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7일 토 _ 2021년

by 이게바라

봄날



어제 <네가 보이면> 시나리오를 다 고쳤다.

낼모레 3.1절 독립만세를 외치는 심정으로 각 잡고 읽어보겠다.


늘 그렇지만 시나리오는 쓸 때보다 다 쓰고 나서가 힘들고, 그 몇 곱절로 고칠 때가 힘들다.

고칠 때는 내 시나리오의 단점이 보여 힘들고, 그 단점을 메꿀 방법이 없어 더 힘들다.

단점만 보이면 그나마 다행인데, 이야기 자체에 드는 의구심도 자꾸 커져만 간다.

어찌저찌 시나리오를 끝내긴 했지만, 화장실에 갔다가 휴지가 모자라 대충 마무리하고 나온 느낌이 들기 일쑤다.

무엇보다 드는 걱정은 이 시나리오의 운명이다.

영상으로 살아나느냐 활자로 묻히느냐? 그것이 문제다.

이것이 ‘시나리오’의 죽고 사는 문제다.


그래서 늘 시나리오를 다 썼을 때 드는 기분은 홀가분하기보다는 막연한 느낌이다.

골방에서 노트북 앞에만 앉아있다가 돌연 허허벌판에 나와 있는 느낌, 바로 그런 느낌이다.

이는 애석하게도 영상으로 살아남지 못하고 번번이 활자로 죽어간 시나리오만을 썼던 경험에서 온 학습효과일 터이다.


어제는 집에 오는 길에 편의점에 들렸다. 가면서 가장 비싼 안주와 맥주 한 캔을 사려고. 수고했다고 나에게 상을 주기 위해서다.

편의점 앞에 갔는데 많은 사람이 모여있는 거다. 뭔가 싶어 가까이 가보니 영화촬영을 막 끝내고 짐 정리를 하고 있었다. 조명기가 다 꺼진 상태라 자세한 상황은 알 수 없었으나 꽤 많은 사람이 서로에게 수고했다고 인사를 하고 있었다.

저들에게 나도 수고했다고 인사를 해주고 받고도 싶었다.


집에 들어온 나는 이제 막 끝낸 시나리오를 들고 현장에 갈 날을 꿈꾸다 맥주 한 캔을 다 마시지 못하고 잠이 들고 말았다.

매거진의 이전글1월 27일  수 _ 2021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