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 주최 <나로부터 시작되는 생명지킴이>
- 주제: 생명지킴이 교육 수료 전·후 변화된 점
그에게는 원대한 꿈이 있었다. 바로 생일에 자살하는 것이다. 어차피 타의로 시작한 인생, 죽음만큼은 자의이기를 바랐다. 누군가 자살했다는 뉴스를 보면, 스스로 몸을 해치는 게 뭐가 문제냐며 구시렁거렸다. 그리고는 자기도 저 양반처럼 죽음을 선택하는 게 꿈이라고 했다. 꿈을 말하는 사람의 눈빛은 살아 있기 마련이지 않은가. 그의 동공은 생명을 잃은 지 오래였다.
그는 해가 뜨기 전에 집에서 나가 달이 뜨면 퇴근하는 사람이다. 어둑한 길이 꼭 자기의 인생 같다고 생각하면서 샤워는 내일로 미루고 냉장고에서 소주 한 병을 꺼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술을 마시지만, 항우울제도 매일 챙기는 성실하고 모순적인 사람이다. 그는 소주 한 모금을 삼키고 주식 차트 새로고침을 반복하다 잘 준비를 했다. 집안의 공기는 한숨과 욕이 섞인 잠꼬대로 가득 차 보일러를 세게 틀어도 왠지 추운 기운이 돌았다.
나는 거울을 봤다. 한 번도 따뜻하게 데워진 적 없는 집에서 자란 눈빛이 그를 닮아 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무표정한 얼굴과 호기심 한 점 없는 나의 눈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죽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아빠가 진짜로 죽어버리는 상상을 했다. 아빠는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생일에 술을 다섯 병 넘게 진탕 마시고 모아둔 약을 같이 삼켜 죽으려고 했다. 그래서 아빠의 생일이 가까워질 때마다 심장이 팔딱거린다.
나는 발뒤꿈치를 들고 조용히 안방에 다가가 심호흡을 열댓 번 했다. 오늘은 죽지 않기를 바라며 천천히 문을 열고 그가 잘 자고 있는지 확인했다. 이 짓은 정말이지 매일 해도 적응이 안 된다. 나는 아빠가 왜 죽고 싶은지 궁금했지만 한 번도 물어본 적이 없다. 괜히 말을 꺼냈다가 죽고 싶다는 생각이 더 커질 수도 있지 않은가.
방으로 돌아와 아빠가 한 말들을 곱씹어 보았다. 자기 몸을 해치는 건 자유라는 말, 죽고 싶다는 말, 인생은 어둡다는 말. 나는 아빠가 이번 생일에는 응급실에 실려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가득 안고 인터넷에 고민을 올렸다.
“왜 자살하면 안 돼요?”
자살을 검색하는 사람이 많은지 답변은 빨리 달렸다. 자살의 반대말이 ‘살자’라서, 생명은 소중하니까, 주변 사람들이 힘들어하기 때문에 등 알쏭달쏭한 말을 뒤로 하고 장문의 글이 눈에 띄었다. 그 사람은 죽고 싶다는 말은 살고 싶다는 뜻과도 같다며 말문을 열었다. 이해가 잘되지 않는다. 그는 사람이 우울해지면 터널을 걷는 것처럼 빛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자살이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믿는다고 덧붙였다. 우울과 불안을 낮추는 방법은 무수하지만, 그중에서 자기 몸을 해치는 선택지만 있다면 그건 진정한 선택이 아니라고 말이다. 말미에는 도움을 구할 수 있는 기관의 리스트와 전화번호가 펼쳐졌다. 본인을 생명지킴이라고 소개하는 말과 함께 답변은 끝이 났다.
‘죽겠다는 사람의 생명을 지킬 수가 있나?’ 의문이 들기는 했지만 나도 뭔가 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에 생명지킴이 교육 링크를 클릭했다. 강의는 생각보다 쉬웠다. 유튜브 보듯 누구나 집에서 볼 수 있는 영상이었다. 강사는 이렇게 말했다.“‘보·듣·말’만 외우면 어떤 상황에서도 생명을 지킬 수 있습니다.” 나는 강사의 말을 모두 받아 적었다.
첫 번째, ‘보기’
자살시도자는 SOS 신호를 보낸다. 그것을 알아채는 것에서 예방은 시작된다. 갑자기 중요한 물건이나 반려동물을 부탁하는 것, 장난스럽게 죽고 싶다고 말하는 것, 자살로 사망한 연예인을 동경하는 것, 말수가 줄어드는 것, 어떤 일에 집중하지 못하는 것 등 일상적으로 넘길 수 있는 말과 행동이 자살 암시가 될 수 있다. 그 신호를 봤다면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단계로 넘어간다.
