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마딩 D+151 | 샤르가오 > 서울 > [몬타나] > 도쿄
미국에 오니 정신없이 바쁘다
격주로 쓰던 블로그도 두 달이나 걸렸다. 여기서 바쁘다는 건 한국에서 말하는 바쁨과는 다르다. 한국, 특히 한때 몸담았던 업계에서 '많이 바쁘시죠?'는 마치 '식사하셨어요?'와 같은 안부인사였다. 바쁨은 미덕이었다. 바쁘지 않으면 뭔가 잘못되었다는 불안감에 시달렸다. 일이 삶보다 커질 수 없건만, 삶은 일을 위해 존재했다. 일에 매몰되어 일 안에서 인생의 의미를 찾았다. 그게 될 리가 없건만. 고용되었으면 고용주의 꿈을 펼쳐라
여기서는 인생을 사느라 바쁘다
내 사전에 요리는 없었다. 미국 서북부의 한적한 시골마을로 오기 전까지는. 한국의 저렴이 인건비를 받으며 주 20시간만 일하는 K-베짱이는 미쿡에서 식사를 자급자족 해야 한다. 하지만 그런 현실적인 이유 말고도, 이 지역의 아우라라는 게 있다.
예를 들어 시아르가오는 도저히 쓰레빠 말고는 신고 다닐 수 없는 아우라가 있었다. 원래는 다들 맨발로 다녔단다. 하지만 작년 태풍에 야자수가 날아가며 그들이 길 위로 드리우던 그늘이 사라졌고, 길바닥이 뜨거워 도저히 맨발로 다니지 못하게 되면서 쓰레빠와 쪼리를 신기 시작했다고 한다.
해지고 나면 다들 집으로 돌아가 거리도 상점도 텅 비는 이곳,
사람보다 소가 더 많이 산다는 이곳, 고속도로 양옆으로 끝없이 목장(Ranch)이 펼쳐져있고, 동네 술집에 가면 진짜 카우보이들을 만날 수 있는데, 카우보이 모자와 부츠는 그들을 흉내 내려는 관광객들이 더 열심히 하고 다니는 이곳, 해가 길어지면 새소리에 눈을 뜨고 달이 길어지면 잠도 같이 길어지는 이곳, 가보고 싶은 카페가 오후 2시에 문을 닫아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이곳의 아우라는 나를 요리하게 한다.
이곳 호스트 부부의 삶의 방식에 동기화해서 살려고 노력한다
작고 귀여운 월세를 받는 그들의 호의 안에서만 내가 이곳 생활을 영위할 수 있기 때문도 있지만, 그들이 사는 세상이 내 세상과 너무 달라서 뭔가에 홀린 듯 따라 하게 된다. 치앙마이에서는 노마드들과, 시아르가오에서는 마닐라/세부 출신 필리핀 사람들(제주도 내려간 서울 사람들 느낌)과 가까이 지냈고, 여기서는 이곳 토박이인 내 부모님 뻘 부부의 눈을 통해 세상을 본다.
이들은 살아가는데 필요한 거의 모든 것들을 스스로 해결한다. 차가 고장 나면 직접 고친다. 화장실 배수관도 부엌 환기구도 당연히 직접, 하필 동네 친구가 목수라 1940년대에 지어진 이 집 리모델링도 친구랑 셋이 뚝딱뚝딱했단다. 전자제품에 대한 의존도가 낮은 대신 (한 이웃 주민이 '아 오븐 20년밖에 안 썼는데 망가졌어! 억울해!'라고 하는 걸 보고 말을 잇지 못했다. '진짜 카우보이'인 한 아저씨는 휴대폰이 귀찮게 날 찾는 게 싫어서 하루 종일 꺼둔단다. 말잇못) 물리 법칙을 이용하는 도구들을 손수 만들어 쓴다.
음식물 처리기와 착즙기
여기서는 음식물 쓰레기를 퇴비(compost)라고 부르는데, 뒷마당의 퇴비 처리기(드럼통 안에 퇴비를 넣고 옆에 달린 손잡이로 드럼통을 회전시키며 산소와 퇴비를 잘 섞어주면 된다)는 사용하기 불편하고 엉성하게 생겼지만 제 기능을 다한다. 날이 풀리면 잘 익은 퇴비를 텃밭에 묻어줄 것이다.
가을이면 사과를 잔뜩 사다가 사과 주스를 만든다. 대형 펌프와 분쇄기로 직접 만든 거대 착즙기로 순도 100% 주스를 만들어 일부는 얼려서 저장하고 일부는 애플 사이다를 만든다. 나는 사이다 제조 공정을 함께했는데, 맥주 제조용 효모 말고 다른 박테리아는 모두 죽여야 한다며 특수 파우더로 20L짜리 생수통과 고무관, 비중계 등을 여러 번 씻었다. 사과 주스도 애플 사이다도 맛있었다!
