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편의 시 < 반묘, 광인의 태양, 일식, 교목>를 읽으며 느낌이 쉽게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말과
한자어를 다시 우리말로 번역하며 언어의 결을 오래오래 매만져 주어야 했다. 자료를 찾아 메모한
것을 여기에 옮기며 이 시를 읽는 이들에게 지푸라기만큼의 보탬이라도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사실 그동안 이육사 하면 '청포도'만 떠올리며 일제 강점기와 투사의 마음, 또는 포도의 신맛과 함께
입안에 침이나 고이며 더 이상 알려하지 않고 지나갈 수 있었는데, 이 기회에 시뿐만 아니라 이육사의
평문(평론)과 수필(수상) 등을 읽으며 머리가 절로 수그러졌다,
★반묘(斑猫)
신석초는 이육사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는 조용히 말술을 즐기는 시인이었다. 그러나 취하지는
않는 주호였다. 만취하면 조용히 잠자는 것이 고작이었다. 화사로운 바나 요정에도 더러 들렸고 물론
아는 기생도 있었다. 하지만 육사는 여자에게 담담한 주객이었다. 아마 이것은 구국 지사로서의 그가
정신 단련에 필요로 했던 하나의 계율이었던 같다. 그에게도 단 한 사람 비밀한 여성이 있었다는 것을
짐작하고는 있었다. 단 한 번 그 여성을 바라본 일이 있었다. 육사, 그는 그 이상 여인의 정체를 밝히려
하지 않았다. 작품 〈반묘〉와 〈해후〉는 그 영원한 여인에게 준 꽃다발이다.”
어느 사막의 나라 유폐된 후궁의 넋이기에
몸과 마음도 아롱져 근심스러워라
칠색 바다를 건너와서도 그냥 눈동자에
고향의 황혼을 간직해 서럽지 않뇨
사람의 품에 깃들면 등을 굽히는 짓세
산맥을 늣깃시록 끝없이 게을너라
그적은 포효는 어느 조선祖先 때 유전이길래
마노 이 노래야 한층 더 잔조 우리라
그보다 뜰 알에 흰나비 나직이 날아올 땐
한낮의 태양과 튜맆 한송이 직힘직하고 -<인문 평론 1940,3>
- 사막의 나라 - 이집트를 의미하는 듯, 고양이는 사막의 나라 이집트에서 애완용으로 길러
전 세계로 퍼진 것으로 알려져 있음.
- 유폐된 후궁의 넋- 고양이와 후궁이 연관된 경우는, 일본에서 천왕이 고양이에게 관직을
주고 ‘후궁의 궁녀장’이란 이름을 준 사례와 중국에서 측천무후와 왕 황후의 싸움에 얽힌
이야기가 있다. 시샘 많은 후궁, 날카로운 발톱을 숨긴 고양이처럼 질투심이 강한 후궁을
고양이에게 비유한 표현.
- 몸과 마음도 아롱져- 외양의 얼룩을 내면에까지 투사한 것.
-칠색 바다- 무지개처럼 일곱 가지의 아름다운 빛깔을 지닌 바다. 이 표현은 사막의 나라에서
우리나라까지의 전래과정을 함축하고 있음.
-고향의 황혼- 반묘의 눈빛, 4연의 마노와 연계되어 있음.
-서럽지 않뇨- 서럽지 않으냐. 고양이가 고향의 황혼을 닮은 눈빛을 간직하고 있어 서러움이
더한다는 의미. 그러나 고향의 황혼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에 서럽지가 않다는 의미로도 다가온다.
- 산맥을 늣깃사록 - 느낄수록. 산맥을 느낀다는 것은 고양이가 등을 굽히는 모습에서 산맥을
연상한다는 뜻.
- 마노의 노래야- 고양이 눈을 마노에 비유한 것은 보들레르의〈고양이〉를 비롯하여 많은
작품이 있음. 마노석을 찾아보니 유리구슬 안에 줄이 선명하다. 그 얼룩무늬의 비유.
아마도 이육사는 보들레르의 시를 읽고 <반묘>, 이 시를 지었을 것 같다.
나 또한 보들레르의 고양이에 대한 시뿐만 아니라 많은 문학작품 속의 고양이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았다.
*보들레르 (고양이)
이리 오너라, 내 귀여운 나비야,
사랑하는 이 내 가슴에 발톱일랑 감추고
금속과 마노가 뒤섞인 아름다운 네 눈 속에
나를 푹 파묻게 해 다오.
