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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게바라 Jul 20. 2022

6월 28일  화 _ 2022년

> 9화 내리라고!     



9화는 싱크대 배달하는 구씨에서 시작합니다. 

근데 구씨가 간 곳이 그곳입니다. 

미정이 전철을 타고 서울 가기 직전에 보고 기분 좋아진다는 광고판.

오늘 당신에게 좋은 일이 있을 겁니다. ] 

이 광고판이 세워져 있는 건물은 ‘교회’로 외벽에도 대형 현수막으로 같은 글귀가 붙어있습니다. 

저녁을 먹은 구씨, 이제 의례 미정을 마중 나갑니다. 

미정과 구씨가 함께 집으로 가는 길, 바람이 쏴 붑니다.      


미정  

더위가 가나 봐며칠 전까지만 해도 이 시간에도 헉헉댔는데 여기만 오면 계절 바뀌는 걸 알아서울에선 모르겠는데     


구씨  

(미정을 길 빈대쪽으로 이끄는) 이쪽으로 와저기 죽은 거 있어     


미정  

뭐야     


구씨  

     


미정  

엎어 놔주지왜 동물들은 다 죽으면 배를 보이고 누울까사람처럼

이런 동네에선 아침마다 하나씩 시체를 마주해요족제비가 먹다가 만 쥐 대가리물통에 빠져 죽은 다람쥐옛날엔 제일 많이 보는 게 개구리 시체였는데 지금은 논이 없어서집 주변으로 다 논이었을 땐 개구리들이 밤이면 길을 건너서 이쪽 논에서 저쪽 논으로 건너가는데 그때 차가 지나가면 두두두둑 터지는 소리가 들려요조용한 밤에 두두두둑

아침에 나와서 보면 개구리들이 종잇장처럼 바닥에 여기저기근데 왜 밤에 건너나 몰라낮에는 발이 뜨거운가     


드라마 시작한 이래, 미정이 이렇게 말 많은 적이 있었나요? 

아마 첨인 거 같아요. 

미정이도 행복지원센터 팀장에게도 실토해요, 속시원히.      


미정  

예전엔 시키는 말 외에는 잘 안 했던 거 같아요누가 내 얘기를 듣고싶어할까

근데 이젠 머릿속에 떠오른 얘기를 그냥 해요그냥 나와요그러면서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한 감정이 올라와요갑자기 내가 사랑스러워요     


이런 좋은 분위기에서 

산포트럭에서 떨어진 짐을 치우는 구씨를 백사장이 발견합니다. 

구씨와 백사장 마주합니다.      


백사장  

아나오늘 이상하게 볼이 잘 맞더라뭐 이런 날도 있구나하고 신기해했었는데뭐 이런 날도 있네죽었는지 살았는지 싹 숨어버린 구자경이를 길거리에서 다 보고너 뭐하냐너 쇼하냐망가진 척     


구씨  

쇼는내가 왜 망가진 척해야 되는데?      


백사장  

세상에 어떤 놈이 자기 여자가 죽었는데 전화해서 뭐운전 중이시냐고차 좀 세우라고이딴 얘기를 하냐나 우리 와이프 죽었다고 하는 줄 알았다네 여자잖아이 새끼 연기하는구나이 새끼가 죽기를 바랬네너 키우던 개새끼 죽었을 때 서럽게 울었대매몇 날 며칠을 눈 뻘개서 다녔대매근데 사람 죽었잖아그것도 네 여자가근데 눈물이 안 나디인간이 뭐어떻게 그러냐     


구씨  

걔가 얼마나 사람 질리게 하는지 모르죠동생이니까 모르지     


구씨의 과거가 심상치 않네요. 

이런 일을 알리 없는 미정은 퇴근길 구씨 갖다 줄 소주를 사려고 하는데, 

슈퍼 주인아줌마가 비싼 양주를 권하기까지 하네요.      


