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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아나 Jan 12. 2016

뜻밖의 과거와 마주하다

아스팔트 위 네 잎 클로버


 나는 기억력이 좋지 않다. 정확히는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하는 편이다. 고등학교 동창의 이름과 얼굴도 떠올리지 못하는가 하면 초등학교 때 누가 누구에게 차였다던가 하는 점은 기억하고 있어 때때로 사람들을 놀라게 하곤 한다.


이 특별한 기억력은 주로 초등학교 시절에 대부분 머물러 있다. 내 삶에 남에게 자랑할만한 과거는 없지만 아마도 스스로 그때가 가장 즐거웠다고 느꼈나 보다. 


그럼에도 시간이 흐르고 하루가 쌓이다 보면 내게도 잊히는 기억들이 있다. 나이를 먹는 것이란 그런 것이라 생각한다. 잊고 싶지 않은 것도 서서히 잊힌다는 것이 나는 서글펐다. 


이상하게도 나는 내 과거와 점점 멀어져만 가는 삶을 살았다. 학년이 올라가고 학교가 바뀌며 나는 늘 이사를 다녔다. 늘 연고란 전혀 없는 곳으로의 이동뿐이었다. 그리고는 웬만하여선 과거에 살았던 곳으로 돌아가는 일은 없었다.


그래서인지 언제부터인가 내 시작점부터 과거를 훑어보고 싶은 맘이 줄곧 있었다. 내가 매일같이 찾아가서 어머니가 싫어했던 친구 집. 아이스크림을 훔쳐 달아나던 골목길. 


나뭇가지처럼 복잡하게 뻗어있는 지름길들. 그 광경이 옛날과 같으리란 낭만적인 기대는 품지 않는다. 하지만 그곳에 가면 잊혔던 기억들이 피어오르진 않을까 하는 기대는 약간 품고 있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나는 분명 그곳으로 돌아갈 것이다. 시간 여행이라도 하듯 내 과거를 경유하여 결국 현재로 돌아올 것이다. 


최근 다른 일로 친구들과 그 근처를 지난 적이 있었다. 사실 그곳은 내가 살던 동네는 아니었다. 어째서 그때 그곳에 있었는지는 아직도 기억나지 않는다.  왠지 익숙한 느낌에 걸음이  더욱더 느려졌고 결국 떠올랐다.


다만 강렬한 기억이 되살아나 내게 그 날을 상기시켜주었다. 내가 어떻게 그런 곳을 잊을 수 있었던 것일까?


가파른 경사길. 철제로 된 난간. 난간 너머로 보이는 육교와 지하차도. 까마득한 땅바닥. 그곳에서 그녀와 나는 죽으려 했었다. 정확히는 그녀가 죽자고 했다.


실제로 그녀는 난간을 넘어서 있었다. 그녀는 울면서 어린 나에게 그냥 지금 죽자고 했다. 그녀가 나와 죽으려 했던 이유가 무엇인지 나는 아직도 모른다. 


그 날 그녀에게 어떤 상처가 있었는지 우리가  무슨 일을 당했던 것인지 기억도 나지 않으며 궁금해도 이젠 알 수 없다.


그 날 나는 공포에 떨고 있었다. 무서워서였는지 추워서였는지는 몰라도 벌벌 떨고 있었다. 살고 싶었다. 무서워서 울부짖었고 생을 붙잡고 늘어졌다. 아마 내가 발버둥 치지 않았다면 그 날 나는 죽었을 것이다.


소란에 동네 사람들이 집 밖에 나왔고, 그들은 경찰을 부르기보단 직접 그녀를 말려줬다. 시간을 들여 천천히 그녀를 설득했고, 그 날 결국 우린 살았다. 


그들은 우리에게 이불을 가져다줬다. 따뜻했고 온몸에 힘이 풀려 움직이기 힘들었다. 이후의 기억은 그녀품에 안겨 택시를 탔던 기억이다. 그녀는 훌쩍이며 내 머리를 쓰다듬고 또 쓰다듬었다. 


정말 뜻밖의 장소에서 뜻밖의 기억을 떠올리게 된 것이다. 떠올리고 싶지 않았던 기억이었을 것이다. 그랬기에 의식 저편에 갇혀 있었으리라. 


창피한 기억이고 어디 가서 말하지도 못할 치부나 다름없는 기억이다. 그럼에도 내게는 선물처럼 느껴졌다. 땅을 보며 걷다 우연히 발견한 네 잎 클로버처럼 내겐 행운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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