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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 Jun 21. 2023

팀장으로 일하는 건 뭐가 다를까?

2년 차 팀장, 누리님 이야기

나는 8년 차 콘텐츠 마케터다. 힘들 때도 있지만 내 일을 좋아한다. 앞으로도 계속 이 길을 걷고 싶다. 그런데 연차가 올라가면서 다른 길도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와 비슷하게 연차를 쌓은 사람들이 하나둘 팀의 리더가 되고 있다. 나는 계속 실무자로 일하고 싶지만, 다른 길을 선택한 분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내 일을 잘하는 것과 팀 전체의 성과를 고민하는 것은 완전히 달라 보였다.


그때 누리님 생각이 났다. 6년 전 같은 회사에서 주니어 마케터로 함께한 누리님은 그새 어엿한 2년 차 팀장이 되어 있었다. 누리님께 그동안 어떤 커리어 패스를 만들어 왔는지, 팀장으로 일하는 것과 팀원으로 일하는 것은 무엇이 다른지 물어보았다.



오늘 인터뷰의 주인공, 누리님



1. 패션 디자인 전공자, 마케팅팀 팀장이 되기까지


누리님은 대학교 때 패션 디자인을 전공했다. 하지만 패션을 좋아하는 것과 옷을 직접 만드는 건 다른 일이었다. 패션과 관련된 직업 중 나에게 맞는 건 무엇일까, 학교를 휴학하고 패션 에디터 일에 뛰어들기도 했고 MD 관련 자격증을 따기도 했다. 여러 고민과 시도 끝에 누리님은 뷰티 커머스 앱을 운영하는 회사에 입사했다.


누리: 그때가 2015년이었는데, 패션 앱을 새로 만드는 TF팀에 합류하게 되었어요. 이때 스타트업이라는 말을 처음 알게 되었네요.


여름: 스타트업 TF팀 소속이었다니 무척 바빴겠어요.


누리: 직무 명은 에디터였지만 막내로서 해야 할 모든 일을 했어요. 포장도 하고, 피팅도 하고, 업체에 연락도 하면서 본업으로 글도 쓰고. 그렇게 1년 반을 보냈네요. 새벽에 출근해서 새벽에 퇴근하는 일이 허다했어요. 한 달에 택시비가 20만 원씩 나올 정도였죠.

하지만 그렇게 일했던 TF팀이 어느날 갑자기 정리되었어요. 열심히 일한 만큼 충격도 무척 컸지만, 곧 팀이 재배치되어 메인 서비스를 담당하는 에디터로 일하게 되었죠. 그런데 이전 방식대로 쉬지 않고 일하니까 오후 1시쯤이면 제 하루 치 업무가 다 끝나는 거예요.

처음에야 편했지만, 곧 ‘이게 맞는 건가?’ 싶었어요. 매일 성장한다는 느낌이 없더라고요. 그때 TF팀 시절 진행했던 SNS 마케팅이 떠올랐죠. ‘그거 재밌었는데 좀 더 배워볼까?’ 싶어 찾아보게 되었고요.


이제 막 페이스북 마케팅, 그로스 해킹이 떠오르던 시절이었다. 누리님의 SNS 피드에 마케팅 강의 광고가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마케팅 초보에게 추천한다는 100만 원짜리 페이스북 마케팅 강의를 12월 할부로 결제했다.


누리: 사회 초년생에게 큰 돈이었죠. 그래도 이걸 배워서 마케팅 일을 해보자는 목표가 있었어요. 문제는 배운 걸 살려 취업을 하려니 뽑는 자리가 드물었다는 거예요. 인스타그램도 없었고, 페이스북 마케팅도 이제 막 생겨나던 때였으니까요.

그러다 마침 제가 강의를 들었던 패스트캠퍼스에서 퍼포먼스 마케터를 뽑는 걸 알게 됐어요. 돌고 돌아 그곳에서 퍼포먼스 마케터의 길을 걷게 되었죠.


여름: 저랑 누리님이 함께 일하던 시절이네요. SNS 덕분에 디지털 마케팅이 떠오르면서 퍼포먼스 마케터, 그로스 마케터라는 직군이 생겼던 기억이 나요. 누리님은 그때부터 워낙 일을 잘하셨고.


