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된 후 도전한 메이크업 아카데미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권태기가 찾아올 때가 있다. 싱가포르에서 취업을 하고 난 후, 워라밸이 지켜지던 회사 문화의 덕분에 저녁에는 항상 시간이 남아도는 듯한 느낌이었다. 게다가 권태기라도 찾아오면 심심하고 무료하게 시간을 흘려보내기가 아까웠던 당시 싱글 직장녀였던 나는 취미로 배울 수 있는 학원이란 학원은 다 등록해서 시도해보았었다. 남들이 재밌다고 하면 또 솔깃해서 찾아가서 등록한 곳도 여러 곳이었지만 그때뿐이고 꾸준하게 이어지지 않았었다.
그러다 싱가포르에서 결혼을 하게 되었는데 그때 내가 제일 신경 쓰이던 부분이 바로 메이크업이었다. 평생 한 번뿐인 결혼식날,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사진을 남기고 싶은데 너무 두껍거나 촌스러운 화장으로 그날의 기억을 망치고 싶지 않았다. 한국식의 자연스러운 화장을 하고 싶었기에 한국인 메이크업 아티스트를 찾아보았지만 그때는 요즘처럼 한국사람들이 많이 있지 않았던 때라 찾을 수 없었고, 결국 결혼식 당일날은 어쩔 수 없이 현지 아티스트를 섭외해야만 했다. 화장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그때 결심했다.
아무도 하지 못하면 내가 직접 해봐야겠다고.
메이크업은 정말 옛날부터 배워보고 싶었던 것이었기에 평소에도 뷰티 블로거나 뷰티 유튜버들을 꾸준히 구독하고 있었다. 혼자서 따라 해보기도 하고 변화해가는 나의 모습을 발견하는 것도 즐거웠지만, 뭔가 채워지지 않는 부족함이 있었더랬다. 내 얼굴에 직접 하는 메이크업과 내가 남에게 해주는 메이크업에는 매우 큰 차이가 있었고 수많은 망설임 끝에 결국 정식으로 배워보기 위해 아카데미에 등록하기로 도전해보기로 했다. 사실 회사를 다니던 시절에도 해보고 싶었지만 학원 수업들이 전부 평일 낮에만 있어서 회사를 다니면서 학원을 다니기란 불가능했다.
그렇게 마음속에서만 고이 간직한 메이크업의 꿈은 예상치도 못하게 임신 출산을 계기로 행동에 옮기게 되었다. 첫 아이를 출산한 이후 처음 갖게 된 나만의 시간, 바로 출산 휴가기간이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 나에게 주어진 이 황금 같은 평일 낮시간을 의미 있게 보내고 싶었고, 무엇보다 지금까지의 커리어와 완전 다른 방향의 것을 배워보고 싶었다. 주변 친구들은 출산휴가 기간에 산후조리에 애기봐야지 무슨 짓이냐고 말렸지만, 나에겐 정말 절호의 기회와 같은 이 시간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내가 정말 배워보고 싶던 바로 그 메이크업을 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인 것 같았다. 조심스럽게 신랑과 시부모님께 이야기를 꺼내자 정말 감사하게도 응원해주셨다. 시어머님께서는 아기를 봐주실테니 걱정말고 다녀오라고 해주셨다.
그런데 막상 아카데미 비용을 듣고 보니 그동안 내가 취미로 배워왔던 비용보다 훨씬 더 부담스러운 가격이어서 잠시 망설였다. 그런 내 모습을 보더니 아카데미 상담 실장님은 나에게 다음 주에 원장님이 하시는 무료 마스터 클래스가 있는데 참여해보지 않겠냐고 하셨다. 미리 원장님의 스타일도 볼 수 있는 기회인 것 같아서 그날 현지 사람들 속에서 마스터 클래스에 참여해보았다. 다들 나이가 나보다는 어려 보였고 메이크업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라 그런지 다들 화려한 메이크업을 한 중국계들이 많았다. 외국인은 나 혼자인 것 같았다.
새하얀 상의와 하의로 깔맞춤 하신 원장님은 마치 앙드레김과 같은 어딘지 범상치 않은 예술가의 분위기를 풍기시며 등장하셨다. 수업을 시작하면서 첫마디가 아직도 기억에 남았다.
우리는 취미로 배우려는 사람보단 이 치열한 메이크업 세계에서 아티스트의 길에 진지하게 도전하려는 사람을 찾습니다.
나는 그 말이 참 좋았다. 아직 산후조리가 완벽하게 되지 않고 아직 어린 아가를 집에 두고 유축기를 들고 다니며 남들보다 조금은 힘들게 다녀야 하는 시기였기에 그만큼 이 시간을 진지하게 의미 있게 보내고 싶었다. 그날 원장님께서는 홑커풀 눈을 쌍꺼풀 눈매로 교정하며 메이크업하는 스킬을 짧게 보여주셨는데 유튜브에서 보던 것보다 현장감 있었고 수업 이후에 직접 모르는 것도 물어볼 수 있어서 좋았다. 마스터 클래스 이후, 결국 수강료를 바로 결제하고 앞으로 수업에서 사용할 메이크업 도구를 이것저것 한아름 담아 묵직해진 짐을 가지고 집으로 오는데 엄청 설레고 벅차올랐다.
그렇게 나는 메이크업 아티스트의 길로 첫 발걸음을 걷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