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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인환 Feb 27. 2021

널 바라보고 있어_1 정육각형의 통로

그동안, 누군가의 얼굴과 몸짓을 이처럼 뚫어져라 바라본 적이 있던가.

 주위 사람들과 나눌 말이 딱히 없거나, 그들에게 즐거움을 줄 요량으로 내 웃픈 얘기를 꺼내곤 한다.


 자전거를 탄 채 도로 턱을 힘껏 넘으려다 고꾸라져 군데군데 피를 흘렸지만, 사람들이 쳐다보자 태연한 척 다리를 절며 집으로 돌아갔던 일. 신입사원 시절 선배들을 힘들게 만들었던 이해할 수 없는 배려. 자신만만했던 소개팅에서 차인 날 우울한 밤 같은 부끄럽고 못난 것들.


 표정이 없는 내가 태연한 말투로 당당하게 치부들을 털어낼 때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유쾌하게 웃고는 내게 친밀감을 느끼곤 한다. 가끔 심각한 표정으로 "어떡해" 말하며 가엽다는 듯 바라보는 사람도 있다. 그런 반응은 예상하지 못한 것이라 더 태연한 척 미소를 짓고는 괜찮다 말하곤 했다. 속으로는 뭘 그렇게 까지 걱정할 일이냐고, 그들을 이상하게 생각하면서.


 며칠 전에도 나는 점심을 먹는 동안 사람들에게 몇 달 전 소개팅 얘기를 꺼냈다. 내 말끔한 외모 덕분에 첫 만남은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말을 건넬수록 상대방의 답장이 줄어들고, 이제는 대답조차 하지 않는다고. 그래서 어젯밤에는 집에서 맥주를 마시며 쓸쓸히 답장을 기다리다 잠들었다고. 또 차인 것이라고 웃으며 밥을 먹었다. 사람들은 킥킥대며 네가 운전면허가 없어서 그렇다. 또 다큐멘터리 얘기한 것 아니냐. 너 같은 성격은 재미가 없어서 그래 라며 웃어넘겼다. 


 그런데 또 누군가 내게 "어떡해"라 말하며 슬픈 표정으로 날 쳐다보는 것이다. 언젠가는 나를 이해해주는 사람을 만날 것이라고. 그때, 이상하게도 나는 괜찮다고 말하지 못했다. 이내 고개를 숙이고 말없이 남은 밥을 숟가락으로 퍼먹었다.


 퇴근길에 문득, 점심때의 대화가 떠올랐다. 


 "어떡해"라고 말하는 안쓰러운 표정. 어느덧 회사생활 10년 차가 되었다. 그중 누군가와 연애를 했던 일 수를 긁어모아보니 일 년이 되지 않는다. 연애 경험으로 따진다면 난 여전히 이십 대인 셈이다. 물론 그런 순박함을 좋아할 람은 없다. 날 황급히 떠나는 그들에게 말하곤 했다. 내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어쩔 수 없지. 해줄 수 있는 것은 그들의 불편함을 위로해 주는 것뿐이다. "난 괜찮다" 그 위로는 동시에 또 한 번 내게 건네는 것이기도 하다. "난 괜찮다" 그리고 거실 소파에 홀로 앉아 긴 밤을 지새우곤 했다. 다음 날 아침이면 한결 기분이 나아지길 바라며. 다음날 회사에서 또 이 얘기를 꺼내면 그들은 또 한 번 웃겠지. 다만 혹시 또 누군가 "어떡해"라고 말해버릴지 모른다. 이번엔 말하지 않기로 했다.




 밤 12시를 넘기자 사무실 불이 모두 꺼졌다. 


 빌딩의 면적만큼 광활한 실내. 백 개가 넘는 책상과 모니터들이 빼곡하게 정렬되어있다. 홀로 발광하는 모니터 화면은 내게 검열하듯 손전등을 들이대는 것 같다. 눈살이 찌푸려졌다. 오류처럼 꺼지지 않은 하나의 모니터 그리고 하나의 인간. 거대한 빌딩이 정해놓은 시간표를 거스른 부적응자가 된 기분이다. 


 뚜벅-뚜벅. 저 멀리 사무실 입구에서부터 발소리가 들린다.


 정장을 입은 보안직원이 아직까지 퇴근하지 못한 인원들을 찾고 있다. 그들은 나를 잔류인원이라고 부를 것이다. 잔류라는 어감. 미처 잠그지 못한 수도꼭지, 식빵 부스러기 같다. 나는 우발적으로 그들이 들이닥치기 직전 얼른 모니터를 끈 뒤 책상 아래로 숨어들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왜 숨어들었을까. 그리고 이젠 어떻게 해야 할까. 


 어차피 집으로 돌아가려면 보안직원들이 가득한 1층 로비를 통과해야 했다. 만약 내게 어디 있었냐고 물어본다면 그때는 화장실을 갔다거나, 이동 중이었다고 핑계를 댈 수 있다. 혹시 내 말투와 표정이 수상해 보인다면 붙잡은 채 감시카메라를 확인할 것이고, 별안간 책상 아래로 숨어든 내 모습을 찾아낼 수 있다. 애초에 내가 홀로 남아 일하던 순간부터 카메라를 지켜보던 직원은 내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보고 무전을 걸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대수롭지 않게 넘겼을 수도 있고. 결론적으로 내 섣부른 행동은 부질없는 짓이었다. 다시 일어나기도 애매했다. 책상 아래에 무얼 떨어뜨렸다고 해야 할까. 정장을 입은 직원들은 순식간에 내 자리를 지나쳤다. 정적. 이제 난 무엇을 해야 할까.


