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혜나무 Feb 10. 2022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두 번의 설날이 있어서 다행이다. 새해에는 이전과는 다르게 무언가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다. 1월은 아이가 아파서 걱정으로 시작되어 그 무언가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렇게 어영부영 한 달을 보냈지만 상심하지는 않았다. 시간의 또 다른 겹이 있으니까. 태양을 중심으로 새겨지는 시간의 마디보다 조금 더디고 부족한 '달이 이끄는 시간들' 말이다. 음력은 서툴고 내숭스런 에게 아주 잘 맞는 우주이다. 설이 일주일밖에 지나지 않았다.(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실은 어제, 브런치로부터 잔소리를 들었다. '작가님의 시선이 담긴 이야기를 자주 들려주세요'라는. 작년에도 몇 번 듣기는 했지만 새해에 들으니 기분이 좀 그랬다. 어련히 알아서 할까. 그래도 애정으로 받아들이고 이렇게 짧게라도 쓰고 있다.


'기분이 좀 그럴 때' 가끔 만들어 먹는 간식이 있다. 오이 샌드위치와 홍차이다. 2년 전, 남편과 다툰 어느 날 아침에 처음 만들어 혼자 먹었다. 레시피는 아주 간단하다. 잘 구운 토스트 위에 크림치즈를 바르고 소금에 살짝 절인 오이를 얹은 후 후추를 드문드문 뿌리면 끝. 정말 색다른 담백한 맛이어서 기분 전환에 좋다. 오이를 싫어하는 딸은 질색을 하지만. 조*론에서 오이와 얼그레이 향을 배합한 새로운 향수의 냄새를 맡았었는데 '웩'이었다고 한다. 나는 꼭 찾아가 맡아볼 생각이다. 기분이 좀 그럴 때 도움이 될 수도 있으니까.



누군가를 위한 것이 아닌 '오직 나'만을 위해 작은 음식을 준비하고 먹는 시간도 행복합니다. 홍차는 1837 블랙티나 얼그레이를 마십니다.


마음이 복잡하거나 기분이 좀 그럴 때 자주 보는 책이 있다. <365일>이라는 '소박한 레시피와 일상'을 가볍게 실은 책이다. 2년 전 @하루 작가님을 통해 알게 되었다.  예쁜 소품들, 정갈한 음식을 담은 매일매일의 사진과 간단한 글은 마음을 가볍게 한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나 '카모메 식당'을 볼 때의 느낌과 비슷하다. 일본이 생떼를 쓰기 전에는 무*양품에 가는 걸 즐겼다. 간단하고 소박한 물건들을 보고 있으면 즐겁다. 들고 오는 것은 고작 행주 다발 같은 것들이었지만.




어쩌면 우리를 위로하는 것은 묵직한 말과 시선보다는 '별것 아닌', '소박한' 것들 인지도 모른다.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소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에서 우연한 사고로 아들을 잃은 부부가 증오하던 빵집 주인이 만들어준 롤빵을 먹으며 놀라운 위로를 받은 것처럼.

"아마 제대로 드신 것도 없겠죠." 빵집 주인이 말했다. "내가 만든 따뜻한 롤빵을 좀 드시지요. 뭘 좀 드시고 기운을 차리는 게 좋겠소. 이럴 때 뭘 좀 먹는 일은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될 거요."
(중략) 그들은 롤빵을 먹고 커피를 마셨다. 앤은 갑자기 허기를 느꼈는데, 그 롤빵은 따뜻하고 달콤했다.

-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에서



두 번째 설이 있어 다행이라고 했지만 마음이 슬슬 조급해지기 시작한다. 3월에 시작되는 새 학기 준비와 글쓰기의 작은 도약을 위해 뒤에서 나름의 속도로 뜀박질할 예정이다. 달의 이면처럼 보이지는 않겠지만.

언젠가는 낮달 같은 글을 쓰고 싶다. 수줍고 소박한. '어, 저기 있었네.' 하며 살며시 미소 지을 수 있게 하는.






당신을 위로하는 별것 아닌 것들이 궁금합니다. 


잔소리를 또 듣기 전에 만나 뵙도록 하겠습니다.

되도록 가볍게요.

늘 평안하시기를요.




작가의 이전글 글을 계속 쓰게 하는 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