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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발 Apr 18. 2021

[오름을 만나다] 남원 물영아리

글재주는없어요. 오름을 걸으며 들었던 생각을 남겨봅니다.

시작하자마자 드넓은 초원이 펼쳐진다. 

맑은 하늘 아래 삼각형으로 솟아있는 오름이 보인다. 나무가 빽빽하게 오름을 감싸고 있다.

다양한 초록색을 만날 수 있음에 감사함을 느낀다. 

한 발짝 내딛는 것에서도 행복감이 밀려온다. 


둘레길처럼 되어 있는 초입을 지나면 안내표지와 함께 갈림길이 나온다. 

계단을 타고 습지로 직행할 것인가 오른쪽 숲길로 돌아서 올라갈 것인가. 

나는 당연히 속도보단 느림의 미학이다. 오른쪽 길로 발걸음을 옮긴다.


나무 이름은 잘 모르지만 다양한 나무가 함께 어우러져있음에 마음이 평화로워진다.

나무 사이로 햇살이 예쁜 빛을 뿜으며 직선으로 곧게 뻗는다. 

오른쪽을 둘러보니 돌이 성벽처럼 겹겹이 쌓여있다. 중잣성이라는 안내와 함께. 


어느 순간 숲에는 나무와 땅과 바람과 나만 존재하는 기분을 느끼게 해 준다. 자연스레 걸으며

나와 주변, 자연, 사회, 행복에 대해 생각해본다. 1가지에 집중하기는 어렵지만 자연스럽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발자국 소리에 귀 기울인다. 


중간중간 오르막길이 존재하지만 힘들다기보다는 재미있는 요소로 작용한다. 비자림으로 보이는 나무 터널을 지나 다시 한번 갈림길에 선다. 

습지를 올라가는 길과 기존에 걸었던 둘레길을 완주하는 길로 나뉜다. 습지를 보고 다시 내려와 둘레길을 다시 걷기로 생각하고 습지로 향한다. 


계단으로 시작된 길은 계단의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계속된다. 지금까지와 다르게 허벅지가 당기고 종아리에 힘이 들어간다. 운동하는 맛이 느껴지는 구간이다. 

나무 계단이 잘 만들어져 있어 걷는 데에는 불편함이 없다. 한참을 올라가다 보니 습지로 향하는 안내표지가 보인다. 100m 정도 내려가면 습지가 있는 것 같다. 

힘들게 올라왔는데 다시 내려가려니 힘이 좀 빠지긴 하지만 습지에 대한 기대는 더욱 커진다.


가파른 내려 막길을 내려가 보니 크지도 작지도 않은 습지가 펼쳐진다. 

며칠 비가 오지 않아서인지 물이 차 있지는 않지만 습지의 존재 자체만으로도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누군가는 이게 뭔가 하겠지만 나는 충분히 만족스럽다. 자연의 미는 기대치를 가지고 보기보다는 있는 모습 그대로를 봐주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자연이 우리를 위해 치장할 필요는 없지 않겠나.


습지를 구경하고 다시 내려왔던 길을 거슬러 갈림길로 향한다. 그리고 다시 힘들게 올라왔던 나무 계단 구간을 내려간다. 순식간에 내려와 둘레길에 합류한다. 

시작점에서부터 오른쪽으로 한 바퀴를 돌 수 있는 코스였고, 이 중 절반 정도를 와 있는 상태로 보인다. 습지도 봤으니 이제 다시 시작점을 향해 둘레길을 걷는다. 


사람도 없고 새소리와 풀벌레 소리만 가득하다. 돌무더기만 있는 길, 드넓은 초원이 보이는 곳, 나무들이 촘촘히 서 있는 곳 등 구간마다 다채로움이 펼쳐진다. 

무덤이 하나 있고 벤치식 의자가 놓여있는 곳에 다다르자 정말 멋진 초원이 펼쳐진다. 초원 오른쪽에 갈색의 무리가 보인다. 노루다. 

고라니와 노루 구분을 잘 못하지만 직감적으로 고라니가 아닌 노루라고 느껴진다. 3마리가 한 곳에 있고 오른쪽에 4~5마리가 또 있다. 먼 거리인데도 사람을 경계하는 것으로 보인다.


노루들의 휴식처인듯하니 자리를 비켜주는 것이 좋겠다 싶어 서둘러 자리를 뜬다. 

잠깐의 노루 구경과 휴식을 뒤로하고 마지막 길을 향한다. 

오늘따라 하늘이 너무 예쁘다. 짙은 파랑에 하얀 구름. 자연이 주는 선물이다. 위대함을 느낀다.

그리고 요즘은 이런 감정을 느낄 때마다 슬픔이 함께 찾아온다.


마지막 돌로 된 징검다리를 건너자 입구 초입에 갈림길이 다시 나온다. 

처음 만났던 물영아리의 아름다운 모습이 다시 보이고 처음의 반가운 인사처럼 마지막 퇴장 길도 반갑게 인사해준다. 


2시간의 물영아리 트래킹. 계절마다 와보고 싶은 곳이다.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도 든다.

여름에 한 번, 가을에 한 번 와서 물영아리의 또 다른 매력을 느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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