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싱글 침대 2개를 사도 결국은 부동산으로 흘러가는 인생
나는 드라마 ‘미스함무라비’, ‘악마판사’의 작가이신 문유석 판사님의 글을 좋아한다. 군더더기 없는 담백함이 매력적이다. 문유석 판사님은 <개인주의자 선언>이라는 책을 통해서 처음 알게 되었다. 사실 책 제목부터 마음에 쏙 들었다. 서울대 법대 출신의 판사가 집필한 ‘개인주의자 선언’이라니. 약간 모순 같지만, 선언적인 멘트를 제목으로 뽑은 것부터 너무 멋지지 아니한가.
현 사회를 비판하는 글 중에서 내가 밑줄 찍 한 부분은 아래와 같다.
“남부럽지 않게’ 살고 싶다는 집착 때문에 인생을 낭비하는 이들을 접할 때마다 드는 생각이 있다. 그냥 남을 안 부러워하면 안 되나. 남들로부터 자유로워지면 안 되는 건가 … 이런 사회에서 받는 스트레스는 타인에 대한 관용 부족으로 이어져 약자 혐오와 위압적인 공격성을 낳는다. 약자는 자기보다 더 약자를 찾아내기 위해 필사적이다.”
우리 사회는 수직적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사회 구성원들이 추구하는 가치가 획일화되어 있고, 한 줄로 서열화되어있다는 뜻. 그렇게 때문에 학벌, 사는 동네 등 이 모든 것에서 일등을 하지 않으면 항상 ‘배가 고플 것이라는 것.
요즘 초등학생들은 “너네 집 몇 평이야?”라는 질문을 스스럼없이 주고받는다고 한다. 사는 곳이 어딘지, 몇 평인지에 따라서 일차적으로 그 사람의 부를 측정하는 것 같다. 그리고 자가인지 전세인지 여부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해외에서 살면서 나에게 “어디에서 살아요?”라고 물었던 질문은 한 번도 없었던 것 같다. ‘자가이냐, 월세이냐’라는 질문은 더더욱 없었다. 나의 취미, 경험 등 ‘나의 인생’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는 질문이 대부분이었지, 나의 사는 곳, 나의 남편이 하는 일 등 이렇게 나의 ‘환경’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을 줄을 몰랐다. 하지만 물들어 간다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유사한 질문을 하는 나를 본다.
올해 전세를 연장하기 직전에 마음을 졸였다. 집을 살 수 있는 기회는 안드로메다로 날아간 것 같았고, 전세 가격 역시 눈뜨면 매일 올라가고 있었다. 주변의 영끌족을 보면서, 내 마음도 급해져 갔다. 어느 날 주말에 산 위에 있는 카페를 갔는데, 내가 남편에게 “이 많은 아파트 중에 어떻게 내 아파트 하나 없을까”라고 말했더니, 남편은 그 질문을 이미 3년 전에 했다고 한다.
결혼식 준비 때에도, 슈퍼싱글 침대 2개를 붙여서 대형 침대를 만들었다. 그랬더니 한 친구가 말하길, “나중에 30평대 집을 구매할 수 있겠냐”, “왜 이렇게 침대를 큰 거 사냐”. 난 그냥 남편이 늦게까지 일하고 들어올 때, 침대 울림을 느끼기 싫어서 구매한 것인데 그게 평수와 직결되는 질문으로 이어질지 상상도 못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친구도 그때는 ‘자가 마련’에 대한 고민을 한창 하고 있을 때라 그런 것 같다.
막상 자가에 사는 친구들은 말한다. 집을 마련해서, 안도감은 들지만 그게 큰 행복으로 다가오진 않는다고. 어차피 사는 집이고, 또 이사를 하려면 거기에 대한 비용이 들기 때문에 그냥 앉고 사는 목돈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한다.
엄마가 되어보니, 나의 아이를 서열화된 세상 속의 일원으로 넣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이 든다. '남부럽지 않게' 아이를 키울 필요도 없다. 지금 이 순간, 그저 나와 함께 이 세상을 같이 살아가는 것만으로 감사하다. 나의 가치관이 군중심리에 휘둘리지 않고 더욱 바르게 서있어야만 한다. 결국 해답은 비교하지 않고 묵묵하게 내 기준대로 살아가는 것인 것 같다. 상향 비교이던 하향 비교이든 간에 비교의 끝은 없고, 그냥 내 기준에서 내 마음 만족에 따라 살면 되는 것이다. 비교의 끝은 없으며, 확실한 건 행복의 지름길이 아니라 이탈길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