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ibaD Nov 02. 2022

치앙라이에서 맞은 첫 주말

노마딩 15일 차의 기록 || 서울 > 치앙마이 > [치앙라이]

나였을 수 있고, 내 가족, 내 친구, 내 연인이었을 수 있습니다.

애도의 마음을 전합니다.




치앙마이 버스 터미널에서 치앙라이 가는 버스를 기다리는데

한 시간 정도 여유가 있어 길 건너 이발소에 갔다. '바버샵'이라고 쓰여있길래 '아 태국은 다 이발소라고 하나보다'며 자리에 앉았다. '유 원트 롱 오얼 숏' 하길래 조금만 다듬어 달라는 의미에서 '롱롱'이라고 했다. 

순간 바리깡이 내 관자놀이를 스쳤다. 그곳은 한국에서도 그루밍족 남성들만 간다는 진짜 '바버샵'이었다. 바버샵 파레토 법칙에 따라 시간/정성의 80%가 내 구레나룻에 투자됐다. 나머지 머리는 그냥 쓱쓱 잘라주셨다. 머리 털나고 처음으로 칼각 구레나룻을 갖게 됐다. 나의 여성성이란 귀 언저리에서 자라나는 머리카락에서 나오는 것이었을까? 삼손도 아니고 마음이 허전했다. 아무튼 나의 오만함 덕분에 나는 멋쟁이 치앙마이 남성들이 하는 머리 스타일을 하고 다닌다.

(오해의 소지가 있어 덧붙이자면, 나는 원래부터 귀가 보이는 짧은 머리였다. 다만 바리깡으로 만들어진 머리는 아니었고, 옆머리와 뒷머리가 복슬복슬하게 있었다)


나는 내 눈높이에 맞는 생활을 유지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노마딩을 시작하고 일박 만 원짜리 숙소를 돌아다녀 보니, 내가 없이 살 수 없는 것들을 특정할 수 있게 됐다. 나는 얼마나 선택받은 환경에서 자라왔는가! 앞으로는 돈을 더 내더라도 얘네를 챙기고 싶다.

온수와 수압: 이게 돈을 더 내야 갖춰지는 옵션이라니, 상식은 연약하다

조용함: 오토바이가 차만큼 많고 소음이 심해서, 대로변에 있는 숙소에서는 귀마개를 끼고 자도 계속 깼다

햇볕: 그늘진 방은 아무리 환기를 해도 냄새가 난다

책상: 저녁 6시면 카페들이 문을 닫기 때문에, 야행성인 나는 방에서 일해야 한다. 침대맡 전등을 둘 탁자도 있으면 좋겠다

화장실 창문 혹은 강력한 환기 장치: 없으면 고온다습한 기후와 맞물려 스트레스 상승작용을 일으킨다

청소 서비스: 나는 그동안 공동주거시설(논스어쩌다 4인가구)에서 살아왔는데, 장점 중 하나는 돈을 모아 청소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보안: 건물들이 낮고 개방형이기 때문에, 창문이 잠가지지 않으면 나를 지켜줄 것은 내 메추리알만 한 알통뿐이다


낯선 도시에 도착하면 종종 구글 지도에서 편의점을 검색해본다

그러면 세븐일레븐 본사 개점팀이 열심히 유동인구를 분석한 결과를 써먹을 수 있다. 도심과 주요 거리가 손쉽게 파악된다. 세븐일레븐은 세계 최초의 편의점 브랜드로, 1927년 미국 텍사스의 '제빙 회사'에서 얼음과 함께 신선 식품을 팔다가 오전 7시-밤 11시 영업시간과 시너지가 폭발해 아예 '편의점'이 됐다고 한다. 일본 지사가 폭풍 성장하며 미국 본사를 인수해 지금은 일본 회사다.

여기 생활 곳곳에서 일본 기업이 보인다. 차와 오토바이부터 시작해서 샤워기마다 달린 온수 히터까지 전부 일본산이다. 일본의 장인정신(모노/쯔꾸리, 물건/만들기) 이 전 세계적으로 경쟁력 있는 제품을 만들었다면, 그걸 가지고 전 세계에 '쇼부(勝負, 승부)' 보는 건 상사였을 거다. 일본 3대 재벌인 미쓰이, 미쓰비시, 스미토모 모두 종합상사가 있다. 수출주도 경제성장을 한 한국, 대만, 중국도 이를 본떠서 상사를 만들었다고 한다.

치앙라이 다음에는 빠이라는 곳에 가고 싶은데, 그 둘을 잇는 도로가 없어 치앙마이에 들렀다가 가야 한다. 지금 내 방에는 고물상에서 주워온 것 같은 파나소닉 선풍기가 돌아가고 있다. 미생들이 처음 선풍기를 바리바리 싸들고 태국에 왔을 때는 치앙마이까지 가는 길도 없었을지 모른다. 이것이 개척 정신인가!


신라의 미소처럼 태국도 태국의 미소가 있다

만나본 모든 태국 사람들이 나를 친절하게 대해줬다. 길 걷다 들어간 한 식당은 밥은 거의 다 남겼지만 (내가 못 먹는 마라 메뉴를 시켰다) 주인아주머니의 따뜻한 미소를 다시 보기 위해 또 가고 싶을 정도다. 오토바이 무면허 운전을 하다 (태국도 한국처럼 50cc 이상은 원동기 면허가 별도로 있어야 한다) 경찰 단속에 걸린 적이 있는데, 경찰관마저 범법 외국인인 나를 시종일관 부드럽게 웃으며 대해줬다. 그 미소가 아직도 머릿속에 선명하다.

