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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baD Oct 23. 2022

치앙마이에서 맞은 첫 주말!

노마딩 5일차 소회 || 한국 > 치앙마이

이렇게 모든 게 새로운 시기도 금방 저물어버릴 것 같아, 지낸 지 며칠 되지 않았지만 일단 적는다.




22년 10월 19일 수요일 밤에 치앙마이 공항에 도착했다.

그리고 새벽 4시쯤 규모 4.1의 지진이 났다. 건물 무너지는 줄 알고 벌떡 일어났다가 안 무너지길래 다시 잤다.


노마딩 첫날: 너무 좋은데? 다들 온라인으로 일하고 여기 살면 안 되나? 왜 다들 아등바등 서울에 살려고 하는 거지?

부스럭거리며 잠에서 깨서 근처 식당에서 아침을 먹으니 70 BAHT, 약 2800원이 나왔다. 콜라까지 메뉴 3개를 시켰는데 아마 콜라가 제일 비쌌던 거 같다. 치앙마이 디지털 노마드 페이스북 그룹에 가입하니 마침 같이 점심 먹을 사람을 찾는 글이 있었다. 마치 손 내밀어준 친구를 찾은 전학생처럼 들떠 한달음에 샐러드 가게로 향했다. 그들은 리투아니아에서 온 커플이었다. 

서로 리투아니아와 한국 얘기를 했다. 물고기가 자기가 사는 물에 대해 잘 모르다가 어느 날 다른 물에 가서 다른 물에서 살다온 물고기를 만나니, 나의 고향 물이 여기보다 좀 짭조름했던 것 같기도 하고? 새로운 시각을 가지게 되어 좋았다. 한참 수다를 떨다가 그들과 함께 장기 숙소를 알아보러 다녔는데 가는 곳마다 빈방이 없었다. 태국의 날씨, 물가, 친절함을 차익거래(arbitrage) 하러 온 북반구 1, 2등 시민들이 넘쳐났다.


출국 전에 만났던 친구들이 나에게 혹시 코인 대박 났는지 물어봤었다.

백수 주제에 갑자기 태국으로 떠난다니 이상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경제적 자유를 이룬다면 티가 날 것이니 걱정 말라고 얘기해줬다. 나는 테슬라 모델 3을 살 거다.

리투아니아 친구들의 밥벌이 얘기를 듣고 있자니, 무슨 소린지 도통 모르겠고 그냥 이 사람이 물려받은 유산이 있나 싶었다. 내 친구들도 이런 생각이었을까? 이 세상에는 참 내가 모르는 다양한 생계유지 방법이 있다. 자산가가 아니어도, 야너두 이나라 저나라 돌아다니며 살 수 있어! 다들 대책 있는 욜로족인걸까?


노마딩 이튿날: 치앙마이는 태국 도시가 아니라 노마드들을 위한 도시구나. 다른 도시로 가볼까? 이렇게 성큼성큼 떠나는 게 노마딩인가봐!

마침 노마드 저녁 식사 모임이 있어 치앙마이의 '외국인 동네'로 갔다. 대형 쇼핑몰과 '잘 사는 나라 스타일'의 술집, 식당, 가게들이 모여있는 곳이었다. 길을 걷는 사람 반 이상이 백인이었다. 나와 같은 테이블에는 인도, 영국, 몰타, 이탈리아, 미국, 독일, 심지어 한국에서 온 사람들이 있었다. (우리는 서로를 보고 서로 놀랐다. 어머 한국인이세요?!) 총 30명 정도가 모임에 나왔다. 세상에 이렇게 글로벌한 도시가 있었나?

Expat(Expatriate의 줄임말, '엑스팟') 이란 단어도 배웠다. '노마드'가 유목민이라면 엑스팟은 자신이 살아온 나라를 떠난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인도 친구랑 영국 친구가 이민자랑 엑스팟 차이가 뭐냐며 이야기하길래 구글에 검색해봤는데 "대개 교육받은 전문직 잘 사는 사람들을 엑스팟이라고 하지 (하지만 실상은.. 이라고 이어지는 기사였는데 뒤는 안 읽었다)"라는 BBC 기사와 "왜 백인은 Expat 이고 나머지는 이민자(Immigrant)냐" 라는 제목의 가디언 기사가 나왔다.

