치니까 어떻게 됐는지 알아요? 이거 아무한테도 말하면 안 된다?"


이 환자는 양극성 정동장애를 진단받았고,  내가 먼저 이야기를 끊지 않으면 1시간이고, 2시간이고 이야기가 계속될 것 같은 상황이다. 이럴 때는, 환자분의 정서를 환기시키고 대화를 중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잠시만요 OOO님. 일단 흥분을 조금 가라앉히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OO님 얘기를 쭉 들어보니까 동생분 걱정이 많이 됐겠는데요. 그런데 제가 대신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이 없어 보이네요.", "생활하시다가 불편하신 점은 없으신가요? 있으면 언제든 말씀해 주세요.", "OO님, 제가 다른 분들과도 인사를 나누어야 하는데 오늘은 먼저 일어나도 괜찮을까요?" 등 내가 개입할 수 없다고 판단되면 대화를 중단하고 그 이유를 설명한다.



상황 2.


 제가 꼴 보기 싫어서 뒤돌아본 거죠, 지금?


Photo by Andre Hunter on Unsplash


정신재활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생긴 일이다. 이번 회기의 주제를 화이트보드에 쓰고 있었는데, 한 환자분이 "제가 꼴 보기 싫어서 등 돌린 거죠?"라며 버럭 화를 내셨다. 다른 사람의 행동이나 사물이 자기와 관계있을 것이라 믿는 '관계망상'과 누군가 자기를 해칠 것이라 믿는 '피해망상'이 발현된 것이다. 나는 아무런 의미 없이 한 행동인데 환자분은 사실과 다르게 해석해 이런 상황이 자주 생기곤 한다.


이럴 때는 '사실'을 말하면 된다. 왜 그렇게 생각하냐며 따지거나 싸워서는 안 된다. "저는 모든 프로그램에서 등을 돌려서 화이트보드에 글을 써요. OOO님에게 개인적인 감정이 전혀 없습니다."처럼 모든 사람에게 하는 행동이며, 악감정이 없다는 사실을 전달한다.


망상에 대처하는 방법은 2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1) 망상을 고치려고 하지 않는다. 논리적으로 반박하면 망상의 내용이 더 체계화되기 때문이다.

(2) 망상의 내용 자체보다는 '감정'에 집중한다. 사실 여부를 가리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망상 내용으로 인해) 어떤 기분이 드는지 질문함으로써 환자가 망상 내용을 구체화하는 것을 멈출 수 있게 유도한다. 



번외로, "내가 정부기관에 취업시켜줄게."와 같은 과대망상, "이효리가 나한테 사랑한다는 손짓을 보냈어요. 우린 사실 사랑하는 사이에요."와 같은 색정 망상 등 다양한 망상을 마주할 수 있다. 이때, "어떻게 취업시켜 주실 건데요?"라거나 "와, 이효리랑 아는 사이라고요? 대단하다."처럼 그 내용에 휩쓸리지 않도록 주의하도록 한다.




상황 3. 


네가 먼저 시작했잖아 이 XX야!


Photo by Afif Kusuma on Unsplash


프로그램을 하는 와중에 환자분들이 싸운다. 소리를 치고, 비난하고, 치고받고 싸울 때 어떻게 할까. 


말싸움이 시작되면 '프로그램 주제와 관련이 없음' 그리고 '다른 참여자가 집중하는데 방해가 됨'을 강조한다. 싸운 사람들을 떨어뜨려 자리를 배치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그래도 프로그램을 진행하기 어려울 정도로 싸움이 심각해진다면 당사자가 더 이상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없다는 점을 안내한다.


말싸움에서 그치지 않고 폭력을 사용하는 경우, 진행자는 그 자리를 비워서는 안 된다. 힘으로 둘을 떼어놓으려다가 오히려 내가 다칠 수 있기 때문에 폭행을 몸으로 막지 않도록 한다. 대신 다른 참여자에게 보호사님을 불러 달라고 요청한다. 보호사님이 올 때까지 다른 참여자가 다치지 않게 유의하고 차분하게 기다린다.


※ 돌발 상황을 미리 방지하기 위해 프로그램 진행자는 문과 가까운 곳에 있는 것이 좋다. (면담실에서도 마찬가지)



상황 4. 


"남자친구 있어요?", "어느 동네에 사세요?", "몇 살이세요?"