치앙라이 도착 첫날, 숙소 근처에서 밥을 먹는데 바비인형의 섹시 잠옷같이 생긴 분홍 원피스를 입은 사람이 들어와서 식당 주인과 이야기를 나눴다. '패션 주권을 쟁취하셨나' 속으로 뒷담을 까는데 눈이 마주쳤다. 그녀 역시 내게 부드러운 미소를 보여줬다. 머쓱함과 미안함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역시 사람을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면 안 된다. 밥을 다 먹고 식당을 나서는데, 바로 옆 술집에서 그 여자와 그 여자를 품에 안은 나이 든 백인 남자를 봤다. 눈이 마주치자 그녀는 다시 한번 내게 그 미소를 보여줬다. 


갑자기 어지럼증이 몰려왔다. 도망치듯 그 거리를 벗어나려는데 '넷플릭스 여주가 힘든 일을 겪고 오늘 밤 망가져볼까를 다짐하면 입고 나오는 검은 원피스'를 입은 여자가 웃으며 내 앞길을 가로막았다. 금발로 염색한 현지 여자들이 내 쪽으로 다가왔다. 때마침 나는 치앙마이 쿨가이 머리를 하고 있었고, 그녀가 내게 권하는 게 마사지인지 뭔지도 알 수 없었다. 평소 즐겨보던 액션 영화 추격 장면처럼 차도로 뛰어들어 그녀들을 따돌렸다.

나는 왜 그렇게까지 당황한 걸까? 울긋불긋한 조명의 마사지샵들을 보고도 눈치채지 못했을까? 나는 무엇을 본 걸까? 무엇을 기대했던 걸까? 나는 왜 아직 괴로운 걸까? 나는 뭘 잘못한 걸까? 나는 바비 잠옷을 입은 젊은 아시아인 여성일까 아니면 그녀의 어깨를 어루어만지던 늙은 백인 남성일까? 마음을 녹이는 그 미소가 없었더라면 괜찮았을까?

당장 치앙라이를 떠나고 싶었다.


숙소를 옮기자 모든 문제가 해결됐다.

맹모삼천지교의 가르침에 뼈가 저려온다. 학군은 어른들에게도 정말 중요하다. 지금 머무는 숙소 근처에는 대형 병원과 대학교, 초등학교, 경찰서와 교육청이 있다. 이전 숙소와 1.5km 밖에 떨어져 있지 않고, 도심(City Center/Main Street)에 가까운 건 오히려 퇴폐업소로 둘러싸인 전 숙소기 때문에 무슨 영문인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이 동네는 새들도 더 아름답게 지저귄다. 

치앙라이에서는 치앙마이보다 외국인과 현지인의 생활 반경이 겹쳐진다. 식당에 영어 메뉴판이 잘 없어 주인장이 일러주는 대로 먹는다. 야시장에 가도 현지인들과 같은 거리에서 같은 고민을 하며 서성인다. 무에타이를 배우러 갔는데 태국어 못하는 사람이 나밖에 없어서 태국어로 수업을 듣고 말았다. 오늘은 걸어서 20분 정도 떨어진 우체국에 다녀왔는데, 구글 지도에도 '번화한 동네(busy area)'라고 나오는 번동이었지만 (황인종이 아닌) 외국인이 한 명도 없었다. 세븐일레븐 대신 좌판이 쭉 늘어서있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현지 친구를 사귀는 방법은 잘 모르겠다. 관광 인프라에 '현지 또래와 교류' 같은 것도 포함되면 좋겠다.


나같이 소화기관 안 좋은 멸치를 곤란하게 하는 방법은 먹을 걸로 마음을 표현하는 거다. 

해가 저물면 치앙라이 대로변에 하나 둘 이동식 노점상이 모습을 드러낸다. 주변을 어슬렁거리다 현지인들의 발걸음이 머무는 곳에 쫓아가 줄을 선다. 주인장이 내게 대뜸 중국인이냐고 묻길래 "나 아닌데? 너 중국인이니?" 라며 짧은 중국어를 뽐냈다. 주인장은 대만 사람이었는데, 중국어 하는 사람이 반가웠는지 선물이라며 두유를 한 사바리 건넸다. 

마음이 담긴 음식은 남길 수가 없다. 열심히 마시다 배불러서 봤더니 4/5가 남아있었다. 단전에 힘을 주고 꿀꺽꿀꺽 마셨더니 2/3가 남았다. 내가 주문한 게 30밧(1 BAHT = 40 KRW) 어치였는데, 이 두유가 15 바트짜리라는 걸 알게 되자 등에서 땀이 뚝뚝 흐르기 시작했다. '안되면 되게 하라' 정신으로 거의 다 마셔갈 때쯤, 가라앉아있는 은행 열매 같은 건더기들이 보였다. 그래서 숟가락을 꽂아줬구나.

다 먹고 짜이찌엔을 외치며 집으로 돌아왔다. 꽈배기 같은 빵과 그걸 찍어먹는 달착지근한 판단 커스터드 크림은 엄두가 나지 않아 봉지에 숨겨 집에 싸왔다. 


두유와 판단 커스터드와 꽈배기


심심한데 말할 사람도 없으니 글을 자주 쓰게 된다. 좋은 건가 나는 주변 사람들 모두에게 노마드 생활을 추천해주고 싶은데, 좀더 짬을 쌓고 권유하기 위해 아직 말을 아끼고 있다. 다만 노마드 생활이 지속 가능하려면 외로움을 잘 달래줘야 한다는 건 이미 배웠다. 다음번에 베테랑 솔로 노마더를 만나면 비결을 물어봐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치앙마이에서 맞은 첫 주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