누리: 잘했다기보다는 열심히 했죠. 그러다가 조금 지겨워졌고요. 같은 회사에서 같은 상품을 다루다 보니 폼이 익숙해지더라고요. 커머스처럼 상품이 다양하거나 매출 변화가 크지 않아서 더 빨리 지루해진 것 같아요. 그때 담당했던 금융이랑 부동산 카테고리 자체는 흥미로우니, 관련 분야로 이직을 해야겠다 생각했어요.

테라펀딩에서는 신사업팀 소속이었어요. 중소형 주택을 개발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고, 이후에는 직접 빌라를 개발해 온라인으로 판매하기도 했어요. 팀이 분리 독립을 하고부터는 제가 팀의 유일한 마케터였어요. 인스타그램이랑 네이버 블로그 하면서 글도 많이 쓰고, 광고 소재도 돌리고. 다양한 일을 했죠.

거기서 2년 정도 일하고 나니 슬슬 커리어 고민이 시작되더라고요. 부동산 쪽은 제품 판매에 마케팅 이외의 요소가 더 큰 영향을 미치거든요. 성장이 정체된 느낌이 들었어요. 사람들은 정말 좋지만 ‘내가 이 회사에서 이 일을 계속하는 게 맞나?’ 싶더라고요.



2. 마케팅팀 팀장은 어떤 일을 할까


누리님이 새로운 회사를 찾는 기준은 명확했다. 해보지 않았던 일이 있는 곳, 새롭게 배울 수 있는 곳. 그래서 커머스나 앱 마케팅을 할 수 있는 회사, 또는 팀장으로서 팀을 이끌 기회가 있는 회사를 살폈다.

그러던 중 패스트캠퍼스에서 함께 일하던 김지훈 팀장에게 연락이 왔다. 이직을 준비한다고 했더니 그는 당장 내일 만나자고 했다. 그동안 패스트캠퍼스는 데이원컴퍼니로 사명이 바뀌었고, 팀장은 데이원컴퍼니의 사내독립기업(CIC, Company In Company) 제로베이스(스노우볼)의 대표가 되어 있었다. 그는 누리님에게 마케팅을 이끌어갈 팀장이 되어달라고 했다.


누리: 그동안 고민하던 선택지 중 가장 많은 조건이 부합하는 제안이었어요. 팀장이라는 자리는 물론, 회사가 추구하는 비전도 마음에 들었거든요.

제로베이스는 단순히 강의를 판매하는 곳이 아니에요. 사람들이 끝까지 공부해서 취업을 하도록 도와요. 저도 계속해서 진로를 바꾸며 살아왔잖아요. 내가 뭘 잘할 수 있는지 배우면서 알아볼 기회가 학교 밖에서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지훈님(제로베이스 대표)에 대한 신뢰도 있었고요.


여름: 그렇게 누리님의 팀장 경력이 시작된 거군요. 한누리 팀장님은 어떤 일을 하고 계세요?


누리: 팀장이 하는 일은 회사마다 다를 거예요. 저는 퍼포먼스 마케팅 등의 실무를 계속하면서 팀 운영을 하고 있어요. 계속해서 몇 달 후, 장기간의 미래를 예측하며 계획을 세우고 있죠.

우리 회사는 이제 막 시장에서의 MVP(Minimum Viable Product, 아이디어를 구현해 핵심 기능만 갖춘 프로덕트)를 확인한 상황이에요. 우리 서비스가 시장에 먹힌다는 걸 알았으니, 이제 더 많은 사람들한테 알려야 하는 단계죠.


여름: 마케팅의 힘이 중요한 시기겠어요.


누리: 커리어 전환을 위한 부트캠프 시장에는 아직 확고한 1등이 없어요. 그 1등 자리를 우리가 점유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 시도해 봐야 할 게 너무 많아요. 일이 많을 수밖에 없어요. 해보지 않은 시도도 계속해나가야 하죠. 저희 팀은 저를 포함해서 11명인데 지금도 사람이 부족해요.


누리님은 다양한 일 중에서도 채용의 우선순위가 가장 높다고 했다. 그동안 자신이 팀원으로 일하며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것이 일하는 분위기와 환경이었다. 이제는 팀장으로서 그것들을 직접 만들어나가야 했다. 다 함께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달리는 환경을 만들려면, 팀에 어울리는 사람을 높은 기준으로 뽑아야 한다. 100명 가까이 면접을 보았지만 최종 합격한 사람은 10명도 되지 않을 정도다.