슈퍼주인  

(양주코너 가리키며가끔 이것도 사가던데몇 살이래어디 사람이래     


집에 온 미정은 안주를 만들며 재잘됩니다.      


미정  

자꾸 묻길래 그냥 내 맘대로 대답했어요서른여덟 서울사람이름이 뭐냐고 물어볼까 봐구자철구자승구자경. ‘자로 정신없이 머리 굴리고 있는데 이름은 안 물어보더라구맞았나? ‘이거나 거나 둘 중의 하나잖아.       


미정이 보기에 오늘 구씨가 ‘추앙’을 잠시 잊고 있는 듯하네요.      


미정  

(안주 놓는피곤한가 보네     


구씨  

십킬로를 걸었다     


미정  

     


구씨  

지갑이 없었어     


미정  

...... 쉬어요     


집에 들어온 미정이 엄마에게 인사합니다.     


미정  

다녀왔습니다     


엄마  

저녁은     


미정  

먹었어요     


엄마  

근데 왜 구씨네서 나와술 사다달래?     


미정  

그냥 얘기하다가...     


엄마  

무슨 얘기?     


미정  

.... 사귀는데. (방으로 들어가는     


엄마  

아이고아이고야     


이 시각, 직장에서 꼴보기 싫은 선배 뒷담화가 한참인 창희입니다.      


직원  

염창희 너 정아름이가 왜 그렇게 꼴 보기 싫은지 그거는그거는 한번 생각을 해 봐야 된다     


창희  

그걸 생각해 봐야 알아넌 정아름이 안 싫어?     


직원  

너는 그냥 싫어하는 정도가 아니잖아너무너무 너무너무 너무너무 싫어하잖     


창희  

너무너무 너무 싫게 해     


직원  

우리는 그냥 미친년이아 미친년이 미친년인가 보다 해     


창희  

미친년이랑 옆자라에 앉아 있어 봐옆에 앉아서 하루종일 떠드는 거 들어봐인간의 결이라고는 1도 없는 여자가 욕심만 어마어마해서 너무너무 재미없는 얘기를 하루종일 떠드는 거 들어 봐.     


직원  

정아름이가 부자가 아니었으면은 니가 그렇게 미워했을까평범한 집안에 평범한 여자였다면 니가그렇게 미워했을까좀 솔직해지라고     


창희  

내가 안 솔직해내가 구려내가 구린 놈이야그런 앤 부자든 아니든 싫어하는 게 마

땅해     


직원  

내 말은      


민규  

그만해라     


직원  

내 말은 너도 정아름처럼 욕심 있을 수 있는데 없는 척하는 걸 수 있다고세상에 욕심 많은 인간이 뭐한둘이냐왜 그렇게 정아름이를 미워하는데     


창희  

그럼 내가 뭐아는 인간 미워하지 모르는 인간 미워하냐     


직원  

아이내 말은 니 욕심 부정하지 말고 맘껏 펼쳐보라고너 부자되잖아

정아름이 안 미워한다     


창희  

부자되면 내가 누굴 미워하겠냐내가 이미 충만인데 내가 뭐가 필요해서이 새낀 뭐 하나마나한 얘기를부자 되면 아주 쪼금 미워하겠지아주 쪼금     


집으로 가는 길의 창희, 광화문 이순신 동상을 노려봅니다. 

사나이 인생 나라를 구하는 것도 아니고 뭐가 이렇게 쪽팔리냐?”

이 드라마는 손석구 배우에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되었는데요, 저는 이 드라마를 통해 이민기 배우를 새삼 다시 보게 됩니다. 너무 현실적이라 찌질해 보이지만 정말 섬세하게 연기를 잘 하는 것 같네요.

