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사한시 스터디
올해 스터디가 저번 주부터 시작되어 첫 스타트를 끊었다. 올해는 서정적인 필치로 쓰여진 일반적인 한시를 벗어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서서한시를 공부하기로 결정했다. 이번에 공부하게 된 내용은 공교롭게도(아니 매우 치밀한 계획대로?) 두 편 모두 농부의 열심히 살아도 살 수 없는 현실을 담아내고 있다.
처음으로 본 한시는 서거정의 「토산촌사록전부어兎山村舍錄田父語」라는 시다. 이 시는 서거정이 불암산 아래에 살고 있는 농부의 말을 듣고 그대로 기록한 시다. 과연 어떤 사연을 담고 있는지 들여다보도록 하자.
내용을 읽어보면 농부가 처한 현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위의 내용은 크게 네 가지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1~4행까지는 돌밭인 척박한 땅임에도 농사를 지으려 하니 관가에 몰수를 당했고 그런 관가는 자신들을 편들어주기보다 권세가들을 편들어줘 가난한 살림이 더욱 가난해졌다는 사실을 다뤘고
5~8행까지는 기울어가는 살림임에도 기운을 내 다시 밭을 일궈보지만 흉년이 찾아왔고 설상가상으로 세금 독촉으로 인해 굶주림에 시달려야 하는 현실을 이야기했으며
9~18행까지는 농사를 지을 수 없어 겨우 땔나무를 해서 팔러가더라도 농단하는 사람 때문에 땔나무 값은 후려쳐져 제대로 쌀조차 살 수 없다는 걸 이야기했고
19~23행까지는 권세가들이 왕토王土인 산을 개인의 공간으로 만들어 땔나무를 하러 들어오거나 소가 그곳을 들어오면 마구잡이로 때리고 소를 빼앗은 약탈의 광경을 이야기했다.
네 부분의 이야기를 통해 열심히 살려 하지만 살 수 없는 구조와 작은 이익마저도 독점하려는 권세가들의 끝없는 이기심을 다뤘다. 농부가 삶을 근근이 꾸려갈 수 있는 이유는 무언가? 그들이 게을러서인가? 절대로 아니다. 그들에게 아낌없이 뜯어가려는 공공기관, 그들이 눈물 나는 노동을 헐값에 취급하며 이득을 취하는 농단세력들, 산에 함정을 파놓고 백성이 걸려들길 바라는 권세가들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니 이 말을 듣던 서거정은 오열하며 목이 매었던 것이다.
두 번째로 봐야 할 시는 조선전기 이단아 김시습이 쓴 「기농부어記農夫語」다.
1~6행까지는 작년에 늦장마로 진흙이 채마밭을 덮어버려 먹을 것이 하나도 없게 되었다는 내용을 이야기했고
7~10행까지는 그런 상황이기에 개인적으로 빌린 돈과 관아의 세금까지 갚아야 하기에 정신이 없는데 군역까지 담당해야 했다는 꼬인 자신의 상황을 묘사했으며
11~20행까지는 이런 상황임에도 어떻게든 살아보려 토란과 보리를 수확하고 씀바귀를 캐느라 분주했으며 올해에도 열심히 농사를 지어보았지만 하늘이 도와주지 않아 농사를 망치게 된 이야기를 했고
21~28행까지는 자신이 과거엔 비옥한 땅도 있었고 품꾼까지 둘 정도로 넉넉한 살림이었지만 그마저도 권세가들에게 빼앗기고 품꾼도 보인保人되는 바람에 가세가 완전히 기울게 됐다고 이야기했다.
천재지변과 가혹한 세금 징수, 권세가들의 횡포까지 겹치며 기근에 시달리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누구에게 하소연해야 할까? 당연히 임금에게 상황을 사뢰 이 위기를 타개하고 일어설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구중궁궐 깊고도 깊어 일반 백성이 당도할 수 없을 뿐더러 실제로 우리 같이 하찮은 사람의 말을 들어줄 열린 귀를 지닌 임금조차 없는 게 현실이다.
이렇게 두 편의 서사시를 읽어본 소감이 어떤가? 분명히 다른 두 사람이 각각 만나본 농민의 이야기를 담아냈지만 막상 지은 사람을 떼어놓고 보면 누가 썼는지 모를 정도로 같은 내용이다. 어찌 보면 당연할 수밖에 없는 얘기다. 이건 어디까지나 상상 속에서 지은 이야기가 아니라 농부의 말을 듣고 쓴 내용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들의 생생한 이야기가 담겨 있어 마치 조선시대로 여행을 떠나 그들과 직접적인 대화를 듣는 듯한 착각마저 들 지경이다.
하지만 이 정도만으로 만족스러워 하며 작품에 대한 감상을 끝내선 안 된다. 두 시엔 작가가 다른 만큼 차이가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건 곧 ‘저자들이 이 작품을 왜 지었는가?’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서거정은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벼슬에 나가서도 조선의 지식인이면 여러 사화에 휩쓸려 한 번쯤은 가게 마련인 유배를 간 적도 없으며, 심지어 외직으로 밀려난 적도 없이 살았다. 그에 반해 김시습은 이미 5살 때에 시를 잘 지어 세종의 총애를 받기도 했지만 그 후 단종이 세조에 의해 축출 당한 것에 분개하며 야인의 생활을 자처하며 전국을 돌아다니다가 죽었다. 어찌 보면 두 사람은 180도 다른 삶을 산 것이다. 서거정은 성공한 사람의 전형으로 관리의 입장에 충실한 사람이었고 김시습은 반골기질로 여러 사상에 관심을 가지며 맘껏 삐딱선을 탔던 사람이었다. 이렇게 다른 두 사람이 쓴 시엔 당연히 그들의 다른 기질이 반영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서거정이 「토산촌사록전부어兎山村舍錄田父語」을 쓴 이유와 김시습이 쓴 「기농부어記農夫語」를 쓴 이유는 갈릴 수밖에 없다. 이런 차이를 보기 위해선 논평 부분을 읽어볼 필요가 있다. ‘국가는 귀하고 가까운 이 중하게 여겨 벼슬을 높여주고 봉록 후하게 주는데 어째서 작은 이익을 쫓아 불인함이 이런 지경에 이르렀는가? 귀하고 가까운 이가 만약 군자여서 절의를 숭상한다면 이를 보고서 본질을 말하리라(國家重貴近, 尊位厚其祿. 胡爲逐小利, 不仁至此極. 君子尙節義, 見此欲嘔殼).’라고 서거정은 말하고 있다. 즉, 이 말을 통해 서거정은 농부가 말하는 처참한 현실을 인용한 끝에 관리가 되어 나라를 다스리고 있는 동료들에게 충고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대들이 나라를 군자처럼 절의를 숭상하며 다스린다면 이런 처참한 상황은 펼쳐지지 않을 것이다’라고 밀하며 위정자들에게 말을 하고 싶어 이 시를 썼다는 걸 알 수 있다. 김시습이 쓴 시의 뒷 부분은 지금의 문집에선 누락되어 있다. 그래서 김시습의 논평을 볼 수는 없지만 누락되기 이전까지의 내용을 통해 서거정과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시를 쓰고 있다는 것은 충분히 알 수 있다. 농부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게 주목적일 뿐, 위정자에 대한 조언은 전혀 하지 않고 있다. 그는 농부의 이야기를 세상에 그대로 전달하고 싶어 이 시를 썼다는 걸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