관계라는 게 많은 부분 태어나면 결정된다. 일평생 생활 반경이 짧을수록 그럴 것이다 (중세 시대에는 평균 10마일이라던가?) 그런데 여기 모인 사람들은 자신이 떠나왔다는 이유로, 그 흔치 않은 선택을 빌미로 스스럼없이 섞여들었다. 얼핏 봐서 그런 거겠지만, 내가 먼저 다가갈 용기만 있다면 새로운 친구를 만들기 좋은 환경인 것 같았다.

그 다음 날에는 Yellow 라는 코워킹 스튜디오에 가봤다. 마침 그날 저녁에도 네트워킹 저녁 식사 자리가 있었다. 옆에 앉은 커플은 베테랑 노마드의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 자기들은 멕시코에 베이스가 있다길래, 여권이 멕시칸이냐고 물었더니 아니라며, 자기 여권은 호주고 남자의 여권은 이탈리아인데, 우리들의 거주증이 멕시코 거라고 했다. 노마드 국적(호주)/거주(멕시코)/생활(태국)의 다른 층위(layer)에 대해 배웠다. 마침 디지털 정체성(Digital Identity)에 대한 글을 쓰고 있었는데, 메타버스 여권은 어떤 걸까 상상해보게 됐다.

곧 그린란드로 떠날 덴마크 사람과, 동남아중에 치앙마이가 제일 좋다며 아예 여기 눌러앉은 파리에서 온 커플들과 얘기를 하다 보니 치앙마이는 태국 도시가 아니라 엑스팟의, 엑스팟을 위한 도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는 태국인으로 사는 것보다 외국인으로 사는 게 더 편할 것 같다. 좀 더 '태국 도시'를 보고 싶어 치앙 라이로 가는 버스표를 끊었다.

혹시 나처럼 노마딩이 처음인 사람이 있다면 치앙마이를 추천한다. 노마드 커뮤니티가 잘 구성돼있다.


노마딩 셋째 날: 시공간의 제약에서 자유롭고 싶다면 그에 따르는 비용을 치러야 한다. 내가 스스로 내 규칙을 만들고 내게 강제해야 한다.

아침에 눈을 떴는데 할 일이 없었다. 그건 때로 아득하다. 침대에 대자로 누워있는데 순간 무기력감이 바위처럼 나를 꽉 짓눌렀다. 내가 백수 여서, 혹은 노예로 살던 습관이 남아있어서겠지만, 부자유 속의 자유가 가장 달콤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절대적인 자유를 원하기 때문에, 그 무게를 견디기 위한 체력 단련이 필요하다. 

내가 만든 규칙은

아침에 일어나 10분 동안 글쓰기. 그리고 요가 20분, 명상 5분 후 샤워하기

포모도로 시계와 함께 짧고 굵게 일하기

자기 전에 오늘 하루에 대해 10분 글쓰기. 킨들 30분 읽기

다른 누군가가 내 삶에 이래라저래라 하는 게 싫다면 내가 스스로 이래라저래라 하는 수밖에 없다.

프리랜서랄까 노마드랄까, 적절한 수식어가 없는, 하지만 이런 삶의 방식을 이전부터 살아온 것으로 보이는 조승연씨의 조언은 '일조량과 운동량'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문밖에 나가 햇볕 아래 잠시 서있었는데 광합성이 되는 것 같기도 했다.


노마딩 넷째 날(오늘): 태국 음식 맛있다

나는 식탐이 아니라 식욕이 없는 사람이다. 회사를 그만뒀을 때도 가장 힘들었던 게 아침에 일어나는 것과 밥 챙겨 먹는 거였다. 담배 휴식을 위해 담배를 피우듯이, 점심 휴식을 위해 점심을 먹었다. 그래서 점심 휴식이 사라지고 나니 밥을 먹을 이유가 없어져서 끼니를 거르기 일수였다.

치앙마이에서는 하루 세 번 밥을 먹는다. 다음 식사가 기대된다. 아, 이게 식탐이라는 건가!

멸치클럽 인스타에 맛있는 음식만 포스팅하고 있는데, 매 끼니 도배 중이라 자제가 필요하다.


이제 그만 이 글을 발행하고 치앙마이 일요 야시장으로 떠나보려 한다. 가서 군만두를 먹을 예정이다.


40 BAHT (1600원) 짜리 치킨 국수 JMT. 사진 크기는 왜 안 줄어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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