미정은 엄마에게 이름도 모르는 구씨와 사귄다고 말을 했잖아요. 아버지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근데 아버지는 구씨가 백사장을 만나는 것을 봤잖아요. 아버지는 직감적으로 구씨가 떠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나봐요. 말 없는 아버지가 그 없는 말주변을 총동원해서 구씨에게 ‘산포싱크’에서 일하는 게 나름 괜찮다는 것을 설명합니다. 가만 듣고 있던 구씨가 물 좀 사러 간다며 일어나네요. 이 시각.... 미정은 바닥에 떨어져 있는 ‘네일’을 발견합니다.      


미정  

뭐든지 바닥에 떨어져 있는 건 기이한 거 같아     


지희  

(바닥 보는)     


미정  

그냥 네일일 뿐인데왜 여자의 시체를 보는 거 같을까     


지희  

무섭게     


미정  

누구 거야     


지희  

몰라. (발로 네일을 쓱 밀어버리는)     


뭡니까? 이 불길한 기운...      


미정  

버스 창틀에서도 인조 손톱 본 적 있는데 진짜 이상했어있어야 할 곳에 있지 않는 것들은 다 기이해땅에 누워 있는 새나무에 매달린 사람밭에 있는 개도 이상하고

(씻은 청포도 들고웬일로 술을 안 마셨대?     


창밖을 바라보던 구씨, 소파에 털썩 앉으며 한숨을 내쉽니다. 

마침 식탁 위 구씨 핸드폰에 문자가 옵니다. 

이미 전에 부재중 전화가 와 있고, 지금 온 문자는 이렇습니다. 
 왜 또 전화를 안 받아 새꺄! > 

바로 이어 온 문자

너 백사장 새끼 만났대매어떻게 된 거야 새꺄? > 

핸드폰을 들고 구씨에게 가는 미정, 뭔가 정면돌파하는 느낌입니다.      


미정  

왜 안 받아?     


구씨  

안 받아도 돼     


미정  

오늘도 피곤하신가     


구씨  

(미정 보다 피식 웃는     


미정  

왜 그래     


구씨  

사귄다고 했대매     


미정  

     


구씨  

뭐 하러언제 떠날지도 모르는데다들 모르고 지나갈 수도 있는데     


이 장면... 긴장감이 상당합니다. 

이 장면에 ‘추앙’은 온데간데없습니다.

미정의 다음 대사도 왠지 간담이 서늘해집니다.      


미정  

사귀고 헤어지는 게 뭐 대단한 거라고 그걸 비밀로 해

(포도 뜯어 입에 넣는몇 개만 먹고 일어날게그동안 하고 싶은 얘기 있으면 해요.

 

구씨  

옛날에 TV에서 봤는데 미국에 유명한 자살 절벽이 있대근데 거기서 떨어져서 죽지 않고 살아남은 사람들 인터뷰를 했는데 하나같이 하는 말이 3분의 2지점까지 떨어지면 죽고 싶게 괴로웠던 그 일이 아무것도 아니었다고 느낀대몇 초 전까지만 해도 죽지 ㅇ낳고서는 끝나지 않을 거 같아서 발을 뗐는데 몇 초 만에 그게 아무것도 아니었다고 느낀대그럴 거 같았어그래서 말해줬어사는 걸 너무너무 괴로워하는 사람한테 상담은 절벽에서 떨어지지 않고 3분의 2지점까지 떨어지는 거라고그러니까... 그러니까 상담받아 보라고 했는데 그냥 떨어져 죽었어     


이 대사치는 손석구 너무 매력 있습니다. 

되게 사악하게 보이는데, 매력 쪄는. 뭐라 설명이 어려운 독특한 매력입니다.      


미정  

누가?     


구씨  

같이 살.. 같이 살던 여자가     


(백사장)  

이 새끼가 죽으라고 한 얘기네가뜩이나 위태위태한 애한테죽으라고 심은 얘기네     


구씨  

맞아죽으라고 한 얘기야너무너무 지겨워하는 여자를 보는 게 너무너무 지겨워서그만하라면 그만하고..... 추앙취소해도 돼.     