누리: 처음 팀장이 되었을 때, 팀 분위기를 바꾸는 데 가장 공을 들였어요. 팀을 맡은 초기에는 팀원들이 회사를 신뢰하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개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팀의 분위기 자체가 그렇게 형성된 상황이었어요. 이걸 바꿔야 했어요. 연차나 경험과는 상관없이 다양한 일을 시도해볼 기회를 주는 팀장이 되겠다고 다짐했죠.  



3. 요즘 20대와 함께 일하는 방법


팀장이 되고 첫 1년은 시행착오의 연속이었다. 팀 분위기는 하루아침에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누리님은 회사에서 하고 싶은 일이 많은 사람, 새로운 도전을 계속할 사람과 함께 일하는 걸 지향했다. 누리님이 추구하는 팀의 방향과 맞지 않는 사람들이 연달아 퇴사했다. 팀장으로서의 미숙함도 발목을 잡았다.


누리: 처음 팀장이 되었을 때를 생각하면 팀원들에게 미안해요. 그땐 내가 팀장으로서 능력 있는 사람이라는 걸 증명해야 한다는 생각이 너무 강했어요. 성과를 내야 한다는 부담에 많이 쫓겼는데, 그때 실수했던 게 팀원들에게 전하는 피드백이었어요.

저는 팀원들에게 ‘이 일을 해 주세요'라고만 했지, 이걸 왜 해야 하는지 설명해주지 않았어요. 그땐 일을 해야 하는 이유보다도 일하는 방법을 자세히 전달해 혼란을 없애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거든요. 왜냐면 제가 실무자 때 그랬으니까요. 저는 ‘해야 하는 일이라면 한다' 생각하며 일해 왔어요.


퍼포먼스 마케터로 일할 때, 누리님이 하는 모든 일은 매출과 직접 연결되어 있었다. 매출 목표를 달성해서 함께 일한 사람들 모두의 노력이 인정받는 것. 그게 일을 해야 하는 이유였다. 회사에서의 목표는 물론 개인의 목표도 팀의 매출이었다. 목표가 확실하니 해야 할 일도 명확했다. 누리님과 함께 일하던 시절이 생각났다. 함께 점심을 먹을 때도, 회식 떄 술자리에서도 ”우리 제발 월 매출 기록 한 번 세워 봅시다!" 하던 누리님이었다.


누리: 그런데 이건 제가 특이했던 것 같아요. 누가 팀의 매출을 나 개인의 목표로 삼겠어요. 저는 커리어적인 성장을 정말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고요.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다는 건 팀장 되고서야 알게 됐지만요.


여름: 네? 그걸 이제야 알게 됐다고요?!


누리: 성장을 추구하는 회사들을 다녀 왔고, 그러다 보니 주위에 저랑 비슷한 사람이 많아 놓쳤던 것 같아요. 지금 제로베이스도 성장을 강조하는 곳이 맞아요. 하지만 이제 막 회사에 들어온 사회 초년생들 분위기는 달라요. 취향도 스타일도, 가지고 있는 생각도 다양해요.

하루는 이런 일이 있었어요. 팀에서 제일 일 잘하는, 가장 오래 일한 친구가 저에게 진지하게 얘기를 꺼내더라고요. 내가 이 일을 왜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요. 제가 부탁한 일이 하나 있었는데, 한창 바쁜 시기에 왜 이것까지 해야 하냐는 거예요.


여름: 누리님이 팀원으로 일할 땐 해본 적 없는 질문이었네요.


누리: 처음에 이야기를 들었을 땐 좀 당황했어요. 해야 할 일이니 하는 거지, 그 일을 해야 할 이유를 아는 게 왜 중요할까 하고요. 예상치 못한 질문에 표정을 어찌할 줄 몰랐던 기억이 나요. 그때가 팀장 된 지 1년도 안 된 시기였어요. 정말 힘들었어요. 일할 시간도 모자란데 팀원들 설득까지 해야 하다니. 그냥 나를 믿고 따라와 줄 수 없나, 이런 생각에 스트레스를 너무 받았어요.

그러다 곰곰이 생각하게 된 거죠. 일을 하는 이유가 그분에게 왜 중요할까. 그러면서 나름의 결론을 내렸어요. 저야 직책이 있으니 회사의 여러 내부 정보를 듣고 있죠. 그러다 보니 상황을 바라보는 시야가 넓어지고, 어떤 일이 주어지면 전후의 모든 상황들이 이해가 돼요. 하지만 그 친구에게는 저만큼의 정보가 없을 것이더라고요.