Photo by Joseph Rosales on Unsplash


정신과에서 일을 하면 이런 질문을 정말 자주 듣는다. 환자의 입장에서 '내가 싫어하는 혹은 좋아하는 사람이 생각나서' 하는 질문일 것이다. 그런데 병원에서는 치료진이 사적인 정보를 주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치료'가 가장 큰 목적이기 때문이다. 사적인 정보를 너무 많이 전달하면 전이(transference)가 일어나 치료를 방해할 수 있기에 조심하는 것이 좋다. 무엇보다 병원의 원칙에 따르는 것이 가장 좋다.


나는 보통 애매하게 답하거나, 답하지 않거나, 왜 궁금한지 물어보았다.


(1) 애매한 답 - "솔로예요.", "OOO 역 근처에 살고 있어요.", "20대 후반입니다."

(2) 답하지 않음 - "치료와 관련한 내용이 아니라면, 그 부분은 알려드릴 수 없어요.", "이런 얘기 하면 저 잘릴 수도 있어요. 양해 부탁드려요."

(3) 궁금한 이유 물어보기 - "제 전화번호가 왜 궁금하신가요?"



시설이나 센터보다는 병원이 조금 더 까다로운 편이다. 그래도 수련을 하면서 왜 개인 정보를 주지 말라는 원칙이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치료에 방해가 되지 않게, 그렇다고 너무 상처가 되지 않게 잘 설명하는 것이 좋다.


선물도 마찬가지다. 손편지부터 직접 만든 음식, 현금, 도서, 심지어는 자신의 속옷까지 내 손에 꼭 쥐여준 적이 있다. 선물을 직접 보면 거절하기 어렵지만, 다른 환자가 '나도 줘야 하나?'라고 생각할 수 있기에 애초에 받지 않는 것이 좋다는 설명을 들었다. 그래서 "저 선물 받으면 잘려요~", "마음만 감사히 받겠습니다."라며 거절하는 방법을 썼다. 환자분들과의 관계를 적절하게 유지하려면 잘 거절할 줄도 알아야 한다.



상황 5.


 저 오늘 9시에 자살할 거예요.
사실 혼자 있을 때 자해했어요.


Photo by Gadiel Lazcano on Unsplash


어떤 상황이든 자해 또는 타해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는 비밀을 보장할 수 없다. 환자의 치료진(사회복지사, 전문의, 간호사 등), 보호자에게 알리는 것이 원칙이다. 환자는 당연히 알려지는 것이 싫을 것이지만, 환자의 안전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사회복지사는 생명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고 설명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알릴 것이라고 미리 이야기한다. 환자에게는 비밀로 하고 몰래 보호자나 경찰, 치료진에게 이야기하면 환자와 나의 라포가 깨질 수 있다. 따라서, '당신의 생명이 위험할 때는 비밀을 지킬 수 없습니다.'라는 메시지를 반드시 전달한 후,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적절하다.


그러고 난 후 어떤 이유로 자해나 자살 생각을 했는지, 죽지 않고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은 무엇인지 등 다양한 질문을 함으로써 내면의 힘을 키울 수 있도록 유도한다. 비밀 보장 예외의 법칙을 잊지 않으면서 인간 대 인간으로 교감하는 것이 적절한 대처법이라 생각한다.




여기까지가 내가 겪은 5가지의 돌발 상황이다. 이 외에도 프로그램 시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시고, 내가 하는 말마다 지적하고, 프로그램실에 들어왔다 나갔다를 반복하고, 물건을 집어던지며 욕하고, 다른 환자에게 몰래 쪽지를 전해달라고 하는 등 다양한 상황이 발생했다. 사람마다, 또 상황마다 정해진 대처법은 없지만 스스로 짚어보면 좋은 '내면의 질문'은 있다. 


<대처 시 체크리스트>

ㅁ 내가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인가? 없다면 도와줄 누군가가 있는가?

ㅁ 내가 하고 있는 것이 '통제'인가, '대화'인가?

ㅁ 내가 한 약속을 지킬 수 있는가? 

ㅁ 상대가 하는 이야기가 프로그램 또는 면담의 주제(흐름)와 관련 있는가?

ㅁ 상대가 공격적으로 하는 말과 행동에 감정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는가?

ㅁ 상대의 말이 길어져도 끝까지 듣는 것이 치료에 도움이 되는가? 오히려 방해하는가?


사실 정신과 폐쇄병동이 처음이었던 과거의 나에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으로 정리한 대처법이다. 하지만 반드시 병동에서만 겪을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손님으로, 친구로, 가족으로, 연인으로, 제자로, 행인으로, 옆 차선 운전자로 만났을 때의 해프닝이 될 수도 있다. 상대가 감정적일 때 같이 격해지기 보다는 이 '내면의 질문'을 적용하면 감정 소모를 줄이면서 상황을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앞으로 마주할 각종 돌발 상황과 분쟁이 두렵지 않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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