너의 머리와 부드러운 등을 내 손가락으로
한가로이 어루만질 때에
전율하는 너의 몸을 만지는 즐거움에
내 손이 도취할 때에
나는 내 마음속의 아내를 그려보네.
그녀의 눈매는 사랑스러운 짐승
너의 눈처럼 아늑하고 차가워
투창처럼 자르고 뚫어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미묘한 숨소리, 변덕스러운 향기
그 갈색 육체를 감도는구나.
..................
★광인의 태양
분명 라이플선을 튕겨서 올나
그냥 화화처름 사라서 곱고
오랜 나달 연초에 그슬린
얼 골을 가리면 슬픈 공작선
거르는 해협마다 흘긴 눈초리
항상 요충지대를 노려가다 <조선일보 1940,4,27>
이 시에서의 ‘태양과 ’ 눈초리‘는 서로 일맥상통하고 있다.
- ‘광인’-은 일제 식민주의 자이며
-‘태양’- 은 우리의 행동을 낱낱이 감시하는 존재.
- 라이플- 탄알이 회전하면서 날기 때문에 명중률이 높고 사정거리가 늘어남.
- 튕겨서 올라- 이런 비유는 이육사의 체험에 바탕을 둔 것으로 그는 군사간부학교에서
‘사격 교범’ ‘기관 총학’등을 교육받았으며 특히 권총사격에서 뛰어나 실력을 보였다는 증언이 있다.
- 화화처럼 살아서 곱고 - ‘화화(火華)’는 불꽃, ‘살아서 곱고’는 시인의 치열한 삶의 표현으로
이런 삶은 꽃처럼 격렬하고 화려하기 때문에 곱다고 하였음.
- 공작선- 조선시대에 나라의 의식에 쓰였던 부채. 여기서는 라이플의 서양과 슬픈 공작선의
대조를 생각한다.
- 항상 요충지대를 노려가다 - ‘요충지대’는 지세가 험조하여 적을 막고 자기편을 지키기에
편리한 지대를 뜻하며, 우리나라의 지리학적인 일본, 중국, 북한, 러시아, 미국이 개입하며 넘보는
상황을 표현한 것. ‘항상-- 노려가다’는 자신을 항상 극한 속으로 밀어 넣으려고 애쓰는 자학에
가까운 화자의 준열함을 보여준다. 그리고 불꽃처럼 격렬한 삶을 선택한 화자는 자신이 피할 수도
있는 극한적 상황을 끝내 피하지 않고 삼엄한 경계가 끊이지 않는 요충지대를 항상 의도적으로
노려가는 존재로 그려짐.
......................
★ 일식
쟁반에 먹물을 담아 햇살을 비쳐본 어린날
불개는 그만 하나밖에 없는 내 날을 먹었다
날과 땅이 한 줄 우에 돈다는 그 순간만이라도
차라리 헛말이기를 밤마다 정영 빌어도 보았다
마츰내 가슴은 동굴보다 어두워 설렌고 녀
다만 한봉 오리 피려는 장미 벌레가 좀치렷다
그래서 더 예쁘고 진정 덧없지 아니하나
또 어데 다른 하늘을 열어 이슬 젖은 별빛에 가꾸련다
-----xx에게 주는---<문장 1940,5>
- 쟁반에 먹물을 담아- 전통적으로 일식을 관찰할 때 사용하던 방법을 말함.
- 불개- 전설에서 일식이나 월식 때에 해나 달을 먹는다고 하는 상상의 짐승.
- 날과 땅이 한 줄 우에 돈다- 는 일식은 신비롭고 낭만적인 순간을 환기한다기보다는 ‘하나밖에
없는 내 날(해)을 먹어버린 비극성을 상징한다.
-정양 - 정녕
- 마침내- 3연의 이 마침내는 비극적 체념의 탄식이지만 탄식 뒤에도 주체는 낭만적
도피로 물러서지 않는다고 읽힌다.
- 가슴은 동굴보다 어두워 설렌고 녀 - 오히려 동굴 같은 절망을 설렘 같은 의지를
발휘하기 위한 조건으로 삼는다. ‘동굴보다 어둡다’와 ‘설렌다’라는 두 구문이 ‘어두워서 설렌다’는
인과적 발화로 겹쳐져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절망 가운데서도 오히려 설렘을 느끼는
역설적인 심리상태를 관조적으로 표현했다.