지금 막 20대 중반인 분들에게는 일을 하면서 느끼는 효능감이 중요한 것 같아요. 단순히 돈을 많이 벌고 높은 자리에 올라가는 것 이상으로요. 저는 일을 하는 이유를 알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는 걸 중요하게 여기는 분들과 함께 일하고 싶어요. 그러니 나도 그들의 특징을 이해하고 일을 잘할 수 있도록 설득해야죠.  



4. 의심 내려놓고 신뢰 쌓기


여름: 나랑 성향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게 팀장으로서 쉽지 않을 것 같아요. 또 다른 힘들었던 점도 있나요?


누리: 처음에는 팀원들과 신뢰를 쌓는 게 가장 어려웠어요. 서로에 대한 신뢰가 없고, 각자 일하는 스타일도 모르니까 업무 효율도 낮았고요. 지금은 다행히 저를 신뢰해주는 팀원들이 생겼고, 저도 팀원들을 신뢰하는 방법을 배웠죠.


여름: 오, 저도 한 수 알려주세요.


누리: 신뢰는 직접 부딪히면서 쌓는 거라고 생각해요. 저도 많은 시간이 필요했어요.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내가 먼저 신뢰를 보여줘야 한다는 점이에요.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처럼요.

처음엔 정말 어려웠어요. 팀장으로서 마이크로 매니징을 조심해야 한다고 하는데, 제 경우에는 그것보다도 피드백에 의심을 담았던 게 문제였던 것 같아요. ‘이분은 아직 업무능력이 부족해'라는 생각을 가지고 조언을 했던 거죠.

예를 들면, 저희가 웹사이트에 매주 인사이트 콘텐츠를 발행하고 있거든요. 검색 최적화라던가 여러 가지 기준에 맞춰 글을 작성해야 하는데요. 이걸 제가 피드백하는데 비문이 많다던가, 같은 단어가 여러 번 반복된다던가 아쉬운 점들이 보인다고 가정해 볼게요. ‘이건 누가 봐도 이상한데?’ 싶고, 담당자가 일을 꼼꼼히 하지 않은 것 같고요.


여름: 에디터 경력이 있다 보니 눈에 더 잘 띄겠는데요.


누리: 옛날 같았으면 하나하나 꼼꼼히 피드백해 "여기는 이렇게, 저기는 저렇게 수정해서 다시 보여주세요” 했을 거예요. 그런데 이제는 ‘이분이 왜 이렇게 일을 했을까' 먼저 생각해요. 충분히 잘할 수 있는 분인데 요즘 일이 너무 많아서 바쁘셨나, 혹시 이게 동기부여가 되지 않는 일이었나? 하고요.

생각하는 방식이 바뀌니 피드백 방식도 바뀌었어요. 이제는 수정을 요청하는 맥락을 먼저 전달한 다음, 앞부분에 구체적으로 의견을 드린 후 ‘전체적으로 이 방향을 고려해 다시 살펴봐 주세요'라고 해요. 일이 많아서 급하게 하느라 생긴 실수라면 마감을 연장하거나 업무 우선순위를 바꿔주겠다고 하죠.


누리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상자 밖에 있는 사람>이라는 책이 생각났다. 팀원들을 ‘내 성과를 높이기 위한 수단'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나와 같은 욕망을 지닌 동등한 사람으로 봐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책으로 아는 것과 누리님이 부딪혀서 얻은 경험은 또 다를 것 같았다.



5. 팀원과 팀장의 가장 큰 차이


여름: 확실히, 팀장은 매니징 역할이 중요한 자리네요.


누리: 일을 잘하는 것도 물론 중요해요. 그런데 제일 중요한 건 자신이 있는 회사의 비전과 가치에 얼마나 공감할 수 있느냐인 것 같아요. 그 회사를 성장시키고자 하는 진정성, 회사가 판매하는 상품에 대한 진정성이 있어야죠.

그런 진정성이 있어야 내가 일하는 분야에서 깨어 있게 돼요. 이 산업군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살피고, 계속해서 그다음을 생각하고, 이런 것들 모두 노력이 필요한 일이잖아요. 관심 없는 분야에서 이런 노력을 한다면 너무 스트레스받을 것 같아요. 지금 팀장으로서 저는 우리 회사의 상품에 관심이 많고 진심이니까, 그런 걸 아는 게 스트레스가 아니에요.

