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마딩 309일 차 | 서울 > 두바이 > [나이로비] > 다합
뉴스레터를 시작했습니다. 브런치에도 복붙하면 된다는 걸 깨닫고 다시 돌아왔습니다.
케냐에 와서 가장 먼저 한 건 사파리 투어였다. 동물 구경에 취미는 없었지만 여기까지 와서 사파리 투어를 하지 않는 건 말이 안 되는 것 같았다. 나보다 나이가 많아 보이는 도요타 지프차에 올라 흙먼지 길을 달렸다. 액정 너머로만 존재해 왔기 때문에 나에게 해태와 다를 바 없었던 사자 코끼리 얼룩말 기린 그런 덩치 큰 친구들과 같은 시공간에 머물자니, '내일이면 저들은 다시 유니콘이 되겠군' 싶었다. 내가 너무 멀리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투어가 끝나고 나이로비 시내로 돌아왔다. 저녁을 먹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 창 밖으로 한 여자가 어떤 남자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드러누운 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울부짖었지만 그 남자는 그녀의 물건을 돌려주지 않았다. 이게 강도 사건이라는 걸 깨닫는 데 한참이 걸렸다. 총 같은 건 없었다. 어차피 힘으로 뺏으면 그만인 것을. 다시 사파리 투어를 하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유리창 한 장을 사이에 두고 내가 아니라 다행이라는 안도감을 느꼈다. 사파리에서 사자가 먹다 남기고 간 영양 시체를 파먹는 하이에나를 보았다. 나이로비에는 중국인들이 지은 현대식 고층 건물이 우뚝우뚝 서있었지만, 여기가 아스팔트 길 위인지 그때 그 흙먼지길 위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나이로비 환승을 위해 두바이에 내렸을 때, 나는 이곳이 내 세계관에 없던 곳이라는 걸 깨달았다. 전체 인구의 18%, 지표면의 20%를 차지하는 아프리카 대륙과, 지구인의 5%, 지표면의 6%를 구성하는 중동 전체가 나에겐 없는 곳이었다. 이곳에 대해 내가 아는 것은 히잡에 가려진 여성 인권뿐이었다. 하지만 막상 와보니 여자도 남자도 모두 팔다리를 가리고 머리에 천을 두르고 있었다. 종교 의상을 입은 사람들 사이에서 댕강 잘린 옷을 입고 썬크림칠갑을 한 나는 스타크래프트 게임맵에 똑떨어진 슈퍼마리오 같았다.
두바이는 아침 10시부터 40도씨를 찍었고, 에어컨 온실을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타 죽을 것 같았다. 호텔과 대형몰에만 머물다 가려니 어느 나라 대도시나 비슷하게 지루하단 생각이 들었다.
나이로비 공항에서 내리자마자 눈에 보인 건 빈부격차였다. 공항에서부터 나이로비 시내를 쭉 가로지르는 고가도로가 놓여있었고, 그 아래에는 타이어 디딜 틈 없이 꽉 막힌 도로가 있었다. 고철 무게로만 값을 쳐줄 수 있을 것 같은 낡은 고물차들이 빽빽하게 모자이크를 만들고 있었다. 통행료가 3천 원쯤, 나이로비의 절대다수가 산다는 '동쪽 나라(Eastlands)'의 한 달 월세가 3만 원쯤 한다고 하니 어지간히 헤프지 않고서야 다들 모자이크판을 향해 몸을 던질 것이다. 돈 많은 백인인 나는 고가도로를 탔다.
나이로비에서 맘 편히 걸어 다닐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은 대형몰이었다. 그리고 몰에 가면 '미국 흑인'들이 보였다. 미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미국 흑인들은 길 위의 흑인(혹은 그냥 사람)들과는 때깔이 달랐다. 평생을 노랑만 보며 살아온 내게 검정은 낯선 색이었다. 검정에도 50가지 그림자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액정 너머로도 볼 일 없는 진한 검정의 피부색, 흰색이 섞이지 않은 컬러칩들이 사는 곳, 내가 그곳에 있었다. 그리고 여기서 나는 백인(Oyinbo)이었다.
내가 백인이라니! 가문의 영광을 기뻐할 새도 없이, 이 피부색이 내게 위협이 된다는 걸 깨달았다. 길 위의 유일한 백인. 다른 백인들은 요새화된 미국식 몰에서만 만날 수 있었다. 미드 세상으로 입장하기 전, 기관소총을 맨 사람들이 짐 검사를 해줄 때마다 얼마나 안심이 되었던가. 하루 종일 철조망이 둘러진 곳에서 또 다른 철조망 공간으로 우버를 타고 이동했다. 이런저런 이유로(온수!!!) 더 비싼 에어비앤비로 옮길수록 담장은 더 높아졌다. 노마딩인지 유배생활인지 알 수 없었다.
나의 피부색과 단정한 옷차림(내가 단정하다니!)은 내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목청이 터져라 외치고 있었다. 나는 쉬운 먹잇감이다! 해태보다 희귀한 컬러칩의 그들은 뽀시랍다못해 바스락거리는 나를 속이는 데 거리낌이 없었다. 피라냐들의 수조에 잠겨 내 살점(돈)이 뜯겨나가는 걸 지켜봤다. 물끄러미 바라보다 한 번은 화가 나서 대거리를 했다. 경찰까지 불렀는데 당연하게도 경찰은 현지인 편이었다. 이 도시를 떠나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나이로비에서 두 번째로 눈에 보인 것은 가난이었다. 지금까지 내가 알고 있던 가난은 연출된 것이었을까? 혹은 지금 내 눈앞에 펼쳐진 이 초현실적인 가난이야말로 어떤 변태 감독이 구현해 낸 가난의 이데아일까? 잃을 것 없는 저 눈빛, 저 남루함은 어떻게 분장한 걸까? 해가 뜰 때부터 해가 질 때까지, 사파리의 동물처럼 어떻게 저렇게 어슬렁거리기만 할 수 있는 걸까? 도로에 멀건히 서있기만 할 수 있는 걸까?
'서쪽 나라'에 있는 미국식 몰에 가는 길, 이스라엘 대사관을 지났다. 깎아지는 절벽 위 천해의 요새, 끝없이 솟은 담장 위에 전기 울타리까지 쳐져있었다. 각자도생이구나. 나는 생존을 위해 살아본 적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입시정글, 취업전쟁, 승진구도, 사활(死活)을 건 헬조선의 경쟁은 뽀시라웠다. 다시 볼 일 없는 백인인 나를 등쳐먹고 가족들의 저녁 밥상에 반찬 하나 더 올리는 게 훨씬 합리적이지 않은가? 희귀한 컬러칩으로 태어나 산다는 건 어떤 걸까? 답을 찾지 못한 채 전기울타리 안에서 짐을 싸 우버를 타고 부자도로를 달려 공항으로 달려갔다.
글쓴이의 제한된 경험과 무한한 편견에서 나온 짧은 생각입니다. 직접 알아가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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