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혜나무 Mar 17. 2022

백화점 지하주차장 입구에서

 네가 진짜 원하는 게 뭐야



나는 도시를 좋아한다. 어느 지방의 외진 곳으로 발령받아 근무하면서 알았다. 나는 도시를 선망하고 그리워한다는 걸. 주중에는 갈매기 끼룩끼룩 나는 바닷가 근처에서 일하다가 주말이면 고속버스를 타고 경기도 신도시에 있는 집으로 '주말 가족'을 근 3년 동안 했더랬다. 회사 근처에는 그야말로 밥집 외에는 아무것도 없어 문화생활을 하려면 차를 몰고 20여분은 달려야 그나마 도시의 공기를 흠향할 수 있었다. 그러나 운전은 싫어해 회사와 사택만을 다람쥐처럼 오갔다. 그러다 집에 오면 거의 매주 백화점을 갔다. 사치 문화의 총체인 그곳에서 도시 샤워를 했다. 그래야 살 것 같았다. 지방 외지에서 근무하는 초라함을 씻고 싶었다.


퇴사 후 도시에 다시 정박하니 샤워의 갈망은 사라졌다. 돈을 벌지 않게 되자 신기하게도 물욕도 없어졌다. 의식은 그렇게 합리화를 찾아가나 보다. 그러하기에 백화점은 그저 '관람'을 하러 간다. 무엇을 사기 위해 가는 것이 아니라 주로 눈요기만을 하기에 아이들은, 특히 아들은 백화점 관람을 꺼려한다. 사지도 않을 거면서 뭐하러 가냐고. 비유가 적절할지는 모르지만 꽃을 볼 때의 경이로움과 거의 같은 농도의 경이로움을 백화점에서 즐긴다. 물론 후자는 공허를 동반하기는 하지만.


어느 휴일 아침 그런 아들을 설득해 모처럼 H 백화점을 관람하기로 했다. 아니나 다를까 주차장으로 들어가려는 차들이 밀려있다. 시속 3, 4km로 10분 정도 간 후에야 지하주차장 입구를 볼 수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지루하게 줄을 서고 있는데 좌측의 입구로는 차들이 속도를 내며 들어가고 있었다. 남편에게 우리도 그곳으로 들어가자고 했다. 안 된단다. VIP 전용 주차장 입구란다. 그날따라 새삼스레 그 입구가 보였나 보다. 주로 이용하는 A 백화점은 차등 없이 입구가 하나인데 H 백화점은 입구부터 갈라놓았다. 와 너무한 거 아냐? 내가 씩씩거렸더니 아이들이 뭐가 너무하냐, 당연한 거란다. "당연하지. 수천 만원을 쓰는 고객을 특별 대우하는 건 당연한 거 아냐?"라며 남편도 거든다. 3:1로 나는 현실감각이 없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그렇지 당연하지. 장사를 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지극히 당연한 처사인 것을 불공평하다며 씩씩거리다니. 재력도 능력인 자본주의 사회에서 너무도 당연한 것을 새삼스럽게. 쇼핑이 아닌 관람이나 하는 주제에. 그렇게 쉽게 인정하면서도 배는 더부룩했다.


직장 다닐 때 이런 일이 있었다. 공기업인 그 회사의 직원은 상용원이라 불리는 무기계약직 직원(주로 고졸)과 정직원으로 분류되어 있었다. 어느 날 여직원 휴게실에서 한 상용원 직원이 투덜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어떻게 같은 일을 하는데 급여가 천지 차이이냐"라는. 사무직 신입직원과 자신의 일이 거의 같음을 알고 분노하는 소리였다. 나름의 공정성을 점잖게 말하고 다녔던 나는 그 자리에서는 침묵했다. 그러나 정직원들만 있는 자리에서 내 입은 본심을 봉하지 못했다. "우리는 공채 대졸 직원이고 자기들은 시험도 보지 않고 으로만 들어온 자들 아니냐. 우리가 이 회사에 들어오려고 대학과 취업 준비에 들인 시간과 돈과 열정이 얼마인데 그런 소리를 하냐"라고 내뱉었다.


그런데 우습게도 나는 2020년 '인천공항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논란을 다룬 어느 브런치 글에는 위에서 했던 말과는 상반되는, 계약직 직원들을 옹호하는 을 달았었다. 기회의 균등에 대해서, 공정에 대해서 출발선상이 다른 비정규직의 입장에 대해 썼던 것 같다. 퇴사 후에 갑자기 철이 든 것인지, 아니면 글을 쓰는 자로서의 자세 교정인지는 모르겠다. 무언가 약자의 편에 서야 된다는 사명감 내지 의무감 같은 것이 들어서버렸다.


공기업 입사를 희망하기도 하는 딸은 그들의 블라인드 채용에 불만이 많다. 잠을 줄어가며 공부해서 들어간 학교 간판도 스펙인데 왜 가리어져야 하냐고, 그것이 공평한 것이냐고. 딸 앞에서는 그렇네, 하고 맞장구치다가도 공부에 큰 욕심이 없는 아들을 보며 그나마 우리 사회도 학벌주의를 탈피하려고 노력하고 있구나 하며 안심을 하곤 한다. 그러면서 이러한 갈등에 관해 글을 쓰게 된다면 나는 점잖게 낮은 기침으로 큼큼거리며 아주 객관적인 '포즈'를 취할 것이다. 흔들리는 본심은 봉한 채.


나도 H 백화점에서 관람이 아닌 쇼핑을 하고 싶다. 그곳에서 매대에 널브러져 있는 SPA 브랜드가 아닌 마네킹이 우아하게 걸치고 있는 마담 부띠끄를 사고 싶다. 기다리지 않고 지하주차장 좌측의 입구로  달려가고 싶다. 아들이 좋은 간판을 걸었으면 좋겠고 우리 집 집값은 더 올랐으면 좋겠다. 

그러면서 서민들이 달랑 집  한 채 갖기 힘든 어이없는 이 나라 상황에 분노하는 것은 진심이다. 서구 나라들처럼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학벌이 낮아도 아이들이 먹고사는데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가시적으로 위화감을 조성하는 H 백화점은 각성하라. 실은 마담 부띠끄를 입고 나갈 데도 없다. 쇼핑은 인터넷이 진리다.


나는 도시를 좋아한다. 갈매기 끼룩끼룩 나는 그 바닷가는 다시 가고 싶지 않다. 그런데 몇 달 전 그 지방을 여행하면서 회사 근처를 배회하다 왔다. 여름만 되면 그 바닷가 비린내가 그리워지는 것은 또 뭔가. 도대체 어쩌자는 건가.




작가의 이전글 밥하기보다 쉬운 글쓰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