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틀 칠드런

재미는 없지만 할 얘기가 많은 영화

by 이게바라

케이트 윈슬렛이 나오고, 폴 뉴먼을 닮은 패트릭 윌슨이라는 왠지 낯이 익지만 어디서 봤는지 생각이 나지 않는 남자 배우가 나와 불륜을 저지른다는 내용이란다.

철 지난 영화이지만 함 보기로 한다.


보고 나니... 이 영화 참 흥미롭다.

그러고 보니 이 영화 제목이, '리틀 칠드런'

영화를 보고 나니 그 제목의 의미를 알겠다.

어른이 되지 못 한 어른들의 영화였다.


패트릭 윌슨을 중심으로 영화를 얘기해본다.

폴 뉴먼을 닮은 남자, 이 영화에서는 너무 잘 생겨서 이웃 아줌마들이 선망의 대상으로 쳐다보는.

하지만 어른이 되지 못 한 사내다.

이 남자를 설명하기에 영화의 은밀한 장면을 엿보기로 한다.

지금 이 상황을 리와인드 해보면,

남자 혼자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 잘 빠진 몸매와 도톰하게 살이 오른 엉덩이를 뽐내며.

곧 화면 아래에서 벌거벗은 케이트 윈슬렛이 올라온다.

이 장면을 보고 딱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바로,

'보디 히트'에 나온 이 장면이다.


이 장면을 '리틀 칠드런'의 감독 토드 필드가 가져온 의도는 분명해 보인다.

여인이 있는 방에서 남자 주인공은 창밖을 바라본다.

이 모습에서 딴 생각을 하는 사내의 욕망을 알 수 있다.

다만 사내가 바라보는 창문의 크기가 다를 뿐이다.

윌리엄 허트의 창문은 크고 밖에는 바람이 요동치는 반면

패트릭 윌슨이 바라보는 창문은 작기도 하거니와 심지어 뭘 보고 있는지도 알 수가 없다.

도저히 패트릭은 어디라도 나갈 수 없어 보인다.

결국 이들 남자 주인공의 결말은 그야말로 찌질함의 우열을 가리기 힘들지만.

나는 단연코 '리틀 칠드런'의 패트릭 윌슨의 손을 들어준다.

'보디 히트'의 윌리엄 허트는 멋들어지게 이용당하는 장르 영화의 주인공인 반면

'리틀 칠드런'의 패트릭 윌슨은 현실에서 수타게 볼 수 있는 나와 내 동료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또 다른 캐릭터를 잠깐 설명하며 이 영화의 엔딩을 이야기하겠다.

성추행을 하다 감옥에 갔다 온 사내.

그가 수영장에 들어가면 모든 사람이 수영장에서 뛰쳐나올 정도로 괴물 취급을 받는 사내.

바로 이 사내다.

얼핏 망가진 다니엘 데이 루이스 같은 잭키 엘 헤일리라는 배우가 분했다.

비록 변태성욕자지만 그의 엄마는 그에게 '작은 기적'과 같은 아들이라고 말한다.

그런 엄마가 죽고 그에게 '착하게 살라'는 말을 남긴다.

엄마의 유언에 광분한 잭키 엘 헤일리는 칼을 집어 들고 집을 뛰쳐나간다.

영화는 이제 엔딩을 향해 치닫는다.

그가 간 곳은 아이들이 찾는 동네 놀이터.

마침 이곳에는 케이트 윈슬렛이 딸을 데리고 와 있다.

관객은 긴장할 수밖에 없다.

광분한 변태성욕자가 칼을 들고 있고,

케이트 윈슬렛은 딸을 데리고 와 있으니.

하지만

영화는 엉뚱하게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변태성욕자인 아들 잭키 엘 헤일리는 칼을 들고 놀이터에서 자신의 성기를 자른다.

그것이 그가 엄마의 유언에 보답하는 일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변태성욕자인 잭키 엘 헤일리는 이 영화에서 가장 성숙한 캐릭터다.


허우대가 멀쩡해 이웃 여자들에게 선망의 대상이 되는 패트릭 윌슨은 방에서 소꿉놀이나 하는 아이로 남았다면,

변태성욕자 잭키 엘 헤일리는 칼로 자신의 성기를 자르며 어른이 되기 위해 몸부림을 치며 영화는 끝을 맺는다.

과연 누가 더 어른스러운 걸까?


어른이 될 수 없는 작은 아이들.

'리틀 칠드런'에는 어른이 되지 못한 어른들의 모습이 섬세하게 그려져 있다.

그 점이 참 흥미롭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

크리스천인 내 어머니의 기도 소리를 엿들은 적이 있다.

어머니는 나를 이렇게 표현하셨다.

'하느님이 주신 소중한 선물' 이라고.

그렇다!

어른이 못 된 어른일망정 우리 모두는 '작은 기적'인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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