아까 채용이 중요하다고 했었는데요. 그것과도 연결되는 이야기에요. 지금 제로베이스가 엄청 유명하고, 누구나 가고 싶어 하는 회사는 아니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면접자가 우리 회사, 우리 팀에서 일하고 싶으려면 면접에서의 제 대답이 중요해요. 우리의 큰 비전과 그 안에서의 업무, 업무의 목적, 우리가 달성할 수 있는 성장을 명확하게 설명해줄 때 면접자 분들이 고마워하더라고요.


여름: 매니징 외에는 어떤 역량이 더 필요할까요?


누리: 넓은 시야를 가져야 해요. 팀원으로서는 당장 해야 할 일을 잘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면, 팀장으로서는 지금 하는 일 다음엔 무엇을 할지 미리 생각해 둬야 해요. 우리 팀이 어떤 걸 더 잘해야 할지, 그땐 어떤 사람들이 필요하게 될지 등등요.


여름: 큰 그림을 그려야 하는 건가요.


누리: 큰 목표를 향해 가면서 그 사이 달성해야 할 작은 단계들을 봐야 해요. 이 정도를 해내면 이렇게 성장할 것이고, 그다음에는 어떤 액션이 필요할지 미리 생각하며 일하는 거죠.


여름: 그런 것까지 모두 생각하다 보면 쉴 시간이 없겠는데요.


누리: 이게 좋은 건지 안 좋은 건지 모르겠는데, 저는 국내건 해외건 연차 쓰고 여행 갈 때 노트북을 무조건 챙겨요. 휴대폰도 로밍해 가서 계속 보고요. 제가 업무 피드백을 하지 못하면 일이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 않잖아요.

아까도 말했듯 우리 회사는 시장을 선점해야 할 시기예요. 그 목표에 다다르기까지는 계속 이렇게 속도를 내야 할 것 같아요. 물론 팀원들이 지치거나 업무가 많아서 성장이 느려지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최소한 저 자신이 걸림돌은 아니었으면 좋겠어요.


여름: 지난 2년을 그렇게 지내오신 건가요. 쉬지 않고 일하는 상황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진 않나요?


누리: 그렇진 않아요. 회사의 목표가 곧 저의 목표이니까요. 제 스트레스보다 더 걱정되는 건, 팀원들이 저와 같은 방식으로 일하게 되는 거예요. 팀에 시니어 마케터가 2명 있는데 저처럼 쉬지 않고 일하더라고요. 쉴 땐 슬랙 끄고 사라지면 좋겠는데 말예요.

일을 열심히 하는 건 좋아요. 하지만 그러다 지쳐가는 친구들을 많이 봤어요. 저야 원래 자극적인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고, 일을 하는 동안에도 쉬는 것 이상의 즐거움을 느껴요.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많잖아요.


누리님은 특히 가정을 꾸리고 싶은 분들의 걱정에 공감이 간다고 했다. 누리님 자신도 결혼을 했고 아이를 낳을 생각이 있기 때문이다.


누리: ‘제가 결혼하고 임신해도 계속 일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하는 분들이 계세요. 팀장으로서 제가 할 수 있는 한 안정적인 환경을 만들어서 다들 좋은 대우를 받도록 노력하려고요. 저도 그분들도 계속 일할 수 있도록, 어디 가서 ‘제로베이스에서 일해요' 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도록요.



내가 누리님과 함께 일한 게 벌써 6년 전 일이다. 종종 연락은 나눴지만, 일 이야기를 깊게 한 건 그만큼 오랜만이었다. 하고 싶은 일을 계속해온 나. 다양한 일을 하며 성장해 팀장이 된 누리님. 우리가 하는 일은 다르지만, 잘하고 싶고 계속하고 싶다는 마음은 같았다.


당분간 내가 팀장이 될 일은 없을 것 같다. 하지만 팀장 누리님에게 중요한 태도 하나를 배웠다. 당장 내 눈앞의 일을 하는 데 그치지 않고, 몇 달 혹은 몇 년 후를 생각할 것. 팀장이 한 팀의 성과를 책임지는 것처럼 나는 내 커리어를 책임져야 한다. 그래야 앞으로도 계속 이 길을 걸어갈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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