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다른 계기도, 이유도 알 수 없었는데 확신하게 된 것은 작년 초였다. 노력이나 과정의 중요함, 집중하는 연습 같은 것에 대해서는 아직 만족할만큼의 변화는 없는데 도덕, 양심, 태도에 있어서는 아예 다른 아이가 되었다. 그 전에 날 절망스럽게 하던 아이는 온데간데 없고 평범한 아이가 되어 내 앞에 있다.
무척이나 다행이나 나로서는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 뭘 해도 안 될 때는 언제고 갑자기 아무런 계기도 없이? 뭔가 큰 계기가 있어도 될까 말까한 변화가 그냥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난다고?
하여튼 덕분에 나와 아내는 근래 들어 아들에 대해서만큼은 매우 안심을 하고 있다. 하지만 그런 한편으론아무리 따져봐도 이해는 가지 않는다. 부모가 물심양면으로뭘 어떻게 해도 부끄러움도, 반성도, 후회도 없던 아이가 어떻게 갑자기 그토록 바래마지 않던'평범한' 아이가 된 것인지.
어쩌면 아이의 성장이란 매일매일 이어지는 일상에서 조금씩, 어떤 맥락을 가지고 선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닌지도 모르겠다. 아니, 어쩌면 아이만 그런 게 아니라 사람 자체가 그런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여기에 다 적을 수는 없지만 난 아버지가 환갑 넘어 어느 날 갑자기 다른 사람(부정적인 면에서 긍정적인 면으로)으로, 마치 동전 뒤집듯 생활 습관을 바꾼 것을 본 적이 있다. 차이가 있다면 그 때는 한 사건으로 인해 바꾼 것이긴 한데 사실 그것도 따져보면 그만한 사건이 없어서 나쁜 습관을 바꾸지 못했던 것은 아니다. 목숨이 걸린 일도 있었고 경찰에 체포될만한 일도 있었고 온 가족이 불행에 몸부림치며 사정 했던 적도 있었는데 당신은 어쨌든 꿈쩍도 안 했었던 것 뿐이다.
어쩌면 사람은 선을 쭉 이어 그어나가듯 자신을 바꿔나가고 개선, 진보, 혹은 성장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마치 맺고 끊듯, 책 한 챕터나 한 장을 넘기듯 때론 맥락 없이 큰 변화를 만들어내는 존재인지도 모르겠다.
이런 면에서 보면 개과천선이란 실제로 존재는 할 것 같다. 사람을 타자가 고쳐쓸 수는 없지만, 사람은 누가 고칠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는 얼마든지 변할 수 있는 존재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다만 그게 의지적인 것인지 아닌지는 알 도리가 없다.
지금 난 그저 아들을 볼 때마다 놀랄 뿐이고, 대견할 뿐이고, 큰 시름을 놓아 편안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