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데리고 놀았던 고양의 시점에서 본 나. 얼마나 얼빠져 보였을까
고양이의 눈에 비친 나는 어떤 모습일까. 가끔 눈이 마주칠 때면 저 녀석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궁금하다. 아마 저 자식도 내 머릿속이 궁금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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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동물들은 모두 비슷한 이유로 행복하지만, 불행한 동물들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특히 두발 동물들은 각기 다른 고약한 냄새를 풍기며 각기 다른 독특한 이유로 불행했다. 불안정한 두 발로는 행복으로 가는 단순한 길을 걷기 어려운가 보다. 하루 단 한 번, 햇살이 가장 길고 깊게 치고 들어오는 그 황금 같은 시간대를 알아보는 놈이 없다. 너그러운 태양은 매일 새롭게 기회를 주건만. 각자의 불행에 몰두하느라 태양의 일과를 따라 살지 못한다. 무엇이 중요한지 모른다.
오직 네 발 동물들만이 볕에 속털을 드러내고 벌름벌름 여름이 오는 냄새를 맡는다.
이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호기심이 없다. 이들에게 상자는 그냥 상자일 뿐이다.
이들은 꽃잎처럼 연약한 종족이다. 털옷뿐 아니라 온몸의 근육과 감각기관까지 모조리 퇴화해 버렸다. 그나마 앞은 좀 보이는 것 같다. 그래서일까, 시각에 지나치게 의존한다. 상상의 날개가 꺾여 있다.
나의 먼 친척벌인 여우가 말하길, 그는 단 한 명의 호기심 가진 두발 동물을 만나봤다고 한다. 나에게 캔을 따주는 이들과 같은 종족은 아닌 듯하다. 이들은 상자 안의 양이나 코끼리를 상상할 줄 모른다. 이 별에서는 나 홀로 상자를 가지고 이리저리 뛰놀 뿐이다.
이들은 상자를 뛰어넘을 근육도 없지 참.
상상력이 부족하다 보니 온갖 잡동사니를 자기 보금자리 안에 둔다. 필요한 물건뿐 아니라, 필요한 물건으로부터 상상해 낼 수 있는 온갖 필요 없는 물건들까지 둥지 안으로 끌어모은다. 그래서인지 이들의 둥지는 쓸데없이 크다. 사냥도 할 줄 모르는 무능하기 짝이 없는 이들은 어떻게 큰 둥지를 갖게 되었나? 이들은 아마도 멸종위기에 처해있다. 내 생에 갓 태어난 두발 동물은 냄새도 못 맡아봤다. 그래서 개채끼리의 영토 분쟁이 없는 듯하다.
번식력도 약한데 사냥마저 하지 못하는, 가을철 발바닥 밑 낙엽 같은 이들이 어떻게 지금까지 종족을 보존했던 걸까?
이들은 사육되고 있다. 먹이를 구하는 데 어려움이 없다. 어려움이 없는 게 아니라 지나치게 쉽다. 방종에 빠져 허우적댄다. 매 끼 필요 이상으로 먹는다. 높은 확률로 그들이 배급받는 먹이에는 식욕촉진제가 들어있다. 그들은 아마 식용으로 사육되는 것 같다.
그다지 맛있어 보이진 않는데 말이다.
자유를 잃은 이들은 추위와 굶주림을 모른다. 자신이 무엇을 잃었는지도 모른다. 무엇을 대가로 이 뽀시라운 삶을 얻었는지.
이들과 같은 가축은 시간이 많다. 추위와 굶주림으로부터 자유로운 시간.
두 발 종족은 과연 무엇을 하며 이 시간을 보낼까?
구체적으로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지는 나도 잘 몰랐는데, 이번에 어떤 두발 동물 집에 잠깐 머물며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됐다.
캣닢.
이들은 하루 종일 캣닢을 하며 시간을 죽인다. 이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홀린 듯 손 안의 상자를 바라보며 가만히 앉아있는다. 처음에는 나보다 멍 때리기를 잘하는 종족인 줄 알았다. 하지만 자세히 보니, 이들의 동공은 상자에서 뿜어 나오는 빛에 계속해서 반응했다. 그래서 깨달았다. 이들은 캣닢을 눈으로 먹는 것이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들 같은 중독자를 가까이 두면 나도 하루 종일 캣닢에만 탐닉할 텐데, 이들의 캣닢은 냄새도 맛도 없으니 나는 구제불능의 중독자가 될 위험 없이 인생에서 중요한 것들을 계속 누릴 수 있다.
오늘 낮에도 볕이 바람에 스치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