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Q4 <동남아편> 시즌1 종료, 23Q1 <북미편> 시즌2 시작
한국을 떠나 돌아다니며 원격으로 일하는 삶 4개월 차다. 그 만으로 나를 디지털 노마드라고 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누군가 '주변에 참고할만한 디지털 노마드가 없다'는 아쉬움을 전해서, 내 얘기라도 공유해보고자 한다. 일평생 노마드로 살아온 것처럼 말하겠지만 찰나의 경험담에 불과하다는 걸 미리 밝힌다.
디지털 노마드는 내 오랜 로망이었다
나는 30년 넘게 한국에 살아온 30대 초반 한국인이다. 가족도 여권도 졸업장도 모두 메이드 인 코리아다. 교환학생이나 어학연수 등으로 한국 밖에서 살았던 경험은 있지만 내게 친숙한 언어와 문화는 전부 한반도 안에 있다. 사실 수도권 토박이라 서울공화국 밖의 일도 잘 모른다.
두려움이 없는 것도 아닌데 '디지털 노마드'라는 말은 왠지 항상 설렜다. 삶을 여행하듯 살고 싶었다.
하지만 내 얘기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그런 건 앞서 나가는, 특별한 사람들이 하는 거니까. 원격 근무 하기에 개발자가 좋다길래 코딩도 잠깐 배워봤는데 나와 영 맞지 않았다.
그러다 양양에서 한 서핑쌤을 만났다. 주중에는 서울에서 일하고, 주말에는 양양에서 서핑 강사로 일하는 사람이었다. 그 이중생활에 홀딱 반해 '언젠가는 나도 그렇게 살고 싶다'라고 말했더니 '지금부터 그렇게 살 수 있다'라고 말씀하셨다. 미룬다고 달라지는 건 없다. 모두가 알고 있지만, 아무도 이를 소리 내어 말하지 않는다. 그는 너무 대놓고 말했다. 야, 너두!
몇 달 뒤 퇴사한 김에 양양 한달살기를 해봤다. 수도권을 떠난다는 건 당시로선 엄청난 결심이었다. 근데 좋았다.
한국을 떠나기로 결심하는 데에는 큰 충격이 필요했다
작년 7월, 코로나가 잦아들고 오랜만에 해외로 나갔다. 업계 컨퍼런스에서 각국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학교에서 배운 대로 '웨얼 알유 프롬?'이라고 물어봤다.
제대로 대답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자기는 집이 따로 없고 돌아다니며 사는데, 자기 캐리어가 지금 여기 있기 때문에 자기는 지금 여기에 사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그놈의 캐리어 타령을 하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 태어난 곳에서 쭉 사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아니. 나는 한국에서 태어났으니까 계속 한국에 살았지. 다들 이렇게 사는 거 아니야? 내가 정상이고 너네가 이상한 거야! 내가 익숙한 것들과 너무 거리가 멀어 뒷목 잡고 쓰러질 만큼 거부감이 솟구쳤다.
한국에 돌아와서 곰곰이 생각해 봤다.
앞으로도 내가 익숙한 방식대로 살고 싶은지, 아니면 몸서리치게 낯선 그들의 방식대로 살고 싶은지. 한 가지 확실한 건, 죽기 전에 해보고 싶은데 더 나이 들면 못할 것 같았다. 그래서 우선 치앙마이행 비행기표부터 끊었다.
집도 차도 안정적인 직장도 없다는 게 노마딩을 시작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그래서인지 부모님은 나의 여정을 탐탁지 않게 생각하셨다. 한국 사회에서 도태되어 떠난다고 생각하신 것 같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게임의 룰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그 룰을 바꾸려고 노력할 수도 있고, 마음에 드는 룰을 가진 게임판을 찾아 떠날 수도 있다. 마침 9월에 친구들과 함께 살던 집 계약이 끝났고, 10월에 '무기한 여행'을 시작했다.
(이미지 출처: 퓨 리서치. 인생의 의미가 어디서 오냐고 물었을 때 한국인과 일본인의 과반 이상이 단 한 가지원천(source)만 대답했다. 다른 나라에서는 약 2/3이 여러 가지 원천을 얘기함)
치앙마이는 아무 준비 없이 떠난 초보 노마드를 두 팔 벌려 환영해 줬다
그곳은 매주 금요일 디지털 노마드 저녁 모임이 열린다. 그 외에도 맛집 탐방 팟, 여성 창업가 팟, 업계(온라인 마케팅이 가장 커 보였다) 별 모임 등 다양한 커뮤니티가 있다.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다양한 사람들이 오고 가기 때문인지 뚜렷한 파벌이나 정치질도 보이지 않았다(물론 '인싸 그룹'은 어디에나 있다). 떠나왔다는 흔치 않은 선택을 공유하기 때문인지 '모국을 떠난 사람들(expat, 엑스팟)' 끼리는 스스럼없이 친해질 수 있었다.