- 다만 한봉 오리 피려는 장미 벌레가 좀치렷다 - 여기서 ‘다만’은 일식이 대단한 것이 아님을
나타내는 표현. ‘한봉 오리’인 것은 해가 하나이기 때문이다. ‘장미’를 해(태양)를 비유로 전제하고
‘벌레가 좀치렷다’는 일식을 장미에 좀이 치는 것으로 비유되고 있음. 여기서( ~~ 렷다 )는 현실에
대한 여유로운 진술로서 틀림없이 그러할 것임을 추측하거나 다짐하는 듯을 나타내는 종결어미다.
- 그래서 더 예쁘고 진정 덧없지 아니하냐 - 상처 받았기에 더 예쁘다는 표현. 그래서 허무하기도
하다는.
- 다른 하늘 - 하늘은 해를 키우는 태반의 의미로. ‘다른 하늘’은 일식이 끝난 후 새롭게 태어난
하늘을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음.
.........................
★교목
푸른 하늘에 다을드시
세월에 불타고 웃든 남아 서서
차라리 봄도 꽃피진 말어라
날근 거미집 휘두르고
끝없는 꿈길에 혼자 설 내이는
마음은 아예 뉘우침 안이라
검은 그림자 쓸쓸하면
마츰내 호수 속 깊이 거꾸러져
참아 바람도 흔들진 못해라
...... ss에게....... <인문 평론 1940,7>
≪교목≫은 일종의 자화상으로 기능하고 있다. = (줄기가 곧고 굵으며 높이가 8미터를 넘는 나무.
소나무, 향나무, 감나무 따위가 있다.)- 차라리 봄에 꽃피는 일로 자신을 치장하지 않을 것이며
내 마음에는 조금도 ‘뉘우침’이 없으며 ‘마침내’ 거꾸러지는 한이 있어도 ‘참아’(차마) 바람도
흔들지 못할 경지에 이르겠다고 다짐하는 것이다. 교목에 비유된 자신을 들어 고도의 응축된
형상화 수법으로 인해 주목받는 작품이다. 첫 연은 절망적 현실을 초극의 조건으로 받아들이는
주체의 인식을 드러낸다.
푸른 하늘에 다을드시 / 세월에 불타고 웃든 남아 있어야 하는 것은 ‘교목’이며
“차라리 봄도 꽃피진 말어라”에 대한 해석과 관련하여 많은 연구가 이루어진 작품이기도 하다.
(박현수)는 이 부분에 대해 스스로를 불태우는 행위 속에 이미 봄이 와 있는 것이기에 봄에 꽃이
피기를 기다릴 필요가 없다는 것. 그리고 (김영무)는 생명마저 부정하는 적극적 허무주의
. (박철석)은 꽃의 거부는 외화 성의 거부, 불변성의 추구. (이승원)은 시류에 휩쓸리지 않는 확고한
저항의 자세. (이남호)는 봄에 대한 기다림의 크기와 그 봄이 오지 않음에 대한 원망이 얼마나
강렬했는지를 보여주는 역설적 표현이라고 했다.
- 낡은 거미집- 낡은 거미집은 자아를 둘러싸고 있는 현실적 조건이지만
- 끝없는 꿈길에 혼자 설레이- 겠다 는 의지와
- 아예 뉘우침 안 이리- 는 아예 뉘우치지 않겠다는 진퇴 불가의 다짐으로 재차 확정된다.
홀로 끝없는 꿈길을 가며 설레는 마음에는 잘못을 깨닫거나 마음속으로 가책을 느끼는 것이 없다.
조금도 없다. ‘아예’라는 단호한 부사를 사용해서 자신의 행동에 대한 뉘우침은 ‘전혀’ 없다는
것을 의지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검은 그림자- 는 단순히 절망적 현실에 대한 비유적 표현만은 아니다. 주체의 신념과 의지가
완전히 소진된 상태에 대한 비유이며 그러한 상태는
- 마침내 호수 속 깊이 겪우러져(거꾸러져) - 교목의 좌절과 죽음과 다름없다며 의지의
불변성과 준열함을 표현한 것이다.
** ss에게.... 는 석정 윤세주의 이니셜과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있음.
윤세주는 육사에게 군사간부학교에 입교를 권하고 주선한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