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도쿄 여행을 온 날 중 최고의 히트였다. 다이칸야마의 감동을 이길 만큼의 콘텐츠를 찾은 건 아니지만 무언가 매끄럽게 여행을 온 이유처럼 쉬는 마음이 충분히 들어 어제도 어제의 하루를 먼저 기록하고 싶었는데, 순서가 바뀌면 또 안 될 것 같다는 마음에 부랴부랴 적었다.
24MAR18 SAT : DAY4
충분히 자고 일어나니 개운한 컨디션이다. 다들 늦게까지 열심히 관광하고 오느라 아직까진 가장 먼저 들어오는 사람은 나인 듯하다. 어느덧 한 두 명씩 본인의 일과를 마치고 들어서면 또 분주해지기 때문에 일찍이 씻고 침대에 누워서 ( 자봤다 깬다 ) 일기도 적고 한국에서는 또 어떤 일들이 있나 검색도 해보고 막연하게라도 내일은 어떤 동네를 가볼까 생각도 한다.
어디서든 마켓을 가는 건 신나는 일이다. 주말에만 열리는 시간적 한정을 놓치면 안 되니까 검색을 했더니 에비스와 아오야마 이케부쿠로 등이 눈에 들어온다. 이놈의 도미니크 앙셀 베이커리 때문에 순전히 아오야마로 결정을 했다. 오늘은 근처 학교의 입학식이 있는 날이라 그런지 전통의상을 입거나 슈트로 멋을 낸 학생들이 눈에 많이 띈다. 그들에 휩쓸려 유엔대학 앞까지 잘 찾아왔다. 하얀 천막 아래로 유기농 마켓은 한참 손님들로 북적이기 시작했다. 쇼핑을 잘하는 사람들은 이 상점 저 상점 잘 비교하며 물건을 고르지만 난 거의 처음에 눈에 띄면 산다. 그만큼의 에너지가 조금은 아쉽다. 서울에서도 잘 먹지 않는 토마토는 왜 이렇게 나오면 확 들어오는지, 다양한 토마토를 한 컵에 담아놓은 세트 하나를 600엔에 구입했다. 구경하며 야금야금 집어 먹었는데 싱그러운 즙이 입안에서 터진다. 이 마켓에는 장사를 하는 외국인들이 많았다. 꿀 샘플 소스 샘플 각종 차 비슷킷 생강 와인까지 조금씩 먹었는데도 배가 차오른다. 너무 내 스타일인 빵을 모티브로 한 도장 스티커 파우치를 파는 곳에서 한참을 머무르다가 나는 이토야를 갈 거니까 아주 굳세게 참아냈다. 뒤켠에서는 푸드트럭들이 음식을 열심히 만들어내고 있었다. 편안하면서도 충만해지는 기분이 가득했다. 샘플이라도 먹은 거니 찾아놓은 커피를 마시며 소화시키기로 했다. 어디서 발견한 정보인지는 모르겠으나, 구글에는 평이 많지는 않지만 호평이 가득한 곳이었다. 골목 구석으로 깊숙이 들어와야 발견할 수 있는 곳인데, 위치 때문에 조금은 덜 알려졌지만 원하는 곳을 찾아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온통 주택가에 위치한 이층 건물의 커피집 CHOP COFFEE OMOTESANDO
하얀 계단을 밟고 올라 2층으로 가면 몇 명 밖에 자리에 앉을 수 없는 작은 공간이지만 요즘 서울에서도 익숙한 인테리어의 분위기다. 캐러멜 라테가 맛있다고 해서, 아이스로 한잔 주문해서 창가 자리로 앉아 맞은편 창밖의 풍경들 그래 봤자 문히 닫힌 집이었지만 느슨하게 시간을 보낸다. 김수영 작가의 '마음 스파'가 여행에 함께한 두 번째 책이다. 이전의 책들도 잘 읽었던 터라 고민 없이 여행에 동반했다. 아빠한테 자전거를 배우기 시작한 맞은편 집 옆집 꼬마가 최선을 다해 바퀴를 굴렸다가 돌아왔다가 하는 모습이 귀여워서 손을 흔들어 주었는데 알게 모람이라는 표정으로 나를 봤지만 여전히 귀여웠다. 무엇보다 이 커피숍이 좋은 이유는 음악이다. 흘러나오는 음악이 너무 좋아서 책에 집중하기도 풍경에 멈춰있을 때도 훌륭한 배경이 되어주었다. 직원들도 좋아서 떠나기 전 이 동네에 올 이유가 이 곳뿐이지만 다시 찾아와야겠다. 그리고 이 노므 도미니크 앙셀 베이커리. 뉴욕에서 3번을 실패했다. 분명 예상한 맛일 거라고 알면서도 못 먹은 게 못내 아쉬워서 도쿄에서라도 먹겠다고 저번에 한 번 지나쳤을 때 줄이 길어서 패스했고 오늘 다시 나섰다. 오늘은 매끄러운 하루라 줄도 짧았고 크로넛도 남아있었다. 벚꽃 한정판 크로넛인지 진분홍 크림이 올라가 있고 안에도 넘쳐나는 슈크림이 있었는데 예상 한 맛으로 맛있지만 너무도 달았고 먹은 걸로 만족하기로 했다. 도쿄만 있다는 스모어에 모두 열광 중이다. 여기저기 스모어 꼬치를 들고 인증하기 빠쁜데, 행복해하는 표정들이 디저트 샵의 가장 큰 기쁨이 아닐까 싶다.
