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도 잡지사에서 메이크업 아티스트를 구하는 연락이 종종 왔었기에, 평소 습관처럼 화보 촬영일자와 시간을 물어보았다. 하지만 기자님은 메이크업 아티스트로서가 아닌 인터뷰 주인공으로 기사를 쓰고 싶어서 나에게 연락을 했다고 하셨다.
이 잡지는 우리나라로 치면 우먼센스나 여성동아 같은 여성 라이프스타일 패션지였는데 중국어로 된 잡지였다. 기자님은 싱가포르에 사는 좀 특이한 외국인의 적응기를 다루는 기획기사를 준비한다고 했다. 그리고 금융업에 종사하면서 메이크업 아티스트의 꿈을 키우는 한국인인 나의 이야기를 인터뷰하고 싶다고 했다. 중국어로 된 잡지지만 외국인임을 감안하여 인터뷰는 영어로 진행될 거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다.
처음에는 대단한 사람도 아니고 그저 평범한 아줌마인 내가 무슨 할 말이 있겠나 싶어 거절할까 망설였다. 더군다나 나는 유명한 메이크업 아티스트도 아니었고 그저 취미로 시작한 메이크업이 좋아서 작지만 꾸준하게 활동을 이어가고 있었던 중이었다. 하지만 지금 아니면 또 언제 싱가포르 잡지에서 인터뷰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결국 고민 끝에 나에게도 좋은 추억이 될 것 같아 용기를 내어 도전해보기로 마음먹었다.
잡지나 TV 촬영 때 사진기 뒤에서 모델 메이크업 담당하는 역할은 많이 해봤지만, 이렇게 사진기 앞에서 촬영하고 인터뷰를 해본건 처음이었다. 싱가포르 잡지사 로비에 도착하자 기자님과 스타일리스트가 촬영하는 곳으로 안내했다. 메이크업 아티스트와 헤어 스타일리스트에게 나의 머리와 얼굴을 맡기면서 마음이 두근거렸다. 항상 해주기만 하다가 받는 입장이 되고 나니 기분이 묘했다.
사진 촬영이 끝나고 기자님을 만나서 본격적인 인터뷰를 진행했다. 대학 졸업 후, 글로벌 커리어를 쌓아보고 싶어서 오게 된 싱가포르에서 다국적 금융권 기업들을 거치며 치열하게 일하면서 겪었던 에피소드들, 10년의 직장생활 후 드디어 가게 된 MBA에서의 고군분투기, 그리고 평소 자연스러운 한국식 화장법을 싱가포르 친구들과 나눠보고 싶다는 마음에서 시작된 메이크업에 본격적으로 도전해 본 이야기를 전반적으로 이야기하는데 인터뷰 한 시간이 훌쩍 흘러갔다.
돌이켜보면 싱가포르는 나에게 참 많은 "시작"을 안겨주었다.
15년 전 주변에서 관심 있어하던 사람이 거의 없었던 싱가포르 해외취업이든,
스페인과 싱가포르에서 공부하는 파트타임 MBA든,
금융권 출신의 한국인 메이크업 아티스트든,
도전하고 싶은 것이 생길 때마다 주변에서 이미 그 길을 걸었던 분들은 찾기가 힘들었다.
돌이켜보면 나의 첫 시작들은 남들이 잘 안 가본 길로만 골라서 다녔던 것 같다.
아무도 내가 하려는 도전에 대해 조언해 줄 수 없었기에
나는 모든 첫 "시작" 전에 과연 맞는 길로 선택한건지 확신도 없었고 망설여지기도 했지만
오히려 아무 선례가 없었기에 멋모르고 도전해볼까 용기를 내어 시작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카메라 뒤가 아닌, 카메라 앞에서 주인공으로써 잡지 인터뷰를 한 것도 어떻게 보면 나의 또 다른 시작이었다. 인터뷰 내내 그동안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끊임없이 고군분투했던 지난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치는 듯했다. 매 순간 도전들이 대단한 성공 스토리로 이어 진건 아니었지만 소소한 도전들 자체가 나의 삶의 활력소였다. 흥미진진하게 듣고 계시던 기자님께서는 금융권 출신의 메이크업 아티스트는 처음 봤다면서 나에게 참 열심히 사는 것 같다고 했다. 나중에 잡지가 나왔을 때는 중국어로 되어있어서 정작 내용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아쉽긴 했지만 잡지에 한 면을 꽉 채운 나의 사진을 보니 싱가포르의 소중한 추억을 하나 더 만들게 된 것 같아 기뻤다.
나는 아직도 하고 싶은 "시작"들이 많다.
혹시 이 글을 읽는 누군가가 남들이 가보지 않은 시작 앞에서 머뭇거리거나 망설이고 있다면, 아무도 해보지 않았기에 더욱 도전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하고 싶다. 남들이 해보지 않았지만 내가 너무 도전해보고 싶은 건, 바로 남들과 비교 불가한 퍼스널 브랜딩의 시작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설령 그 도전이 성공으로 이어지지 않더라도 괜찮다. 나만의 도전 과정을 경험한 삶 자체가 의미 있는 거니까. 아직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이지만 용기 있게 시작할 수 있는 도전이 아름다운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