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보다 앞선 질문, 문제정의의 힘
– 생성형 AI 시대에 우리가 정말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들
이번 주 신기영 디자이노블 대표는 강연을 듣게 되었다. 그의 강의 시작 내용이 흥미로웠다.
“GPT가 뭐고, ChatGPT는 또 뭐지?”
GPT는 언어를 생성하는 모델이고, ChatGPT는 그 모델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서비스’다. 둘의 차이는 단지 기술 구조만이 아니라, ‘어떻게 사람과 인터페이스 하는가’에 있다.
하지만 그는 기술 설명에 오래 머물지 않았다.
“AI를 배우는 것도 어렵지만, AI로 비즈니스를 하는 건 훨씬 더 어렵습니다.”
이 말은 강연 내내 반복되었고, 내 머릿속에 오래 남았다. 왜일까? 기술보다 중요한 건 결국 무엇을 해결할 것인지, 왜 그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정의이기 때문이다.
신 대표는 AI로 무엇을 할지 결정하는 데 있어 ‘문제정의’가 핵심이라고 말한다. 단순히 AI 기술을 배우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문제를 해결할 것인지 먼저 명확하게 정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가 제시한 도구는 CLUE 프레임워크다.
C: Consider – 어떤 비즈니스 상황에서 이 문제가 등장했는가
L: Link – 문제와 리서치 질문이 정확히 연결되었는가
U: Understand – 기술적 해법이 비즈니스 맥락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E: Economize – 기술을 도입했을 때 실제로 효율이 발생하는 지점은 어디인가
이 네 가지는 단순한 질문이 아니다. AI 프로젝트를 시작하기 전 반드시 점검해야 하는 사고의 뼈대다.
AI 기술을 적용하려면 문제를 명확히 구조화할 수 있어야 한다. 그때 도움이 되는 또 하나의 프레임이 Needs/Wants/Fears 모델이다.
고객은 무엇을 진짜 필요(Needs)로 하는가
어떤 감정적 욕구(Wants)로 선택하는가
무엇을 두려워(Fears)하는가
그리고 지금은 무엇으로 대체(Substitute)하고 있는가
이 질문은 고객을 이해하게 하고, 우리 제품의 기능(Features), 효과(Benefits), 경험(Experience)까지 연결하게 만든다. 신기영 대표는 “좋은 프레임워크는 생각을 명료하게 만든다”라고 했다. 유튜브 영상에 구글 번역을 적용한 사례를 보여주며 이렇게 말했다.
“단순히 번역을 넣은 게 아니라, ‘어떻게’ 좋아졌는지, ‘얼마나’ 개선되었는지를 물어야 비로소 ‘기술 적용’이 아닌 ‘가치 정의’가 시작된다.”
강의 내용 중 또 한 번 공감이 많이 된 부분이다.
“AI Taxonomy를 기술 기준이 아니라 문제 기준으로 분류하자.”
많은 기업이 AI를 도입할 때 기술 중심으로 사고한다. 하지만 현실에 맞는 AI 설계를 위해서는, 기술보다 먼저 ‘어떤 문제를 해결할 것인가’를 명확히 정의해야 한다. 실제로 유의미한 AI 활용 사례들은 기술보다 문제 해결을 우선에 둔 접근에서 출발했다. 기술 분류에서 문제 분류로 전환할 때, 비로소 현실에 맞는 AI 설계가 가능해진다.
YouTube: 자동 자막 → 정보 접근성 문제 해결
YouTube는 영상 콘텐츠에 자동 자막 기능을 추가함으로써 청각 장애인이나 외국어 사용자 등 다양한 이용자에게 접근성을 제공했다. 단순한 음성 인식 기술이 아니라, 정보에 대한 접근 기회의 평등이라는 문제를 해결한 셈이다.
Amazon: 추천 시스템 → 초개인화 소비 경험
Amazon의 추천 시스템은 AI의 대표적 성공 사례로 꼽힌다. 구매 이력, 검색 기록, 장바구니 등을 분석해 사용자 맞춤형 상품 추천을 제공한다. 이 기술이 해결한 핵심 문제는 **'소비자의 선택 피로'**였다. 수많은 제품 중 내가 원하는 것을 빠르게 찾고, 구매 결정까지 도와주는 경험을 만든 것이다.
Etsy: 판매자-소비자 매칭 → 창작자의 시장 접근 문제 해결
Etsy는 핸드메이드와 빈티지 상품에 특화된 이커머스 플랫폼이다. 주얼리, 문구, 가구 등 작은 창작자들이 만든 제품을 직접 소비자에게 판매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
AI는 검색 키워드 매칭, 이미지 기반 탐색, 맞춤형 추천 시스템을 통해 판매자와 소비자를 정확히 연결해 준다. 기술적으로는 단순한 매칭일 수 있지만, Etsy가 해결하고자 한 본질적 문제는 '소규모 창작자의 시장 진입 장벽'이다. 이러한 기술 활용은 단순히 판매 증대를 넘어, 창작 기반의 창업 활성화와 지속 가능한 수익 구조라는 사회적 가치를 만들어낸다.
이 지점에서 자연스럽게 떠오른 책이 있다. 이선 몰릭 와튼스쿨 교수가 쓴 『Co-Intelligence』(한국어판: 듀얼 브레인)이다. 몰릭 교수는 AI를 ‘도구’가 아닌 **공동지능(Co-Intelligence)**으로 정의한다. 그리고 함께 일하기 위한 네 가지 원칙을 제시한다.
모든 작업에 AI를 초대하라
인간이 중요한 판단에는 개입하라
AI를 사람처럼 대하되, 역할을 분명히 주어라
지금의 AI는 앞으로 쓸 ‘가장 나쁜 AI’라고 생각하라
그는 주판에서 계산기, 엑셀로 이어지는 도구의 진화처럼 AI도 그 연장선에 있다고 본다. 중요한 건 기술이 아니라, AI와 함께 문제를 정의하고 풀어갈 우리의 태도다.
AI의 시대, 기술을 아는 것보다 문제를 잘 정의하는 능력이 더 중요하다. 좋은 프레임워크는 복잡한 기술을 단순한 언어로 바꾸고, 비즈니스의 중심을 ‘문제 해결’로 옮긴다.
GPT가 대단한 이유는 기술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존재이기에 더 큰 의미가 생긴다.
결국 AI를 어떻게 쓰느냐는 기술의 문제가 아니다
‘무엇을 풀고 싶은가’가 더 먼저 답해야 하는 질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