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Q3 노마딩 시즌3 아프리카 회고 - 케냐, 이집트, 남아공
풍류(風流)
속되지 않고 운치가 있는 일. 또는, 자연을 즐기어 시나 노래를 읊조리며 풍치 있고 멋스럽게 노는 일
나는 조선시대에 태어나고 싶다. 풍류가 멸종되기 이전의 시대. 세습 계급과 성별 계급의 존재가 부정당하지 않던 시대. 자본이 '멋짐'을 말살하기 이전의 시대로 돌아가 온갖 특권을 거머쥐고, 음주가무(飮酒歌舞), 배 띄우고 기생 끼고 벚꽃의 스러짐과 푸른 솔의 한결같음을 노래하고 싶다.
지역을 골라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어디에서 살고 싶은가?
모른다. 일평생 생각해 본 적 없는 질문이었다. 노마드들은 아마도 이 질문을 생각하며 산다. 작년에 그들을 처음 만나 충격에 빠진 후, 나도 내 답을 찾기 시작한 지 1년이 지났다. 아직 찾는 중이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아프리카에 살고 싶진 않다.
사람들은 내게 왜 아프리카냐고 물었다. 동남아나 북미에 간다고 했을 땐 아무도 이유를 묻지 않았다. 그땐 '동남아 어디?'라고 물었다. 왜 아프리카는 '왜?'라는 질문을 받는지, 대륙 단위에서 더 쪼개지지 않는지, 이 두 가지가 궁금했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아프리카에 가지 않아도 찾을 수 있다.
직업? 배우자? 자식을 몇 명 낳을지? 오늘 저녁 메뉴? 다음 여행지? 국적?
몇 세기 전만 해도 이런 것들은 개인이 선택하는 게 아니었다. 그땐 지금처럼 정체성 위기나 오춘기를 겪을 필요도 없었다. 마지막 질문은 여전히 내가 답하지 못한다.
이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이 정해진 인생도 있다. 내 삶의 대부분을 보낸 한국은 잘 사는 나라다. 내 주변에는 없다. 그런 인생은 중세 시대에나 사는 건 줄 알았다. 초연결의 시대라고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내가 인지하는 시공간은 양팔 간격 좌우로 나란히 에 라테는 정도다. 다양한 색감의 인생을 보겠다는 욕심에 공간이나마 부지런히 바꿔주고 있다.
공기, 물, 칼로리.
그럴 리가! 사람은 빵만으로 살 수 없다. 하지만 빵이 없는 사람은 그런 말을 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없이 살 수 없는 건 무엇일까?
공기, 물, 칼로리와 더불어 위대한 음악가 존 레넌은 종교와 국가, 사유재산이 없는 세상을 상상해 보라고 말한다. 마지막 순간까지 놓을 수 없는 건 셋 중 어느 것인가? 어떤 순서로 버릴 수 있는가?
국가는 허상인가? 사회적 관념(social construct)인가?
하지만 국경을 넘으면 달라지는 게 너무나 많다. 이집트 다합에서 수도꼭지를 돌리면 바닷물이 나온다. 필터링한 거라는데 짜서 양치를 할 수가 없다. 돈을 더 내고 단물(sweet water, 달지도 짜지도 않다)을 사서 쓴다. 하루 걸러 하루 단수라 페트병마다 물을 그득그득 담아 쟁여둔다.
나이로비 슬럼가에는 하수가 상수도에 흐른다. 시궁창이 개울물처럼 마을 길을 따라 졸졸 흐른다. 그 옆을 따라 뛰는 어린이들의 표정이 해맑다. 케냐 출산율 3.4다. 한국은 0.7
남아공은 아프리카의 잘 사는 나라다. 해변에는 산책로가, 산에는 등산로가 닦여 있다. 자연은 공공재이며, 이를 관리하는 정부가 있다. 하지만 정전만큼은 피해 갈 수 없다. 차이가 있다면 '시작과 끝을 미리 알 수 있는 정전(Load Shedding)'이라는 점? 나이지리아에서 부의 상징이 발전기라면 남아공에서는 보조배터리 정도로 만족할 수 있다.
공공재의 생산 및 유지관리만 해결하면 국가 없이도 살 수 있을까?
아프리카 대륙의 지도에서는 진한 제국주의의 향기가 느껴진다. 지도 위에 자 대고 줄 그은 흰 피부의 사람들과 그 지도가 내려다보는 땅에 사는 검은 피부 사람들 사이의 거리는 얼마큼일까? 바닷속 가재와 산 위 개코원숭이쯤 될까?
한중일의 거리는 얼마큼일까? 너무나 멀 것 같지만 이집트 사람들을 절대로 우릴 구분하지 못한다. 물론 나도 이집트 요르단 리비아 사람들을 구분하지 못한다. 한중일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젓가락을 쓴다?
지구 위 11억 명의 사람들이 신분(IDentification) 없이 살고 있다. 그중 5억 명이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 있다. 그들은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을 어떻게 얻을까? 국가는 허상이며 진짜는 살을 맞대는 가족과 친구가 아닐까?
국가라는 것을 처음부터 다시 만들면 어떤 모습일까? 스타트업처럼 '허슬'하며 다른 국가들과 경쟁해서 국민의 선택을 받아야 한다면 말이다.
나이지리아의 한 스타트업은 종교와 국가의 모습을 하고 있다.
연도별 1인당 국민소득 차트에서 가장 눈에 띄는 국가는 어디인가? 들끓는 애국심에 대한민국밖에 안 보인다.
참고로 위의 국가들은 내가 고른 게 아니다. Our World in Data라는 사이트가 준 디폴트 값이다. 디폴트는 잘 먹고 잘 사는 나라들이다. (+떠오르는 태양 2개) 그 나라들 중에 제국주의자가 아니었던 나라는 대한민국뿐이다.
우리는 어떻게 남 등쳐먹지 않고 제국주의자 반열에 오르게 되었나?
국뽕이 차오른다.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맹세(라테는 국기에 대한 경례 아니고 맹세였다) 한번 하고 와야겠다.
1인당 국민소득을 시간이 아니라 공간으로 펼치면 이렇게 된다. 우리는 우리의 유한함을 종종 잊는다. 내가 특정한 시기에 특정한 곳에(right place at the right time) 있었던 덕분에, '운'이 성취한 것들에 대한 인정이 박하다.
반대로 운 없는 사람들이 맨손으로 일궈낸 것들에 대한 인정도 박하다. 케냐에서 만난 사람들은 모두 스타트업에서 최고로 치는 능력을 기본 200% 탑재하고 있다. 그들은 세계 최고의 허슬러(Hustler - 문제해결사)들이다. 제약 조건(constraint)이 켜켜이 쌓인 만큼 해결 방법도 기발하다. '안되면 되게 하라'와 '이봐, 해봤어?'로 요약되는 한국의 기업가정신은 전쟁의 흔적을 찾을 수 없는 이곳을 떠나 아프리카의 흙바닥에서 숨 쉬고 있다.
한국은 왜 미래세대에 희망을 걸지 않고 자기 손으로 자기 삶을 끝내는가?
브런치 이미지 병렬배치 안 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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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p of ethnicity in Africa - Harvard Research, vox 재인용
1인당 GDP - Our World in Dat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