스탠다드 트랜스미션(스틱 - standard transmission) 차를 본 적이 없다고 하니
호스트 아저씨가 스틱 운전하는 방법을 가르쳐주겠다고 했다. 그는 차를 좋아한다. 95년 산 셰보레 픽업트럭을 500달러 주고 사서 직접 고쳐서 타고 다닌다. 신나서 폴짝 올라탔는데 문이 잘 안 닫혔다. 닫힌 줄 알았는데 끼익-하고 다시 열렸다. 무거운 문짝이 오래 매달려있다 보니 경첩이 휘어서 그렇단다. 핸들 앞에는 커다란 못이 박혀있었는데, 시동 장치가 고장 나서 자기가 대충 고쳐놨다고 했다. 페달은 너무 뻑뻑해 있는 힘껏 밟아야 했고 기어 핸들은 탈골된 것처럼 헐렁해서 지금 내가 몇 단인지 알 수 없었다. 불편한 점은 이루 말할 수 없지만, 결론적으로 차는 잘 굴러갔고 나는 스틱 운전의 고루함에 취해버렸다.
특히 '오프로드 족'은 아무도 없는 허허벌판 혹은 산길을 달리는다 차가 고장났을 때 자신이 가진 연장만으로 차를 수리할 수 있도록 오직 스틱 차량을 찾는다고 한다.
산 부족이 사는 세상
국유림과 국립공원 (옐로스톤, 티톤, 글레시어)에 둘러 쌓인 이 마을은 해발고도 약 1km로, 북한산 정상보다 높은 곳에 있다. 파도를 기다리는 물 부족 사람으로서 산의 아름다움이나 산 부족의 삶의 방식에 대해 아는 건 거의 없었다. 함께 지내보니 닮은 점들이 보인다. 이들은 눈을 기다린다. 하늘이 내린 눈송이 파우더! 아무도 손대지 않은 눈밭을 찾아 스키를 메고 산을 오른다.
서핑하기 전에는 스노보드를 탔었다
어느 순간부터 보드가 시시해졌다. 기계의 힘을 빌려 리프트를 타고 올라가 매번 똑같은 슬로프를 타고 내려오는 게 재미없었다. 자연에서 불어오는 평안함과 자유로움도 없었다.
산 부족의 스키는 달랐다. 그들은 스키장에서만 스키를 타지 않는다. 눈 덮인 등산길에서 산책하듯 크로스컨트리 스키를 탄다. 차를 산등성이에 주차하고 스키로 내려오거나 아예 장비를 들쳐 매고 산을 올라 스키로 내려오는 백컨트리 스키도 있다. 스키장에도 슬로프 주변에 울타리가 없기 때문에 어느 산비탈이고 마음껏 타고 내려올 수 있다. 자신 있다면 나무 사이사이를 헤집고 내려갈 수도 있다. 너의 안전과 너의 재미는 네가 알아서! 심지어 리프트에 안전바도 없다.
눈이 무릎 높이까지 내린 다음 날 산 부족 사람과 같이 스키를 타러 갔는데, 그가 제설하지 않은 곳만 골라 타는 것을 보고 따라 해 봤다. 거대한 생크림 더미를 발로 휘적이며 미끄러져 내려오는 기분이었다. 이것이 산 부족의 재미!
참고로 호스트 부부는 60년대부터 스키를 탄 '스키 이즈 마이 라이프' 사람들인데, REI라는 아웃도어 용품 제조/판매 협동조합에서 운영하는 눈사태(avalanche) 교육 시간에 서로를 만났다고 한다. 산 부족의 로맨스!
아무튼 이곳에 와서 내 삶을 사느라 바쁘다
혹시 이런 게 행복일까? 그동안 잊고 살았던 것들을 깨어나게, 그래서 날 멍하게 하는 순간들이 삶 사이사이 촘촘다리 끼워진다. 오븐에서 막 꺼낸 견과류&초콜릿 칩 쿠키가 내 손에 쥐어진다. 미드에서 본 것처럼 우유에 퐁 담근다. 입 안에서 보스라진다.
하루하루를 흘려보내는, 살아 보내는 것에 조바심 내지 않으면 이렇게 멋지게 늙을 수 있는 걸까? 일흔을 바라보는 호스트 부부를 보며 생각한다. 내가 원하는 건 뭘까? FOMO(Fear Of Missing Out), 불안함은 내 업계 사람들의 DNA 다. 하지만 이 산골 마을에서 나의 일상은 한결같이, 4시쯤 장을 봐서 5시부터 요리를 시작하고, 한바탕 왁자지껄 맛있게 저녁을 먹고, 뒷정리 후에 해질녘 산책을 다녀온다. 그럼 밤 8-9시가 되고 각자 방으로 돌아가 책을 보거나 낮에 못다 한 일을 한다.
집안일은 멋지지 않다고 생각했다. 매일 반복되는 지루한, 대체 가능한 노동. 집 밖에서 일어나는 휘황찬란한 일들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브라우니 같은 거 별로 좋아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호스트 부부는 서로 자기가 만든 브라우니가 더 맛있다며 손수 만든 디저트를 선보였고, 나는 갓 구운 브라우니를 처음 먹어봤다. 누군가 날 위해 만들어준 브라우니 맛을 알기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자급자족 1단계 먹고사니즘, 진작에 익혔어야 할 것들을 서른이 넘어 해보니 열 살 아이처럼 신난다.
면책 조항) 몬타나 주는 한반도보다 크다. 나의 특수한 경험은 이 작은 마을을 벗어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미국 대도시의 삶은 한국 대도시의 삶과 더 비슷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