미정  

언제 추앙했는데     


이 장면에서 미정은 빛을 등지고 있어 시종일관 어둡습니다. 

어둡게 드리운 그녀의 동공은 텅 비어 보입니다.

9화 초반에 미정은 상담센터 팀장에게 말합니다. '갑자기 자신이 사랑스럽다'고. 

말없던 미정이 자기 얘기를 구씨에게 털어놓으며 생긴 감정이었는데요, 

공교롭게도 구씨는 진짜 자기 얘기를 하며 바리케이트를 다시 치기 시작합니다. 

앞으로 둘의 관계는 어떻게 될까요? 

미정은 답답한 맘에 현아를 찾아가지만, 현아는 자신의 연애사로 충분히 힘듭니다. 

현아의 집 앞에서 돌아선 미정은 자신이 기록한 ‘해방일지’를 읽습니다. 

이 시각 창희, 기정 모두 다 힘듭니다. 

기정은 태훈이 계속 생각이 나고, 

창희는 승진에서 누락이 되었습니다. 

구씨네 집이 잠깐 정전이 되는데, 누군가 들어옵니다. 놀란 구씨는 부엌에서 식칼을 빼들고 긴장하는데, 침입자는 배사장이 보낸 자객이 아니라 창희입니다. 

화장실을 쓰러 들어온 거였습니다.      


창희  

(화장실에서 나오는정전이었어요?

(소파에 철푸덕 눕는전 이 기분이 너무 좋아요다 쏟아내고 기진맥진한 기분팬티를 더럽히지 않고 살아남은 자의 안도감오늘 설사가 너무 하고 싶어서 아이스라떼를 두 잔이나 원샷했는데 하루 종일 신호가 없다가 퇴근하고 역에서 내려오는데 갑자기 갈 수 있다갈 수 있다집까지 갈 수 있다.’ 거의 다 왔는데 아버지가 화장실 들어가는 거 보자마자 헙, ‘갈 수 있다형네까진 갈 수 있다.’ 근데 비데까지 있네엉덩이가 뽀송뽀송 날아갈 거 같아요저 푸세식 쓰잖아요아침에 출근하는 인간들이 셋인데 화장실이 하나라 (소파에서 일어나는형은 나의 로망이에요혼자 살면서 비데 쓰는 남자     


구씨  

.......     


창희  

왜 화났어요놀랐구나죄송해요둘 다 안 됐어요나도 내가 너무너무 싫어하는 여자도승진이 안 돼서 또 1년을 봐야 돼요끼리끼리 과학이라는데 왜 여기서 벗어나질 못하는 걸까사방이 꽉 막힌 거 같았는데 그래도 시원하게 쏟아내고 나니까 좀 뚫린 거 같아요비록 승진에선 미끄러졌지만 팬티를 더럽히지 않고 오늘도 무사히 살아남았습니다근데 이렇게 작게 얘기하니까 우리 참 다정한 사이 같아요끼리끼리는 과학인데 우린 뭘 하기로 예정된 사이일까요?     


창희에게는 나름 중요한 대사인데요, 창희의 이 모든 대사를 구씨가 먹어버립니다. 

창희가 대사하는 내내 더 신경이 쓰이는 건 구씨입니다. 

이어지는 장면은 지극히 ‘드라마’적인 설정입니다. 

기억하시죠? 창희가 여기 산포시에 왜 왔냐는 질문에 구씨의 대답. 

잘 못 내렸다고. 

그때 구씨가 ‘당미역’에 내리지 않았다면 구씨는 아마 ‘오이도’역에서 기다리고 있을 배사장 패거리에게 잡혀서 맞아 죽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구씨를 ‘당미역’에 내리게 했던 외침. 

“내리라고!” 소리쳤던 그 외침의 주인공이 바로 염미정이었습니다. 

술에 쩔은 구씨, 밤길을 걷습니다. 

그 모습을 본 미정이 구씨를 뒤를 쫓아가면서 9화가 끝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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