 사무실의 보이지 않는 공간이 무서워졌다. 백개가 넘는 책상 아래 숨어든 사람이 나 하나라고 어떻게 단정하나. 누군가 바닥 카펫에 무릎을 굽히고 의자 좌석에 턱을 괸 채 흰자 가득한 눈으로 나를 지켜보고 있을지 모른다. 해를 가하려고 말이다.


 겁이 날 때마다 추론을 해보곤 한다. 그 누군가를 분석해보았다. 우선 사무실에 출입하려면 열화상 카메라, 보안팀 직원, 감시카메라가 가득한 로비를 통과해야 했다. 그러므로 회사 동료일 가능성이 높다. 그도 분명 업무가 있을 테고 저녁, 지친 몸으로 집으로 돌아가야 했으나 그러지 않았다. 나에게 해를 가하기 위해서. 어수선한 퇴근 시간을 틈 타 책상 밑으로 숨어들었을 것이다. 주변의 동료가 야근을 한다면 금방 탄로 날 일이다. 혹 지나가던 누군가 숨은 그를 발견하고 "어! 당신 지금 뭐해?"라고 외친다면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고, 건물 전체로 소문이 퍼질 것이다. 게다가 사무실은 24시간 녹화되고 있잖아. 나의 걱정은 이루어질 수 없었다. 픽 하고 새는 웃음을 뱉은 뒤 긴 한숨을 뱉었다. 


 그제야 사무실의 어둠이 편안하게 느껴졌다. 나는 다시 책상에 앉아 조금 더 일을 하다가 몸이 가려워질 때 즈음 데스크톱 전원을 껐다. 팬이 회전하는 소리가 점점 옅어진다. 꺼진 모니터의 검은 화면을 한동안 지켜보았다. 천장에서 부는 에어컨 바람, 잔잔한 기계들의 전파 소리 그리고 내 숨소리가 들린다. 비슷했다. 나는 하나의 무생물이 된 기분이 들었다. 그저 꺼진 전등, 널브러진 서류들처럼. 그것들은 지금 나를 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어떤 생각도 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 내가 아무 생각이 들지 않는 것처럼.


 나는 가방을 짊어진 채 사무실 유리벽을 매만지며 엘리베이터를 향해 걸어갔다. 히터의 열기와 바깥의 밤공기가 만나 미적지근해진 유리를 길게 손가락으로 그어보다가 흠칫, 놀라고 말았다! 동공이 흔들리고 머리털이 곤두섰다. 유리의 질감이 느껴지지 않는 지점이 있다! 멈춰 섰다. 몸에 이상이 생긴 걸까. 유리창 하나가 그새 떨어져 나간 걸까. 몇 번이고 유리벽을 더듬었다. 분명 촉감이 느껴지지 않는 면적이 있다. 한참을 더듬대고 나서야, 그 이상한 면적은 정육각형을 이루었고, 폭이 60cm라는 걸 파악했다. 마치 무형의 통로처럼. 


 하마터면 건물 바깥으로 추락할 뻔했다. 최근에 누군가 지나가는 말로 유리벽이 이상하다 말한 적 있다. 오늘 새벽에 교체하려고 빼둔 것일지도 모른다. 만약 보안팀 직원과 마주쳤다면 내게 미리 알려주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그 빈 공간에서 어떤 바깥의 소리나 풍압도 들어차지 않는다는 것. 고민 끝에 쭈그려 앉아 철제 기둥에 몸을 의지한 채 그 공간에 팔을 집어넣어보았다. 팔의 감각이 느껴지지 않는다! 마치 사라진 것처럼. 내 팔이 어떤 자세를 취하고 있는지 파악할 수도 없다. 두려운 마음이 들었고, 나는 추론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론을 내렸다. 이건, 꿈이야.


 마음이 편해졌다. 심호흡을 하고 그 보이지 않는 정육각형의 통로로 몸을 던졌다.




 던져진 몸의 감각이 느껴지지 않는 반면 시야각은 더욱 넓어졌다. 마치 유령이 된 기분이다. 부유하며 정체된 차들의 행렬, 산기슭을 넘어가며 생각했다. 자, 무엇이 보고 싶을까. 


 우선, 나는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버스를 타며 바라보았던 길을 떠올리며 날아가다가 알게 되었다. 지금. 시간이 멈춰있다고. 간간히 보이는 걷는 사람들은 마치 마법에 걸리기라도 한 듯 걷는 발걸음 그대로 멈춰 있었다. 나는 하강해 그들 곁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유심히 보았다. 육체가 없는 난, 멈춰 선 그들을 만질 수도 말을 걸 수도 없었다. 문득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누군가의 얼굴과 몸짓을 이처럼 뚫어져라 바라본 적이 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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