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에서 만난 친구들

너무 다양한 배경의 동기들과 함께

by 커리어 아티스트

무거운 짐가방을 메고 (파우치 정도의 무게를 생각했었는데 풀 메이크업 도구가 그렇게 무거울 줄이야...) 꼬박꼬박 학원을 다녔다. 처음엔 내가 지금 하는 커리어와는 전혀 다른 분야에 시간 낭비하는 건 아닐까 하는 우려가 있었지만 배우면 배울수록 등록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가 시키거나 강요에 의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순전히 개인적인 관심에서 시작한 것이기에 시간이 어떻게 가는 줄도 모르고 완전히 몰입해서 수업을 듣게 되었다. 아무래도 아가와 함께 있을 시간을 희생(?)하면서 보내는 소중한 기회인지라 그에 걸맞게 시간을 낭비하지 말아야겠다는 마음이 들었기 때문인 듯하다.


학원 수업을 같이 듣는 사람들과도 조금씩 알아갔는데 다들 배경이 참 다양했다. 기존에 메이크업 아티스트로 활동하는 분, 가정주부, 다른 분야에서 일하다가 뷰티업계로 들어오기 위해 배우는 친구, 학생 등등.


그러나, 그중에서 평소에 만나기 힘든 특이한 배경의 두 친구들이 있었는데....


항상 검은 발찌같이 보이는 것을 매고 있는 그녀가 있었다.

우리가 설마 만보계 차고 있는 거냐고 물었으나 그녀의 대수롭지 않은 대답이 돌아온다


"응.... 정부가 날 너무 좋아해서 준거야."


그게 뭔 소리인지?? 라는 우리들 표정을 보면서 별안간 그녀는 매우 쿨하게 감옥에 다녀왔다고 스스럼없이 털어놓는다. 다름 아닌 재소자 출신이라는 것.


아직 나이도 한참 어린 20대 초반의 그녀의 몸에 여럿 화려한 문신이 있는 걸 보면서 왠지 범상치 않는 기운이 있긴 했으나 설마 그런 스토리가 있었을 줄이야. 그중 나이가 좀 있어 보이시는 다른 한 분도 역시 재소자 출신이라고 하셨다. 그분은 이혼 후 자살시도 실패하셨었다는 어딘지 인간극장 같은 프로에 나올만한 과거를 털어놓으셨다.


한동안 정적이 흐르다가 옆에 있는 인도 새댁이 우리들의 궁금한 질문을 대표해서 물어본다.


"그런데 무슨 일로 다녀온 거니..."


"약물중독"


알고 보니 재소자 출신을 대상으로 사회로 돌아가서 잘 정착할 수 있도록 정부에서 민간업체와 함께 교화 프로그램을 진행했는데 그중 베이식 메이크업 과정에서 성적이 뛰어난 소수 몇 명을 지금 우리가 듣고 있는 고급 메이크업 아티스트 과정으로 보내준 거라고 했다. 싱가포르 신문에도 한번 나왔단다.


예전의 실수를 다시 반복하지 않겠다고 결심하고 사회로 돌아왔지만 이미 주홍글씨의 낙인이 찍힌 그녀들을 받아주는 곳은 많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같은 재소자 출신들 중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사회복귀를 포기하고 다시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수감되는 과정을 반복한다고 했다. 그녀는 지금 열심히 기술을 배워서 성공한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되면 자신 같은 처지의 여성들에게 인생에서의 두 번째 기회는 반드시 온다고 말해주고 싶다고 했다.


솔직하고 쿨하지만 수업에 있어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진지한 그녀들을 보면서 사회로의 화려하고 당당한 컴백을 준비하는 그녀들을 응원해주고 싶었다. 비록 과거의 실수가 있었지만 인생의 두 번째 기회 앞에서 열심히 준비하는 그녀들을 보면서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있고 어떤 한 가지면만 보고 색안경을 끼고 그 사람의 인생을 함부로 판단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워낙 다문화적인 싱가포르지만 그 안에서도 또 저마다 각각의 스토리를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세상에는 내가 모르는 세계를 겪어본 이들이 참 많구나라는 걸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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