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빵의 임용 Life
올해 집에서 한문공부를 하며 하나하나 정리되어 가는 기쁨을 만끽하며 하고 있다. 그래서 『비슷한 것은 가짜다』와 『연암을 읽는다』라는 책과 ‘수능한문 기출’을 마무리 짓게 된 게 가장 큰 수확이고 무엇과도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이었다. 그래서 그에 대한 기쁨을 두 편의 글로 남기기도 했던 것이다.
저번 주엔 어떻게든 『이조시대 서서사』 1권(1992년 초판)에 나오는 시들을 모두 끝내볼 생각이었지만 월요일에 한 번 도전해보고 그 양이 어마무시하다는 걸 알게 되면서 계획을 바꾸기로 했다. 지금의 공부 모토는 ‘천천히 한문공부의 즐거움을 맛보며 공부 성과를 누적해가자’라는 것이니, 마치 공기工期를 단축하여 원가를 절감하는 공사처럼 짧은 시간 안에 정해놓은 것을 마치는 것은 오히려 속성速成에 매몰된 나머지 한문공부를 질리게 만들 수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간을 한정 짓지 말고 하루에 서사한시 한 편, 『고문진보』에 나오는 글 한 편, 우리나라 산문 한 편을 임용시험 볼 때까지 보자’고 계획을 바꿨다.
2009년에 ‘호모쿵푸스2.0’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읽고 싶은 책은 서연書緣에 따라 온다’는 말을 했던 적이 있었다. 그저 읽고 싶다고 해서 읽게 되는 책도 읽는 반면에 아무 계획도 없었는데 어떤 끌림에 이끌려 읽게 되는 책도 있으며, 오히려 그런 책일수록 더 깊은 감동을 자아낸다. 이처럼 공부도 철저한 계획에 의해 하게 되는 것들이 있는 반면 어느 순간 무언가에 삘feel이 꽂혀 저절로 하게 되는 공부도 있는 것이다. 나는 바로 ‘서연’이란 단어에 빗대어 ‘공연工緣’이라 말한다.
그렇기에 이번에 찾아온 공연은 바로 바로 ‘한문단어장을 정리하고 싶다’는 거였다. 이미 작년 8월 17일에 여러 번 검색하며 참고하게 된 단어장을 직접 나만의 공부 소스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물론 그때는 전혀 몰랐다, 그 생각이 얼마나 어머어마한 것인지를. 하루 정도면 내용들을 다 한글로 가져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여 임고반에 올라가 열심히 작업을 했지만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거였다. 양이 엄청나게 많았기 때문에 하루가 문제가 아니라 꾸준히 시간이 날 때마다 생각이 날 때마다 해야 하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그런 작업이 9개월 만인 올해 5월 중순에야 끝이 났다. 모았으면 잘 정리하며 업로드하는 게 중요하다. 그래야 한문공부를 하며 단어를 찾을 때 활용할 수 있고 이 단어장에 없는 단어들은 새로 작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지금 하고 싶은 작업들이 여러 가지 있지만 이 단어장부터 빨리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 때문에 이번 주엔 다른 건 아예 하지 않고 단어장부터 편집하여 업로드하기로 맘 먹은 것이다. 그래서 그제부터 시작해선 쉴 틈도 없이 단어장 편집에 시간을 쓰고 있다. 이렇게 찾아온 단어장이란 공부의 인연이 나를 또 공부의 장으로 이끌고 있다.
이처럼 6월이 되었지만 나의 공부 방식은 5월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러니 집에서 공부를 한다고 느슨해지거나 하기 싫어지거나 하진 않았다. 더욱 한문 공부의 즐거움에 흠뻑 빠져 6월의 첫째 날이자, 한 주의 시작을 여는 오늘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스터디 반장이 스터디원에게 보낸 카톡이 왔다.
이 스터디에서 소명관(진리관 임고반) 합격하신 분들은 제 개인톡으로 알려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오리엔테이션이 스터디 당일 18:30에 있어서 시간에 차질이 생길 듯하여 미리 교수님께 말씀 드리려하니 톡 확인하신 즉시 알려주세요
이 카톡 내용을 보는 순간 ‘이게 도대체 무슨 내용이지?’라는 생각에 순간 어안이 벙벙해졌다. 나야 늘 임고반에 공부를 했기 때문에 올해도 당연히 들어가려 공고일시를 눈여겨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올핸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으로 인해 4~5차례 연기되다가 결국 모집 일정이 앞당겨지며 더 이상 변동이 없었기에 5월 13일에 접수를 하러 진리관 102호실에 들어갔었다. 그래서 당당히 원서를 제출했는데 그때 행정실에 있던 직원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올해 1학기 임고반 모집은 사실상 취소되었습니다. 그러니 원서 접수를 받지 않습니다.”라고 말을 했다. ‘이럴 거면 당연히 사범대 게시판에 공지를 미리 하지’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미 결정이 난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냥 내려와야만 했었다. 그렇게 임고반에 대한 생각을 정리했는데 방장이 보낸 카톡엔 ‘임고반 OT’ 운운하는 내용이 있었으니 어안이 벙벙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곧바로 사범대 게시판에 들어가 보니 저번 주 수요일까지 임고반 모집을 마친 상황이더라. 세상에나 이런 통수라니~
그래서 지원서를 부리나케 챙겨서 진리관에 올라갔고 보무당당하게 102호로 들어갔다. 낯선 사람의 등장과 함께 행정실 사람들은 “어서 오세요”라고 자동반사적으로 말하더라. 그래서 “임고반에 지원서 내러 왔습니다.”라고 말하니, 금방 전까지의 반기는 기색과는 달리 얼굴이 굳으며 마치 혼잣말인 듯 “지원은 저번 주에 끝났는데…”라고 말하더라. 당연히 여기까지도 예상 가능했던 반응이었기 때문에 왜 지금에서야 지원서를 낼 수밖에 없었는지를 설명했다. 그랬더니 “이미 각 과 조교들에겐 말을 했었는데”라고 난색을 표하면서도 “잘 상의해보겠다”고 마무리를 지어주더라. 그 결과 결국 이 날 저녁에 임고반 OT에 같이 참여해도 된다는 통보를 받게 되었다.
이로써 올해 임용공부의 2기가 시작되게 되었다. 상반기엔 집에서 공부하며 정리하고 싶던 것들을 하나하나 정리하며 공부의 기초를 닦을 수 있었고 하반기엔 임고반에서 공부를 하며 임용시험 위주로 내용을 다듬고 체계를 갖출 예정이다. 한문 공부 2기의 결과물을 맘껏 기대하시라.
그런데 지금은 이상하게도 ‘한문을 잘하고 싶다’는 생각에 불타오르고 있다. 한문을 맘껏 공부하고 싶고, 여러 가지들을 수용하고 이해하며 한 걸음씩 한문의 매력에 빠져들고 싶다. 한문을 새롭게 공부한지 겨우 2년 밖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한문 실력이 형편없는 건 너무도 당연하다. 아는 게 없기에, 실력이 형편없기에 그걸 인정하고 한 걸음씩 나가고 싶을 뿐이다. 한문이란 학문의 너른 대양을 맘껏 헤엄치며 지금처럼 하고 싶은 것, 만들고 싶은 것, 알고 싶은 것들을 공부해나갈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언젠가 한문을 잘하게 되는 날, 그게 아니더라도 한문이란 학문에 대해 한 마디 정도 할 수 있게 되는 날이 올까? 그런 설렘으로 오늘도 맘껏 한문과 좌충우돌해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