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o the Unknown
2019.12.30의 일기 - 5월 업로드 주의
같이 사는 논스 91년생들끼리 모여 "라떼" 토크를 진하게 내려 마셨다(때마침 호프집 bgm이 티아라와 버벌진트 사이를 오갔다)
스무 살이 되기 직전 날의 기록이 아무도 없어서, 마흔을 바라볼 때는 오늘을 되돌아볼 수 있도록 다 같이 일기를 쓰기로 했다.
어젯밤에 지원한 스타트업에서 오늘 아침에 당장 저녁에 면접 볼 수 있냐고 연락이 와서, 아침에 일어나 수영하고 HMR 먹고 신문을 보고 베이킹하시는 논스 분께 크루아상을 얻어먹고(JMT; 그분은 탄소 배출 모니터링 npo에 다니셨는데 너무나 흥미로웠다) 나의 소일거리(유튜브를 비롯한 소위 사이드 프로젝트)를 몇 가지 처리하고, 그 기업을 빠르게 구글링해 보고 면접을 보고 왔다.
논스(논스 브런치 재밌어요)는 강남구 언덕배기에 있는데, 알프스산맥과 꼭 같은 청정 지역이다. (웬만한 전동 킥보드로는 오를 수 없는 비탈길이라 예를 들어 관절이 좋지 않은 꼰대들은 오르지 못한다) 그곳에서 친구들과 요들레히호 노래를 부르던 나는 면접을 보러 주류 사회로 내려왔다가 근속기간이 짧으면 조직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을 수 없다는 꼰대의 진심 어린 조언을 듣고 "네넹"이라고 답변한 뒤 논스 친구들과 "인투디 서른~~~~" 술자리를 가졌다.
이 정도면 20대의 더할 나위 없는 마무리인 것 같다. 코끝을 스치는 차가운 불안과, 함께하는 사람들의 온기!
서른이 되기 전에 (내 물욕의 크기와 상관없이) 인간 생활에 꽤 많은 고정비용이 발생한다는 점을 깨달았고, 내 사업이라 부를 만한 걸 벌였다가 (수백 가지 이유가 있겠으나 Product-Market Fit을 찾지 못했다 정도로 정리할 수 있겠다) 소태를 씹는 아쉬움으로 접어봤다는 점이 좋았다. 돌이켜보면 대학 생활도 기깔나게 젊음을 낭비하는 초호화 "좋을 때다" 시절이었고, 회사 생활도 다 더 비싸게 주고 하지 못한 고생이었다. 좋은 기억만 남겨주는 휘발성 메모리에 감사합니다.
그나저나 10년 후에 브런치에서 이 글을 찾을 수 있을까? 싸이월드처럼 문 닫는 건 아닌지 걱정이다. 다른 일기장을 찾아봐야겠다 (불멸의 공책이라는 블록체인에 기록하면 어떨까)
이미지 출처: 겨울왕국2, 구글에 "into the unknown" 치니까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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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국한 지 5년이 지난 이 시점에서 이 글을 "이인턴 블로그"에 올리는 이유는 단순하다. 브런치북을 만들기 위해서는 최소 10편의 글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워싱턴 D.C. 에서 내가 썼던 글은 총 8편이고, 나는 '브런치북 통계'라는 기능을 써보고 싶기 때문에, 이렇게 <인투디 서른> 일기를 끼워 파는 것이다.
이 글의 개연성에 대해 나름대로 변명해보고 싶은데,
워싱턴 D.C. 에서의 싱크탱크 인턴십을 마치고 나는 내 일상으로 다시 복귀하는 데 꽤나 애를 먹었기 때문이다. 이 어려움은 '아산서원'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나와 같은 인턴십 프로그램을 누렸던 사람들 모두가 보였던 증상이기 때문에 '아산병'이라는 진단명을 얻었다.
코카서스 지역의 regional stability와 economic prosperity에 대해 고민하던 나는(그 지역이 어딘지 이제 까먹었다) 인턴십이 끝나면서 갑자기, '아산 뽐뿌' 없이는 한낱 과년한 취준생에 지나지 않는다는 차가운 현실 바닥에 내동댕이쳐진 것이었다.
그때의 충격 (마치 그리스 귀족으로 살다가 출생의 비밀이 밝혀져 "자 이제부터 넌 개똥이다. 밭을 갈아라"라는 말을 들었을 정도의 충격이었다)에도 불구하고 잘 극복하여 약간의 현실 감각을 갖춘 백수서른이 되었으니, 어찌 기쁘지 아니한가!
그나저나 마지막 한 편 뭐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