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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아나 May 16. 2016

피곤한 사람이었다

'네 얘길 들으면 나까지 우울해져'


'나도 화가 나더라고 내가 뭐 어떻게 해달라는 것도 아니고 그냥 얘기만 들어 달라는 건데 그것도 못해주냐고 크게 싸웠지. 결국 그것 때문에 헤어지긴 했지만.'


얼마 전 술자리에서 친구의 이별 얘기를 들었다. 학창 시절부터 함께 해온 애인과 헤어진 이유는 정말 사소했다.


늘 힘들게 사는 내 친구에게는 그 힘든 현실을 털어놓을 곳이 필요했고, 그 친구의 애인에게는 다른 커플들과 같은 소소한 행복이 더 필요했다. 연인과 만날 때만큼은 즐겁고 행복했으면 싶었을 것이다.


'나랑 만나면 맨날 어렵고 힘든 얘기만 해서 피곤하대. 자기가 너무 비참해지는 것 같대.'


사람일이라는 게 어느 쪽이 옳다 그르다 판단하기엔 너무 어렵다. 다만 내쪽이 더 와 닿았던 것은 친구 쪽이었다. 내 사람이라서, 내 지인이라서가 아닌 그 입장이 내게 더 와 닿았다. 사실 내가 그런 사람이었다.


그 커플은 서로를 참 많이도 배려해주던 예쁜 커플이었다. 오랜 기간 연애를 하면서 친구처럼 또 가족처럼 서로를 챙겨주는 모습이 참 좋아 보였다. 다만 서로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게 된 이유가 지쳐서.. 였다는 것이 조금 서글펐을 뿐이다.


얼마 전 까지만 해도 나 역시 저런 이유로 사람이 필요했었다. 조금이라도 내 힘든 점을 들어줄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감정적으로 의지할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결국 나는 내 욕심 때문에 상대를 이용해선 안된다는 생각으로 실행에 옮기지 않았다. 서로에게 힘들고 끝이 좋지 않을 것을 이미 알기에. 


그리고 그 친구 커플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것은 비단 연인 사이에서만 벌어지는 일은 아니라고 느꼈다.


한 무리의 친구들이 만난다고 가정했을 때. 누군가는 분위기를 띄우고, 누군가는 이야기를 잘 들어주며, 또 누군가는 항상 늦고, 누군가는 다혈질이고, 누군가는 늘 돈이 없고 힘들다. 


나는 늘 돈이 없고 힘든 포지션의 친구였다. 친구들이 자신의 연애담, 학교에서 있었던 일, 술자리에서 있었던 일, 아르바이트하면서 받았던 스트레스, 혹은 게임에서 있었던 일을 얘기하며 줄곧 밝고 즐거웠던 분위기도 내가 입을 여는 순간 숙연해진다.


그들이 할 수 있었던 건 침묵과 작은 끄덕임. 비어 가는 잔을 채워주는 일 정도뿐이었으리라.


관심도 없고 재미도 없지만 늘 힘들고 어렵게 사는 친구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피곤하다.'


내가 피곤한 사람이었다는 걸 깨닫고 나서는 새삼스레 두렵다는 마음이 커졌다. 오랜 연인이 헤어졌듯 내 사람들도 내게 지쳐서 나를 떠날까 봐.


사람이 만나고 헤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지만 나는 아직도 보내는 일이 익숙지 않다. 보내야 하는 그 날이 올 때 후회하지 않도록 조금 더 열심히 비어있는 잔을 채우고 고개를 끄덕여주기로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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