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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wi Sep 07. 2022

글쓰기를 가장 저렴하고 쉽게 시작하는 방법

20분의 원칙

대학교 교양으로 글쓰기 강의를 들은 적이 있다. 그 수업에서는 화려한 표현 보다는 글쓰기를 쉽게 시작할 수 있는 마인드를 더 많이 가르쳤다. 일례로 교수님이 첫 문장을 제시하면, 그 뒤에 자기 생각을 쉬지 않고 쓰는 것이다. ‘가을이 되었다.’ ‘나는 용서한다.’ ‘이상한 꿈을 꿨다.’ 처럼 나를 드러낼 수밖에 없는 글감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글쓰기를 어떻게 시작하면 되는지 몰라 막막해 하는 학생들에게 이 시간은 최적의 워밍업일 수밖에 없었다. 엉터리로 써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규칙은 총 3가지였다.




1. 20분 동안 멈추지 말고 써라.

2. 절대 남에게 보여주지 마라.

3. 문법과 맞춤법이 틀려도 지우지 마라.




떠오르는 그대로를 멈추지 말고 쓰라고는 했지만, 아무리 쥐어짜도 할 말이 생각나지 않은 적도 있었다. 그럴 때는 애국가 가사라도 쓰면 그만이다. 내 뇌에서 일어나는 거의 모든 무의식을 종이에 배출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걸 교수님은 강조했다.


대학생 때 그저 꿀같은 시간이라고만 생각했던 이 행위가 ‘치료적 글쓰기’에서도 쓰인다는 걸 나는 이제야 알았다. 글쓰기 치료사 제임스 W. 페니베이커와 존 F. 에반스는 책 <표현적 글쓰기>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심리적 외상을 경험했던 사람들 중에 그것을 비밀로 간직했던 사람들은 그 경험에 대해 누군가와 터놓고 의논했던 사람들보다 거의 40% 이상 더 많은 수가 의사를 찾았다.

(중략)

자살 혹은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배우자가 죽은 경우 배우자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했던 사람들은 이야기하지 않았던 사람들보다 배우자가 죽은 그 다음해에 조금 더 건강해졌다. 게이와 레즈비언들의 경우, 그들의 성적 취향을 드러내는 소위 “벽장 속에서 밖으로 나오는” 커밍아웃을 한 경우가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두드러진 건강상의 문제가 더 적다는 것을 발견했다. 인생을 살면서 경험하는 중요한 문제들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은 건강을 위협하는 주요 원인이 된다. (p.19)


이렇듯 자기만의 비밀을 드러내는 것은 신체적•정신적 질환을 예방하는 것과도 일맥상통한다. ‘절대 말할 수 없다.’라는 생각에서 오는 괴로움이 구토나 설사, 가려움, 피로감과 무기력감, 불규칙한 월경, 기억력 후퇴와 같은 신체적 증상으로 표현되기 때문이다.


말하고 싶은 게 있어도 들어줄 사람이 없거나, 말했을 때의 파장이 두려워 아무 일도 없는 척 행동한 적이 누구나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만약 당신도 그렇다면 귀가 없는 종이에게 쏟아내 보기를 권한다. 사람에게 한다면 상처가 될 수도 있는 말, 터무니 없는 상상, 누군가 죽이고 싶다는 분노, 나를 힘들게 한 사건 등을 감정의 쓰레기통에 던져 버리는 거다. 특별한 이슈가 없어도 괜찮다. 무의식을 멈추지 않고 쓰는 것만으로 명상을 하는 셈이다.


나는 평소에 ‘나쁜 생각’이라고 스스로 억눌렀던 걸 자유롭게 풀어 놔서 그런지 해방감이 유독 크게 느껴졌다. ‘이런 생각 하면 안 되는데’ ‘남들이 알면 얼마나 이상하게 볼까.’ ‘이런 상상을 하다니, 내 인성 무엇?’이라고 여겼던 걸 종이에 막무가내로 썼다. 그리고 내 예상과는 다르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내가 쓴 글을 누가 볼까 두려우면 종이에 쓰고 찢어 버리거나, 애초에 노트북에다 쓰면 그만이었다. 글을 쓰다가 감정이 북받치면 울었고, 너무 힘들면 쓰기를 멈췄다. 무엇보다 나의 걱정이나 공상이 뇌에 고여 있었을 때는 '부정적인 생각'처럼 느껴졌지만, 종이에 꺼내 놓고 보니 그 고민이 꽤 귀여워 보이기도 했다. 감정은 배출할 때마다 옅어졌다.



대학교 수업에서 왜 굳이 20분 글쓰기를 했는지 이제 이해가 된다. 교수님은 스스로에게 솔직한 사람만이 글을 쓸 수 있다는 걸 알려 주고 싶었던 것 같다. 글이 엉터리여도 괜찮다는 것, 막상 써보면 별 거 없다는 감각, 내 안에서 소용돌이 치는 감정을 글자로 마주했을 때 생기는 차분함, 아무도 나를 평가하지 않는다는 자유로움, 나 자신과의 은밀한 대화. 이 다섯 가지 감각이 글쓰기를 향한 실체 없는 두려움을 낮추고, 비로소 쉽게 시작할 수 있다는 걸 말이다.


만약 당신도 글쓰기를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막막하다면, 그리고 남들에게는 말할 수 없는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다면 20분 동안 쉬지 않고 써 보기를 권한다. 속내를 털어놓는 가장 저렴하고 쉬운 방법일 것이다. 자세한 규칙은 책 <표현적 글쓰기>에서 발췌했다.





1. 4일 동안 매일 20분씩 글을 써라.

2. 글쓰기 주제는 당신에게 개인적이며 중요한 것이어야 한다.

3. 맞춤법, 문법, 구두점에 신경 쓰지 말고 계속 써라. 할 말이 더 이상 없을 때는 선을 긋고 앞에 쓴 것을 다시 반복해서 써라. 종이에서 펜을 떼지 말라.

4. 당신만을 위해서 써라. 쓴 것을 없애거나 비밀로 해라. 절대로 편지로 보내선 안 된다.

5. 글을 쓰다가 어떤 특정 사건에 감당할 수 없는 위기감을 느낀다면 그 자리에서 멈춰라.

6. 글쓰기 후에는 당신만의 조용한 시간을 가지며 성찰하라. 인내심을 가지고 당신에게 다정하게 공감해 주자.

7. 첫째 날과 둘째 날에는 같은 주제로 적어도 20분간 써야 한다. 셋째 날에는 같은 주제를 다른 관점으로 볼 수 있도록 글쓰기 방식을 바꿔 보자. (p.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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