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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baD Oct 26. 2024

다시 돌아온 치앙마이 - 2년 후

지난 80시간의 재구성

외향인도 참석 가능한 내향인 전용 친목 모임에 다녀왔다. (어느 자격으로 간 거게?)

보드게임이라면 질색인데, 카드게임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돌아가며 카드를 뽑고, 그 카드가 시키는 대로 하면 되는 게임이었다. 마음의 소리(inner voice)에게 이름을 붙여주고, 앞사람의 마소에게 내 마소를 소개해주라는 카드가 나왔다. 내 안의 소리에게 "제발 변화 이제 그만"이라는 이름을 붙여줬다. 일 년 만에 다시 오른 여행길, 애인이고 뭐고 다 제쳐두고 버선발로 뛰쳐나왔건만, 내 마소는 이 모든 변화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주짓수 수업을 들으러 갔다.

도장 문을 벌컥 열고 보니 최소 190은 되어 보이는 북유럽, 서유럽, 북미 남성들의 시선들이 나에게 모였다. 그들의 검은자위가 요동쳤다. 마침 나 또한 아시안 멸치녀로써 실존적 위협을 느끼던 참이었다. 막상 손발을 맞대보니 체급 차이보다는 숙련도 차이가 더 크게 느껴졌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현대인의 3대 질병인 자아 비대증, 놀랍게도 그 셋은 모두 자아비대증 환자가 아니었다. 힘의 차이를 확인하려고도 확인시켜 주려고도 하지 않았다. 강사는 우리에게 주짓수를 '몸으로 푸는 퍼즐'로 소개했고, 파트너와 호흡을 맞춰서 추는 댄스처럼 주짓수 대련을 해보길 권했다. 그래서 재미있었다. 

마치고 보니 정강이에 군데군데 피멍이 들어있었다. 선방했다.

마치고 보니 팔에 하얀색 고양이 털이 붙어 반짝이고 있었다. 그런데 고양이도 곱슬이 있나? 아 고양이가 아니구나!


치앙마이는 여전히 반쯤 미군기지, 반쯤 동남아 도시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딱 2년 전, 처음으로 '무기한 여행'길에 오르던 날, 첫 행선지가 치앙마이였다. 구글에 '디지털 노마드' 치니까 치앙마이 얘기밖에 없길래 별 고민 없이 티켓을 끊었다. 

그때도 지금도 관광업 종사자가 아닌 태국인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 '여행자 버블' 안에 갇히지 않기 위해 되도록 숙소를 도심에서 멀리 잡았다. 그러나 나는 '크립토(crypto - 블록체인) 팝업 시티'에 온 것이었기 때문에 숙소 동네에서 시간을 보내진 못하고 있다. 

이 많은 노마드들을 어떻게 써먹을 수 있을까? 태국의 현지 테크 스타트업 사람들과 만날 기회가 있으면 나도 꼭 참석해보고 싶다. 태국 사람들도 원하지 않을까? 태국 정부는 관광업에 진심인 것 같던데, 왜 안 하는 걸까?

호박을 넝쿨째 썩히는 건 한국 정부도 둘째가라면 서럽다.


아침저녁으로 역주행 한 번씩 갈겨준다.

태국은 좌측통행이다. 내가 잘못한 건데도 "오우씨야" 마주 오는 차에게 투정을 부려본다. 치앙마이 도착하자마자 오토바이 렌털을 알아봤다. 팝업 시티 단체방에서는 '온라인으로 결제하면 스쿠터를 배달해 주는' 백인 전용 렌털 서비스에 대한 얘기가 오갔다. '보다 저렴한 로컬 렌털샵' 추천도 있길래 그곳으로 향했다. 광택이 흐르는 바이크들이 도열해 있었다. 2주 렌털 특별 할인가 17만 원. 내 2주 숙소비가 20만 원인데? 이게 말로만 듣던 카푸어?

카푸어라니 안될 말씀. 발품을 팔아 12만 원에 꽤 그럴싸한 바이크를 빌렸다. 이상한 일이다. 백인 전용 럭셔리 렌털 바이크를 했어도 낼만한 가격이었을 거다. 그러려고 치앙마이 오는 것 아닌가? 오도방은 치앙마이 최적의 교통수단이고, 나는 차보다 오도방을 타고 산으로 들로 나다니는 걸 좋아하기 때문에, 그리고 바야흐로 나는 월급 노동자이기 때문에, 나도 백인들처럼 가격 안 보고 고를 수 있다. 

