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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baD May 09. 2023

노마딩의 기쁨과 슬픔

D+202, 노마딩 6개월 차 회고 | 멕시코> 도쿄> [서울] >??

22년 4분기 동남아, 23년 1분기 북미 떠돌이 생활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왔다. 아래의 내용들로 회고를 대신해본다.

1. 2023 원격 근무&노마딩 설문 조사 결과 리포트

2. 노마딩 시즌 오프를 하는 이유(2023 Q2)

    2-1) 고용되지 않고 일하는 삶과 루틴의 중요성

    2-2) 노마딩 하며 루틴 사수하기 빡시다!

3. 당분간 한국에서 하고 싶은 일



1. 2023 원격 근무&디지털 노마드 현황

1. Buffer

는 디지털 소상공인(small business)들이 온라인 인지도를 높일 수 있도록 도와주는 SNS 관리 툴이다. Buffer는 2018년부터 해마다 원격 근무 현황에 대한 설문 조사 결과를 발표한다. 2023년도 리포트를 보면,

원격 근무의 좋은 점 3가지

시간을 유연하게 쓸 수 있다

통근을 안 하니 내 시간이 더 많아진다

사는 곳과 일하는 장소를 편하게 고를 수 있다


원격 근무 안 좋은 점 3가지

집안에만 처박혀있다

원격 근무 문제없는데?

외롭다


2023 리포트를 보고 가장 놀랐던 점은 원격 근무자의 대부분(82%)이 집에서 일한다는 거였다. 나처럼 코워킹 공간(5%)이나 카페(2%)에서 일하는 사람은 얼마 안 됐다. 또 다른 놀라운 점은, 2023년에는 원격 근무의 단점으로 집안에만 있다, 외롭다, 퇴근이 없으니 노트북을 덮지를 못한다 등이 뽑혔지만, 2020년에는 협업과 소통(collaboration and communication)의 어려움과 외롭다, 노트북을 덮지 못한다가 뽑혔었다는 것이다. 3년 정도면 온라인 협업과 소통에 익숙해지는 걸까? 외로움과 '찐퇴근' 문제도 시간이 해결해 줄까?


2. 노마드 리스트

는 전 세계 노마딩 하기 좋은 도시 리스트와 그에 대한 정보 창고이자 세계 최대 노마드 커뮤니티다. 그들의 2023 디지털 노마딩 현황 리포트 에 응답한 사람들도 대부분(61%) 집에서 일했다! (응답자의 대부분이 백인 30대 남성이라는 점도 재밌다. 그들은 '여행한 도시' 질문을 제외하면 '어떤 관계를 찾나요' 라는 질문에 가장 많이 응답했다)

여기서 나의 노마딩 슬픔이 생겨난다. 길어야 한달 살 집을 재택 공간으로 꾸미기는 아까운데, 나에게 최적화된 공간이 없으면 업무 루틴을 내게 최적화하기도 어려워진다.


노마드리스트 홈페이지 캡처



2. 노마딩의 슬픔 - 루틴 편

지금까지 글에서 노마딩의 기쁨만을 얘기했다. 동남아에서는 '한국에 돌아갈 이유가 없다'라고 생각했고, 미국에서는 '한국에 돌아가고 싶지 않다'라고 생각했다. 잠깐씩 머물렀던 멕시코와 일본에서는 그 음식과 술과 음악에 취해 정착할 마음까지 싹텄다.

하지만 오늘은 내가 노마딩을 잠시 쉬어가는 이유에 대해 쓰려고 한다. 내가 자유창기병(프리랜서, freelancer)으로서 목숨처럼 사수해야 할 루틴이 내가 이동할 때마다 박살 났기 때문이다. 지난달, 미국->일본으로 태평양을 건너 16시간의 시차를 거슬러오르니 내 루틴이 산산조각 났다.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왔더니 깨진 루틴 조각 한 장 남아있지 않았다.


노마딩을 결심하기 이전에 탈(脫) 고용 결심이 있었다. '주체적인'이라는 말은 톱니바퀴를 꾸며줄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 '쇼생크 탈출'처럼, 스포 주의 평생을 감옥에 살았던 사람은 바깥세상의 자유가 무겁고 고달프다. 나 또한 매일매일 내 의지의 박약함에 부딪히며 재입소를 꿈꿨다. 

자유창기병에게 루틴은 생존이다. 인간의 의지는 유한하기 때문에, 내 작고 귀여운 의지를 지켜주기 위해서는 루틴이 내 잡념과 거리낌을 막아줘야 한다. 내게 맞는 루틴을 찾고 만들어나가는 과정은 오르막길이지만, 습관이 형성된 이후부터는 산책하듯 걷는 내리막길이다.

초보 자유창기병에게 노마딩과 루틴은 시지프스 신화였다. 한 달 정도 끙끙대며 루틴 바위를 산 정상에 올려놓으면 다음 여행지로 떠날 시간이 된다. 비행기를 타고 시공간 여행(환승을 많이 하면 이틀 만에 세 번의 일출을 볼 수 있다)을 하고 나면 대개 골짜기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바위와 나를 만날 수 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이다.

<아주 작은 습관의 힘>은 하루 1%의 변화에 대해 말한다. 그 1%의 방향성에 따라 일 년 후에 +3,700%가 될 수도, 0에 수렴하는 아주 작은 숫자가 될 수도 있다. 365번의 +1 은 어렵지만, 30번의 +1 이후에는 수월하다.

책의 후반부에는 '정체성 변화(identity change)'에 대해서도 얘기한다. 내가 매일 책을 읽는다면 나는 책 읽는 사람이다. 매일 한 끼 샐러드를 먹는다면 나는 건강하게 먹는 사람이다. 내 돈벌이나 주변의 기대에 상관없이 나는 스스로를 그렇게 인지할 것이다. 

운동하는 습관과 글 쓰는 습관을 들여 내가 나를 작가로 어렴풋이 인지하게 되면 그때 다시 여행을 시작하려고 한다. 


멕시코 유카탄 반도와 청량함


3. 리서치하고 글 쓰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팀 어번은 테드 강연 최다 조회수를 자랑하는 블로거다. 그의 '잠깐, 근데 왜?(Wait But Why)' 블로그 보고 '나도 이 사람처럼 살고 싶다'라고 생각했다. 그 꿈은 잊고 반짝이는 걸 쫓아다니던 2023년의 어느 날, 컨퍼런스를 돌다 네트워킹에 지친 내향형 인간은 '사람들이 내 얘기를 들으러 찾아와주면 이 고생 안해도 될텐데'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인터넷에 내 청중을 모으기로 했다.

읽는 것과 쓰는 것은 콩나물시루 구조로 이어져있다. 엄청난 양을 읽어야 한 줌 쓸 거리가 삐죽 고개를 드는 것이다.

아무튼 비고용노동과 노마딩과 블로거 변신이라는 세 개의 도전을 한꺼번에 할 여력이 없어, 읽고 쓰는 루틴이 단단해질 때까지 한 곳에 정착하는 시간을 가져보려고 한다. 내 호기심과 기분 좋음의 원천인 '땀흘리는 운동 시간'도 내 일상에 하드코딩이 필요하다.

잡설이 길었는데, 사실 애인이 연간 롱디 가능 일수 제한을 걸어서 한동안 노마딩을 쉬게 됐다.


일본 모로역 근처 주택가 골목, 너저분한 질서가 있다. 그늘에 숨어 낮잠자는 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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