두 번째, ‘듣기’
우선 자살에 대해 빙빙 돌려 말하지 않는다. 혹시 자살 생각을 하고 있는지, 무엇이 당신을 죽고 싶게 만드는지, 어떤 계획을 하고 있는지, 그럼에도 살게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물어본다. 우회해서 물어볼 때보다 직접적으로 질문했을 때 당사자가 솔직하게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다. 그것을 그저 묵묵하게 듣고 고개 끄덕이는 것만으로 큰 힘이 된다.
세 번째, ‘말하기’
이것은 조언을 뜻하지 않는다. 생명이 얼마나 위험한지 확인하기 위한 말하기이다. 자살을 예방하기 위해 전문기관을 연결하는 단계로 한국생명의전화, 정신건강복지센터, 자살예방센터 등의 상담 기관을 알려주거나 동행한다면 자살시도자가 ‘나는 혼자가 아니다.’라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우리는 연결되어 있다는 메시지를 온몸으로 보내는 단계이다.
나는 밤샘 벼락치기를 하듯 받아 적고, 말하기를 연습했다. 아빠가 자살을 시도한 날들을 떠올리며 이미지 트레이닝을 했다. 아빠가 뭐라고 말할지 예상이 갔다. 하지만 더는 말문이 막히지 않을 거란 확신이 있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보듣말, 보듣말, 보듣말 …’을 되뇌며 안방으로 다가갔다. 심호흡을 열댓 번 하고 문을 천천히 열었다. 어두운 터널 속 휴대전화의 불빛이 보였다. 아빠는 새벽 네 시가 되도록 잠자리에 들지 못하고 주식 차트와 통장 잔액을 번갈아 보고 있었다.
나는 강의에서 받아 적은 질문을 그대로 말했다. 혹시 이렇게 살 바에 죽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지 묻는 것으로 시작했다. 그리고 작년과 재작년에 어떤 마음으로 자살을 시도한 것인지, 지금도 자살할 계획이 있는지 물었다. 무엇보다 어떤 내용이든 판단하지 않고 그저 듣기만 하겠다고 약속했다.
아빠는 긴말 않고 휴대폰 화면을 보여줬다. 파산신청 사이트가 보였다. 재작년부터 사업 매출이 부진해 보이자 비트코인과 주식을 샀고 수익이 조금씩 생긴 것이다. 정점을 찍었을 때는 로또를 맞은 것처럼 인생의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 같았다고 했다. 그렇게 도박에 중독된 것과 같은 심리로 조금만 더 투자하자고 마음을 먹었다며 하소연했다. 아빠는 우리 집보다 비싸게 대출을 받아 코인과 주식에 모두 넣었고 결과는 뻔했다. 모조리 날려 버린 거다. 처음에는 혼자 힘으로 해결하려 했지만, 도무지 답이 보이지 않아 늘 자살을 계획했다. 투자 정보를 공유하는 단체 카톡방에서만 한 달에 열 명 넘게 자살을 시도해 이제는 무뎌졌다고 한다.
솔직히 말하면 아빠를 탓하는 말이 목 끝까지 차올랐다. 하지만 그럴 때일수록 ‘보·듣·말’을 더 빨리 되뇌어 아빠에게 위험한 말을 차단했다. 그리고 외운 내용을 그대로 말했다. 선택지는 여러 개일 때만 진정한 선택이라고, 죽음으로 해결할 수 있는 건 없다며 아빠의 손을 잡았다. 나는 아빠가 너무 오래 좌절하지 않게 어디든 동행할 것을, 아빠는 하루만 더 살아볼 것을 약속했다. 그리고 칼, 긴 끈, 모아둔 약과 같은 위험한 물건을 함께 쓰레기통에 버렸다.
생명지킴이 교육을 듣기 전이었다면 아빠에게 한심하다고 말했을 것이다. 그 전에, 비트코인과 주식에 투자했다는 사실 자체를 모른 채로 살았을 것 같다. 또, 자살은 개인의 선택이라는 사람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을 거다. 우울함이 생각을 왜곡한다는 걸 모르니 말이다. 최악의 시나리오라면 그렇게 아빠가 사망해버릴 수도 있는 일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누군가 농담으로라도 죽고 싶다고 하면 어떤 의미로 그 말을 한 것인지 물어본다. 자해를 한 상흔이 보이면, 평소보다 무기력해 보이면, 사는 게 재미없다고 하면, SNS에 힘들다는 글이 올라오면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아빠의 마음은 주기적으로 물어보고 자살 사고가 강할 때 누구에게 연락할지, 무슨 생각을 할지 등 나름의 매뉴얼을 만들도록 유도한다. 무엇보다 “왜 자살하면 안 돼요?” 같은 글을 찾아 생명지킴이라는 소개와 함께 답변을 남기는 삶을 살고 있다. 긴 터널을 걷고 있는 자살시도자를 보면 잠깐 앉아 그의 이야기를 듣고, 곧 빛이 나올 거라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