하지만 그럴 순 없다. 이보다 더 나은 조건이 있다는 걸 아는 이상, 눈앞의 간편한 제안을 받아들일 순 없었다. 나도 참 아시아 인이다. 가격 후려치지 않은 게 어딘가? 선방했다.


태국의 저렴한 숙소에 가면 아주아주 부드러운데 물 흡수는 잘 안되고 털오라기가 묻어나는 수건이 있다.

처음엔 그 보드라움에 감탄했지만 자신이 마치 방수포라도 되는 양 수건주제에 물을 닦아주질 않아서 슬슬 짜증이 났다. 특히 세수하고 나서 로션이라도 바를라 치면 빨간 수건의 작은 실오라기들이 묻어나서 붉은 반점처럼 나의 손바닥과 얼굴을 덮는 게 슬슬 부아가 치밀었다. 앞으로는 얼굴 닦는 수건은 따로 챙겨 다녀야겠다. 

하루 만 원짜리 숙소를 잡는 나를 보고 '이제 월급을 받는데 왜 예산이 안 오르냐'며 어이없어하는 애인을 보고 (사실은 애인 동생 부부의 호캉스 이야기에 자극을 받아) 하루 만사천 원쯤 하는 숙소로 옮겼다. 한국 모텔에서 흔히 보이는 빳빳한 흰색 목욕 타월이 있었다. 만세! 

하루 사천 원 더 쓰느니 아무래도 한국에서 수건 하나 챙겨 오는 게 낫겠지?

아무래도 이번생에 호캉스는 글렀나보다.


태국의 소승불교 승려들은 구걸해야만 밥을 먹을 수 있다.

매일 정오 경에 마을로 내려가 탁발을 한다. 그날 시주받은 음식을 한 데 모아 뒤섞어 먹는다. 매일의 참담함. 개발도상국의 '사제 계급'은 엘리트 층이다. 대학 교육까지 받는다. 사회의 지식인들에게 개밥을 먹인다. 이 세상 모든 엘리트가 구걸을 한다면 전쟁은 없어질까?

도시에서 가까운 사찰에 '승려와의 대화(Monk Chat)'를 갔다. 선교사들이 찾아다닌다면, 승려들은 문을 열어두는 듯했다. 다른 승려들은 밝은 주황 옷을 입고 있었는데, 우리를 맞은 스님은 어두운 자주색 법의를 입고 있었다. 주지 스님인가? 유창한 영어로 인강 일타 강사 뺨치는 판서를 자랑하며 우리에게 하루 세끼 밥 처먹고 헬스장에 돈 바치고 시간 바치고 매일매일 냄새날까 샤워하면서 마음은 왜 돌보지 않느냐고 물었다. (물론 저렇게 말씀하시진 않았다) 마음의 헬스장은 명상이었다. 다 함께 눈을 감고 명상을 하며 이 세상 모든 살아있는 존재의 행복과 평화를 빌었다. 


집에 가기 전, 스님은 옷 색깔은 계급을 나타내는 게 아니며, 같은 절에 있는 사람들은 같은 색의 옷을 입는다고 말했다. 대체로 산에 있는 절 스님들은 어두운 색, 도시에 있는 절 스님들은 밝은 색 법의를 입는다고 했다. 자기는 멀찍이 있는 산에서 이 대화를 위해 왔다고 했다.

집에 가기 전, 절에서 운영하는 고아원을 위한 기부 시간이 있었다. 퍼뜩 잠에서 깼다. 이거도 관광 상품이었나? 돈이 아까운 건 아니었지만, 내 마음에서 우러나는 돈보다 더 적은 돈을 넣었다. 그래도 이게 가장 '태국'에 가까이 보낸 시간이었다.


아멘


조각보 같은 나의 여행 기록 노트를 일관성 있게 한 큐에 꿰어 글을 써달라고 했더니만

지피티가 버벅거린다. 그냥 이대로 출판한다. 올해 안에 지피티5 나온다던데 그땐 복붙 브런치 가능하려나.


영어 메뉴 없는 곳이 찐이지! 그림을 손으로 가리켜야 하기 때문에 평소에 높이뛰기 연습 좀 해두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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