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페트병은 사지 않아도 돼, 브리타
나는 물을 잘 마시지 않는 편이다. 하루에 억지로 물 1리터 마시기를 해본 적도 있다. 그래서 자연스레 페트병에 든 생수를 사 마시게 됐다. 한 번 뜯으면 최대한 빨리 비우는 게 좋다는데, 물을 잘 안 마시다보니 500ml짜리를 사면 거의 절반 이상을 버리게 됐다.
하루 1잔 이상은 마시게 되는 커피 탓에 생수를 500ml 마시기는 쉽지 않았다. 그래서 300ml짜리 생수 20개를 사서 집안에 쟁여놓곤 했다. 한 번 열어서 300ml 정도는 마실 수 있었고 버리는 물도 없으며 가격도 저렴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음 한켠 페트병에 대한 죄책감을 떨칠 수 없었다. 병으로 된 물도 마셔봤으나 병 무게가 짓눌렀다. 택배를 시키기엔 죄스러웠고 내가 들고 오기엔 삭신이 쑤셨다.
한 번에 많은 양의 물을 통에 받아서 하루 정도 가라앉힌 후 마셔도 되지 않냐고? 기다리기엔 꽤 긴 시간이고, 윗물만 걸러내는 것도 엄두가 안났고, 하룻동안 먼지 등이 내려앉는 것도 감당이 안됐다.
보리나 결명자를 넣어 차를 끓여두면 되지 않냐고? 한 번에 꽤 많은 양이 나오는데 상하지 않고 다 마실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구입한 게 '브리타 정수기'다. 보자마자 아는 사람이라면 보통 "어, 나 유럽에서 봤어"라는 말을 하는 경우가 많다. 1970년 독일에서 처음 만들어진 제품으로 수십년전부터 유럽 가정에서는 흔히 사용하는 정수기다. 유럽 수돗물에 많이 함유된 석회질을 거르는데 탁월하고, 한국에서 출시한 제품은 염소 제거 등 한국 수돗물에 최적화했다고 한다.
전기를 연결하거나 건전지를 쓰지 않는 필터 교체형이다. 생김새는 아주 간단하다. 구성은 큰 주전자, 필터를 꽂는 깔때기, 필터, 뚜껑 정도다. 용량에 따라 다르지만 가격도 십만원을 넘지 않는다. 내가 구입한 3.5리터는 한국 쇼핑몰에서 3만원대에 구입했다.
사용법도 아주 간단하다. 큰 주전자에 깔때기와 필터를 꽂고 물을 받아 기다리면 된다. 용량이 모두 정수되는데 5~10분 정도 밖에 걸리지 않는다. '졸졸졸' 물 내려가는 소리가 ASMR로 들린다면 너무 과장일까.
나는 브리타 덕분에 물 마시는 습관이 많이 달라졌다.
1. 더 이상 300ml, 500ml 등 시중에 나와있는 제품 규격에 구애받지 않는다. 마시고 싶을 때 필요한 양만큼만 정수한다. 그래서 물을 더 자유롭게, 많이 마시게 됐다.
2. 요리에 정수된 물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원래 라면이나 국 등 음식을 할 때는 수돗물을 그대로 썼다. 어차피 끓이면 상관없다고 생각했지만 손님이 오셨을 때 수돗물로 조리를 하면 왠지 눈치가 보이곤 했다. 상대방은 싫어할 수도 있으니까. 이제는 손님에게 브리타를 설명하고, 나 혼자를 위한 음식을 할 때도 항상 정수된 물을 쓴다.
3. 페트병으로 인한 죄책감에서 해방됐다. 브리타를 사용하고서부터 페트병에 든 물을 거의 사지 않았다. 아침 출근길에 생수를 사서 한두 모금 마시고 방치하기 일쑤였는데, 이제 집에 있는 유리병에 물을 담아서 나간다.
궁금해서 찾아보니 브리타라는 기업 스토리도 재밌다. 1966년 1인 기업으로 창업해 온 가족이 제품 개발에 헌신했다고 한다. 1970년 첫번째 특허를 받았고, 브리타는 딸 이름을 따서 지은 것이라고 한다. 놀랍게도 이 회사의 비전은 '사람들이 물을 마시는 방법의 지속적인 변화'라고 한다.
나는 어느새 브리타 팬이 됐다. 회사 근처 쉐어하우스에 들어오면서 가장 먼저 구입한 물건이 브리타였다. 냄비도, 라면도 아닌 브리타라니. 우리집에 놀러왔던 '물 먹는 하마' 지인도 독립 기념으로 브리타를 구입했다. 독립 후 산 물건 중 가장 잘 산 것이라고 한다.
내 건강에 도움이 되면서, 환경 문제에 대한 고민을 조금 덜고, 제로웨이스트 라이프를 조금 실현할 수 있게 해준, 내 인생을 바꾼 물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