하라주쿠로 다시 향한다. 구글맵을 보지 않더라도 토요일 어느 정도의 인파가 있을지는 예상을 했다. 브람스 골목이 궁금해서 찾아간 건데, 매끄러운 하루지만 다 만족할 수는 없는 법이다. 회오리 감자 전구 음료 파르페 아이스크림 등이 길거리 최고의 음식들로 보인다. 인파에 휩쓸려 다시 출구로 나왔다. 맛집을 찾진 않기로 했는데 요고로 는 우리가 모두 일본에서 기대하는 심야식당 분위기일 것 같아 꼭 가보기로 했다. 배는 안고픈데 또 걷다 보면 소화가 되겠지 싶어 한 번 왔다고 완전히 낯설지는 않은 거리들을 다시 지난다. 하라주쿠와 도로 하나 차이인데 그것도 작은 도로 이렇게 급격히 조용해지는 풍경이 조금은 어색하면서도 좋았다. 4시까지만 영업이라 걱정을 하면서 갔는데 다행히 내 앞에 1팀 웨이팅 중이고 혼자 다니면 이상하게 자리가 잘난다. 이상한 게 아닌가. 조금의 웨이팅 후에 자리가 마련돼 유명한 시금치 카레를 주문했다. 괜찮았다. 한번 더 먹고 싶은 맛이었고 배가 안고픈 상태라 남기고 온 게 조금 아쉬웠지만 또 갈 거니 모 상관없다.
츠타야 긴자점을 가기 위해 긴자행 지하철을 탔다. 긴자도 워낙 쇼핑거리라 깨끗하게 잘 정돈되어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또 당떨어진 시간이라 넘버 슈가 박스를 열어 2가지 맛을 선택해 살살 녹여먹고 6층 츠타야로 향했다. 워낙에 다이칸야마가 압도적이어서 그다음에 볼 츠타야들은 아쉬울 거라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의외로 긴자는 긴자만의 압도되는 분위기가 있다. 자리가 나지 않아 발을 동동 구르다 스타벅스 단체 좌석의 모서리 쪽에 짐 도 죄다 안고 앉아서 마음 스파를 읽기 시작했다. 이곳의 분위기도 좋지만 책에 어느 순간 몰입해서인지 자꾸 훌쩍거렸다. 왜 제목이 마음 스파인지, 땀으로 나면 안 들킬 텐데 눈물이 나니 안 닦을 수도 없고 옆의 일본인도 옆의 중국인도 힐끗 쳐다본다. 우는 한국사람 처음 보는 모양이다 싶지만 조금은 민망해서 숨고르기를 한 번 한다. 다행히 몇 챕터 뒤에는 웃음이 나는 글도 있어서 살짝 무마하는 기분도 들었지만 처음 오는 장소에서 좋은 책을 읽다 보니 모든 합이 좋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읽다간 콧물도 엄청 흘릴 것 같아 13층의 야경을 보러 나섰다. 건물구조가 정확히 어떻게 되어 있는지 모르겠지만 6층에서 바로 13층으로 점프업이 된다. 바람이 거세다. 더웠다가 울다가 이렇게 찬 바람을 세차게 맞으니 감기에 제대로 걸릴 것 같은 예감이 든다. 멀찍이 도쿄타워가 눈에 들어온다. 360 한 바퀴 돌면서 야경을 볼 수 있는 곳인데 낮에 와서 다시 봐도 괜찮을 것 같다. 오다이바의 무지개다리도 보인다. 숙소와 가까운 편이라 조만간 가볼 계획이지만 미리보기로 알려주니 오늘 하루종이 풍성하다고 여겨진다.
오늘은 다 좋았는데, 이 중에서도 최고는 이토야였다. 습관적으로 들어가는 애플도 건너뛰고 이토야 정문 앞에 빨간 클립 앞에 섰다. 2개의 건물로 구성되어 있는데 G부터 한 층 한층 보는데, 왠지 이 곳에서 먹는 것 이외에 지갑 안 열것 같았는데 눈이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 내가 그렇게 원하는 다이어리 스타일을 찾지 못해 제법 공을 들였는데도, 그 어려운 일이 여기 이렇게 쉽게 있었다. 억울하지 않게 3월부터 시작되는 다이어리였고 조만간 다시 와서 사야겠다. 층마다 츠타야처럼 주제가 있는데 이토야는 실로 엄청나다.
엔화가 다시 치솟고 있어 괴롭지만 이토야에서만큼은 허락하기로 했다. 왠지 이곳에서 사는 물건들은 나를 조금 더 계획적이고 분석적이며 하루를 허투루 쓰지 않게 만들어 줄 것 같은데 모든 받아들이기로 했다.
마감 시간만 아니었으면 꼼꼼하게 더 볼 수 있었는데 K 건물은 일층만 보고 아쉽게 나왔다. 아직 소화가 안되었지만 덮밥집이 눈에 들어와 또 혹시나 밤에 배고파서 잠을 못 잘까 무척이나 걱정돼서 미니 사이즈로 먹기로 했다. 신기한 건 이 공간 안에 다 외국인이다. 동양권, 재밌다.
: 오늘 여러모로 차고 넘쳐서 숙소 빨리 돌아가서 적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또 적다 보니 그사이 감정들이 빠르게 증발해버렸다. 마켓부터 시작해서 커피도 훌륭했고 그토록 벼르던 크로넛도 먹었고 기대한 분위기의 음식이었으며 긴자 츠타야가 만들어준 편안한 분위기에서 마음을 들여다볼 수 도 있었고 멀찍이나마 도쿄의 야경을 보고 이토야라는 츠타야만큼 흥분시키는 공간을 찾아내서 좋았다. 나는 도쿄 와서 살게 별로 없을 거라고 자신했는데 이토야가 있었구나. 모든 자신하지 말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