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독에서 벗어나려면 조력자가 필요하다
물을 많이 마셔야 건강하다. 많이 들어본 말이다. 반면에 물을 억지로 많이 마실 필요 없다는 연구도 있다. 대체 어떤 말을 따라야 할까?
물 많이 마셔야 하는 사람 VS 적게 마셔야 하는 사람
http://health.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7/13/2017071301353.html
'하루 물 8잔 마시면 건강해진다'는 건 7대 의학 미신
http://news.joins.com/article/22516147
두 기사를 종합해 보면 '물이 질병을 막아주진 않는다. 꼭 마셔야 한다고 정해진 양도 없다. 기후, 운동, 신체조건, 먹은 음식의 양과 종류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다.
다만 물은 온몸을 돌며 신진대사를 돕는다. 입→목→식도→위→소장→대장을 거쳐 몸에 흡수되는 과정에서 각 장기의 기능을 원활하게 한다. 이는 기초대사량을 높이는 원동력이 된다. 대신 육각수, 이온수, 해양수 등 각종 기능성 물은 효과가 검증되지 않았다고 한다.
나는 지금까지 물을 거의 마시지 않았다. 어쩌다 생수 한 병을 사도 한 모금만 마시고 내팽개쳐두곤 했다. 음식물을 먹거나 커피, 술 등을 마시긴 했지만 순수한 물은 하루에 300ml도 마시지 않았다. 맹물에서 느껴지는 묘한 맛이 싫었다. 별로 목 마르다는 느낌이 없었다. 목이 말라도 어지간하면 참고 넘어갔다.
음식을 조절하기로 하면서 물을 많이 마시기로 했다. 심각한 탈수증세는 아니었지만 어느 땐가부터 목이 자주 말랐다. 배가 고플 때 물을 마셔보면 '가짜 허기'인지 구분할 수 있다고 한다. 물을 마시고 시간이 지나도 배가 고프면 진짜 허기인 셈이다.
목표는 정하지 않고 물 마시는 양을 기록해보기로 했다. 역시 구글 keep앱에 적었다. 일단 물을 마시려면 물맛을 극복해야 했다. 레몬 한 봉지를 샀다. 12개짜리였다. 베이킹소다에 굴리고, 소금으로 박박 문지르고, 식촛물에 담가 세척했다. 매일 아침 반을 잘라 슬라이스해 출근했다.
물양을 쉽게 알 수 있게 330ml 혹은 300ml짜리 생수 세트를 구입했다. 아침에 무조건 한 병 들이켰다. 플라스틱을 쓰지 않으려 했지만 일단 양보하기로 했다. 대신 회사에서는 정수기를 썼다. 레몬을 넣으니 한결 마시기 편했다.
물 마시는 습관을 들이기 위해 330ml짜리 뚜껑 있는 유리병을 들고 다녔다. 하루에 3~4컵 정도를 마셨다. 순수한 물로만 1리터를 마시는 실험을 24일간 했다. 레몬 반쪽씩 12개를 다 먹고 나니 변화가 생겼다. 드라마틱하게 건강해지거나 피부가 좋아진 건 아니다.
24일이 지나자 레몬 없이도 물을 마실 수 있게 됐다. 처음엔 레몬 없는 물은 상상할 수 없었다. 하지만 레몬 씻기의 압박에 말린 과일로 차를 우렸다. 그러다 곧 맹물을 마시게 됐다. 지금은 그냥 물을 하루 1리터씩 마신다.
물이 모든 사람에게 좋은 것은 아니다. 간경화나 신부전증 환자는 물을 많이 마시면 위험하다. 보통 사람도 식전, 식후 30분~1시간 동안은 마시지 않는 게 좋다고 한다. 소화액의 활동을 막기 때문이다.
하지만 질병이 없는 사람이라면, 또 나처럼 물을 거의 마시지 않는 사람은 의식적으로라도 마실 필요가 있다. 물을 자꾸 안 마시다보면 목 마르다는 몸의 신호를 무시하는 게 습관이 되기 때문이다.
물을 많이 마시면서 달라진 점이 있다.
1. 간식을 덜 먹게 된다. 전에는 갈증이 나니 밥을 먹고 난 후에도 과일을 지나치게 많이 먹었다. 과일은 먹는 게 좋다고는 하지만 양은 조절해야 한다. 보통 한 종류로 주먹 반 정도 양을 먹는게 좋다고 한다. 나는 물을 안 마셔서인지 사과 1개, 참외 1개, 체리 10개, 방울토마토 20개 등 양을 지나치게 먹어왔다. 물을 마시면서 과일 양을 권장량 수준으로 낮출 수 있게 됐다.
2. 입안이 메마르는 현상이 줄어 피곤함을 덜 느낀다. 물을 마시지 않을 때는 입이 텁텁해 왠지 모르게 짜증나고 피곤했다. 왠지 모르게 기운이 빠져서 오후가 되면 대화할 때 "목소리에 힘이 없냐"라는 이야기도 종종 들었는데 물을 마시면서 그런 일이 줄었다.
3. 커피를 끊게 됐다. 이전에는 습관처럼 커피를 마셨다. 물을 못 마시니 고소한 커피가 마시기 편했기 때문이다. 하루 3잔씩 마시던 커피를 안 마시니 잠도 잘 온다. 이렇게 아끼는 돈이 의외로 크다. 물 300ml 한 통에 280원, 레몬 1개 1000원 (하루치 1/2이므로 500원). 물 마시는데 하루 1000원(물 2통, 레몬 반개) 정도만 쓴다. 아무리 회사에서 커피를 마신다고 해도 점심 먹고 습관처럼 커피를 사마셨는데 이 돈이 아끼게 됐다.
물마시기 뿐 아니라 음식중독을 벗어나려면 조력자가 필요하다. 사실 어떤 일이든 뭔가를 변화시키려면 조력자가 필요하다. 레몬, 물병, 메모앱이 내게는 조력자 역할을 했다. 조력자가 꼭 사람일 필요는 없다. 변화시키고 싶다면 상황(물 마시기)을 면밀하게 파악해서 원인을 찾아(물맛이 싫었어) 해결책(레몬을 넣자)을 만들어가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