새로운 우선순위에 대하여
어린왕자에 나오는 '어른들의 숫자 놀이'는 만국공통일 거다. 하지만 노마드들은 조금 다른 놀이를 한다. 그들이 둥그렇게 모여 앉아 얘기하는 멋진 삶, 동경하는 삶은 얼마나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얼마나 외딴 마을, 얼마나 드문 경험을 했는 지다. 주어진 삶의 가능성을 얼마나 멀리까지 쫓아왔는지(living the life to the fullest)를 자랑한다.
한 8년 차 노마드는 '어떻게 하면 일하는 시간을 줄일 수 있을까'가 고민이라고 했다. 낯선 고민이었다. 얼핏 들으면 띵가띵가 베짱이 같지만, 코워킹 스페이스에서 그녀는 '일할 때 말 걸면 안 되는 사람'으로 유명하다. 그만큼 매섭게 집중한다.
노마드의 삶에는 매일 새로운 자극이 넘쳐난다. 파랑새를 쫓아다니려면 시간이 부족하다. 일하는 시간 대비 결과물을 최상으로 뽑아내고 얼른 노트북을 덮어야 한다. 나 또한 한때는 일에서 재미와 의미와 보람, 온갖 걸 찾는 사람이었다. 요즘에는 이렇게 생각한다. "와 이런, 세상에 재밌는 게 이렇게 많은데 일만 하다 죽을 뻔했네!"
헤어짐에 대하여
떠돌아다닌다는 건 그만큼 많은 작별인사를 해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70명이나 모여들었던 치앙마이 노마드 저녁 식사 자리에서 유난히 대화가 잘 통하는 친구 둘을 만났다. 출신 국가와 언어는 각기 달랐지만 같이 시간을 보낼수록 즐거웠다. 하지만 한동안 치앙마이에 머물 계획이었던 둘과 달리, 나는 어느새 마지막 날이었다.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하던 그 노란 불빛 골목을 또렷이 기억한다. 그들은 왼쪽으로, 나는 오른쪽으로 가야 했다. '이렇게 안녕인가?'라는 말에 '응! 우린 계속 여행할 거니까 다른 도시에서 또 만나자!' 라며 돌아섰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씩씩하게 걸었지만 발목을 접질리고 싶을 만큼 마음이 허전했다.
외로움에 대하여
헤어짐과 외로움은 정착하는 삶에도 필연적이다. 노마드의 것들은 좀 더 겉으로 드러나 있을 뿐이다. 하지만 혼자 있는 것과 정적을 좋아하는 나조차도 첫 주부터 '노마드 생활을 계속하고 싶으면 외로움을 헷징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노마드 커플이 적지 않았는데, 진심으로 부러웠다. 하지만 그들도 그들만의 고충이 있겠다는 걸, 그들이 꽤나 독립적으로 움직인다는 걸 보고 깨달았다.
어쩌면 길 위에서 만난 사람에게 스스럼없이 마음을 열 수 있는 이유는, 서로의 헤어짐과 외로움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루틴에 대하여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 나를 '디지털 노마드'라고 소개하진 않는다. 나는 온라인으로 일한다(I work online), 그래서 내가 원하는 아무 데서나 지낼 수 있다고 말한다. '캐리어가 있는 곳에 머무는 삶'도 그 만의 삶이지만 '시공간의 제약 없이 일하는 삶'도 그 만의 이야기가 시시콜콜이다.
우리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줄곧, 사회생활이라는 걸 하며 누군가 정해준 시간에 정해진 장소에서 정해진 행동을 했다. 그런데 예를 들어 프리랜서처럼 그 정해진 사회라는 걸 벗어나면 이 모든 걸 자기가 알아서 해야 한다.
아침에 눈을 뜨면 아무것도 정해진 게 없다. 자유로움도 하루이틀이지 무기력함에 속수무책으로 가라앉는다. 나 스스로의 의지로 침대에서 기어 나와서 옷도 갈아입고 밥도 챙겨 먹고 노트북도 열고 해야 한다. 이게 처음에는 정말 쉽지 않았다. 나는 '파트타임 고용'이라는 치트키를 써서 대충 해결했다.
루틴을 따르면 내 의지치를 줄일 수 있다. 집중이 잘 되는 시간(나의 경우 오전)에 집중이 잘 되는 조건들이 충족된 채로(요가&아침식사) 집중이 잘 되는 장소(물색해 둔 카페 몇 군데)에 가면 오늘치 할 일을 끝낼 확률이 높아진다. 일하는 시간을 확 줄일 수 있다.
다음 글에는 원격 근무 얘기를 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