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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어내고 채우는 계절의 법칙

여름의 끝에서 균형잡기

by 커리어 아티스트

여름도 이렇게 저물어간다.
한때는 숨조차 가쁘게 만들던 뜨거운 공기, 온몸을 휘감던 강렬한 햇빛도 이제는 한결 누그러질 것 같다.창밖의 나무들이 내뿜던 짙은 녹음은 서서히 색을 달리하며, 저녁 바람은 조금씩 차분한 기운을 띠기 시작하는 계절이 왔다. 물론 적도의 나라 싱가포르는 여전히 여름 날씨지만 말이다. 뜨겁게 달아올랐던 계절이 서서히 식어가듯, 내 마음도 조금은 차분히 가라앉는다. 지금까지의 회사생활도 뜨겁고 열정적이었던 여름을 닮았다면 앞으로의 회사생활은 계절의 흐름을 따라 가을로 향하고 싶어진다.


새 회사에 출근한 지도 어느덧 2주.

처음 옮길 때는 큰 기대도, 과한 긴장도 하지 않았다. 그저 자연스럽게, 가볍게 시작하고 싶었다. 되면 좋고, 안되면 그러려니란 생각. 그래서인지 의외로 편안한 마음에서 시작해서 일까, 이 자리에서의 시간이 조금은 익숙하게 다가온다. 해야 할 일들은 산더미처럼 많아 보이지만, 이상하게도 두렵기보다는 설레는 마음이 더 크다. 이번에는 번아웃 없이 오래 달려보고 싶다는 다짐을 품으니, 오히려 일 자체가 삶을 가볍게 채워주는 것 같다. 스스로를 아껴가며, 나의 속도대로, 성실히 일하면서도 예전처럼 무조건 나의 모든 것을 갈아넣어서 해내고야 만다는 강박은 내려놓고 싶다.


최근 법륜스님의 행복학교를 수강했다. 그 와중에 느낀건 열심보다 중요한 건 과정 속에서 내가 행복한가 하는 것이었다. 이제는 조금 덜 날카롭고 싶은 마음이 든다. 나를 몰아붙이지 않고, 불필요한 경계심을 갖지 않고, 흘러가는 대로 두려움 없이 살아가고 싶다. 때로는 가만히 관찰자의 시선으로 멀리서 삶을 바라보며, 거기에 담긴 작은 의미들을 알아차리고 싶다.


물론 내 성향상 흐릿하게 머물러 있을 수는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아무 것도 안하고 멍때리는 것은 나에겐 마치 고문처럼 괴로운 일이다. 분명 아마 또 새로운 일을 벌이고, 계획을 세우고, 달려갈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런 나를 탓하지 않으려 한다. 성급하게 몰아세우는 대신, 다정하게 다독여주고 싶다.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차근차근, 급하지 않게, 하나씩 해나가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걸음을 걷는 것임을, 이제는 분명히 배웠으니까.


바쁘다는 이유로 정작 나에게 중요한 것들을 챙기지 못하면, 결국 남는 것은 허무와 공허함뿐이라는 것을. 이번에는 꼭 건강을 최우선에 두고 싶다. 그리고 나의 가족. 그들이야말로 내가 살아가는 이유이고, 내게 가장 큰 기쁨과 위로를 주는 존재이니까. 커리어는 그 다음이다. 행복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내가 진심으로 하고 싶은 방향으로, 오래도록 이어가고 싶다.곧 가을이 다가온다. 아이들의 생일을 챙기고, 출간 준비를 이어가고, 새로운 회사에 적응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하루가 짧다. 여기에 업계 행사들까지 겹치면 분명 다시 정신없이 바쁜 날들이 이어질 것이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연말이 찾아오고, 2025년의 끝자락에 서 있겠지. 겨우 네 달 남짓한 시간, 그 짧은 순간들을 어떻게 채워야 할까. 나는 더하기보다는 중간중간 덜어내기를 통해 잃지 않아야 할 균형을 지키며, 다가올 계절 속에서 조금 더 행복한 내가 되어 있고 싶다.


요즘 나는 매일 산책을 하는데 걷다 보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바깥 풍경만 바라보는 게 아니라, 내 안의 풍경도 함께 산책하고 싶다고. 풀잎 사이로 스치는 바람처럼, 내 안의 마음도 조금씩 들여다보고 싶다. 아직 읽고 싶은 책이 많고, 곱씹고 싶은 생각들도 여전히 많다. 그 모든 것들을 서두르지 않고, 차분히 곱게 풀어내고 싶다. 그렇게 차분한 주말을 보내며, 또 새로운 9월을 맞이해야겠다. 새 계절이 오면 분명히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이 업계에서 어쩌면 또 다른 "열심히"가 필요할지도 모르지만, 서두르지 않으려고 한다.


여름을 보내고 가을을 맞이하듯, 내 삶의 흐름 속에서도 천천히 그러나 단단하게 나의 중심을 지켜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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