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는 금융을 더 똑똑하게 했지만, 더 공정하게 만들까?
#1. 금융의 시작은 언제였을까?
금융의 기원은 기원전 3000년경 메소포타미아 지역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농민들은 수확한 곡물을 창고에 보관하고,
이에 대한 기록을 점토판에 새기며 물품을 빌려주고 받는 일종의 대차대조 장부를 만들었다.
이것이 곧 '신용'과 '이자' 개념의 출발이었다.
이후 고대 바빌로니아에서는 이자율이 법으로 정해졌고, 로마 시대에는 법정 금리 개념이 등장했다.
중세 유럽에서는 교회가 고리대금을 금지하면서도 상업활동은 확장되었고, 결국 17세기 영국과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은행 시스템이 본격화된다.
금융은 이렇게 탄생 이후 끊임없이 기술과 제도의 영향을 받아 진화해 왔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그 진화의 다음 단계를 AI와 함께 맞이하고 있다.
#2. 은행원이 줄어든 이유
이번주는 KAIST 한승헌 교수의 인공지능 비즈니스와 금융사례에 대한 강의를 들었다. 강의를 들으면서 얻는 정보와 생각들을 나누려고 한다.
그는 “AI는 이제 금융의 두뇌가 되고 있다”고 말한다.
10년 전만 해도, 대출을 받으려면 은행 지점에 가서 줄을 섰다.
직장 증명서, 소득 증명서, 신용등급표를 챙겨 창구에 내밀고는,
담당자가 “검토해보겠습니다”라는 말 뒤로 며칠을 기다려야 했다.
요즘은 다르다.
카카오뱅크나 토스뱅크 앱만 켜면,
직장을 다니지 않아도, 월급이 없어도 대출 심사가 가능하다.
몇 분 만에 결과가 나오고, 필요한 돈은 계좌로 ‘툭’ 들어온다.
AI가 판단을 대신하기 시작한 것이다.
은행은 더 이상 사람 손으로만 판단하지 않는다.
대출 여부, 이자율, 상환 기간까지 —
AI는 내 소비 습관, 쇼핑 내역, 검색 기록까지 분석해
"이 사람은 갚을 수 있다" 혹은 "위험하다"를 계산한다.
인간이 처리할 수 없는 양의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분석하고,
의사결정을 자동화하며, 금융 서비스의 중심이 되고 있다는 의미다.
이 덕분에 많은 이들이 더 빠르고 편리하게 금융 서비스를 누리고 있다.
하지만 여기엔 보이지 않는 문제가 있다.
#3. 너무 잘 알아보는 시스템의 위험
한 청년이 있었다.
프리랜서로 일하면서 꾸준히 월 200만 원 이상을 벌고 있었지만,
소득증빙이 안 된다는 이유로 은행 대출을 거절당했다.
그래서 그는 결국 고금리 사금융을 선택해야 했다.
AI는 이런 상황을 더 ‘논리적’으로 처리한다.
소득이 불안정하고, 금융 이력이 부족한 사람을
‘리스크가 큰 고객’으로 판단한다.
그리고 그 판단은 거의 틀리지 않는다.
문제는 바로 여기다.
정확해질수록, 기회는 더 빨리 사라진다.
데이터가 없는 사람, 데이터가 부족한 사람,
혹은 과거에 한 번 실패했던 사람은
AI의 판단망에서 ‘위험’으로 찍히고, 그 뒤로는 어떤 기회도 쉽게 허락되지 않는다.
이런 현상은 특정 개인을 넘어서
지역 간, 계층 간 금융격차로 이어진다.
데이터가 많은 도시, 고소득층, 대기업은 더 좋은 조건의 자금을 받고,
그 반대편은 점점 멀어진다.
예측의 정교함이 꼭 공정함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4. 그래도 기술이 희망이 될 수 있는 이유
그렇다고 해서 모든 AI 금융이 배제를 강화하는 것은 아니다.
AI를 통해 포용의 금융을 실현하고 있는 기업들도 있다.
미국의 SoFi는 ‘Social Finance’의 약자로, 금융에 기술과 데이터를 접목해
기존 금융권에서 외면하던 사람들에게 새로운 대안을 제공하는 핀테크 기업이다.
처음에는 학생들을 위한 학자금 대출로 시작했지만,
현재는 대출, 예금, 투자, 보험까지 아우르는 종합 디지털 금융 플랫폼으로 성장했다.
기존 은행들이 ‘신용이 없다’며 외면했던 학생들에게 SoFi는 이렇게 물었다.
"어떤 학교를 다니고 있나요?"
"전공은 무엇인가요?"
"졸업 후 예상 연봉은요?"
AI가 이 데이터를 바탕으로 미래 소득을 예측하고,
대출 여부를 결정했다.
단순한 신용점수 대신, 가능성에 투자한 것이다.
독일의 Kreditech는 또 다른 방식을 쓴다.
공공요금 납부 이력, 통화 패턴, 온라인 쇼핑 습관 같은
'data alternative'를 분석해
신용등급이 없는 사람에게도 소액 대출을 제공한다.
Source: Wired Magazine, “How Kreditech uses alternative data for micro-lending”
또 미국의 FICO는 ‘설명 가능한 AI’를 도입했다.
AI가 내린 신용등급의 이유를 설명해주고, 어떻게 하면 점수를 올릴 수 있는지도 알려준다.
단순히 점수를 매기는 데 그치지 않고, 고객이 스스로 금융 습관을 개선할 수 있도록 돕는다.
#5. 시장을 읽는 AI, 자산도 운영한다
금융에서 ‘판단’이 중요한 또 다른 영역은 투자다.
펀드매니저들이 회사의 재무제표를 분석하고, 주가의 움직임을 예측하며,
뉴스와 시황을 읽어내던 시대가 있었다.
지금은 AI가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는 Dataminr다.
이 회사는 전 세계 뉴스, SNS, 위성 이미지까지 실시간으로 분석해
"어느 회사 주가가 곧 오를 수 있다"는 신호를 포착한다.
심지어 미국 내 9천 개 채석장의 위성 이미지를 활용해 건설업과 자재 산업의 수요까지 예측한다.
이런 기술을 사용하는 곳은 투자자만이 아니다. 국가, 정책 담당자, ESG 펀드매니저들까지
AI가 정리한 데이터를 기준으로 움직인다.
한편, 투자 전략 자체에도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과거에는 ‘퀀트 투자(Quantitative Investing)’, 즉
역사적 데이터와 통계 모델을 활용해 일정한 규칙을 기반으로 투자하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AI가 이 퀀트 전략을 대체하고 있다.
과거 데이터뿐 아니라,
SNS 감성, 위성 이미지, 웹 검색 트렌드, IoT 센서 같은
비정형·대규모 데이터를 분석해 **‘AI 기반 계량 투자’**가 가능해졌다.
AI는 선형적인 규칙에만 의존하지 않는다.
비선형적 관계, 변수 간의 미묘한 상호작용, 실시간 시장 반응까지 감지해
기존 퀀트가 포착하지 못한 패턴을 읽는다.
미국의 Betterment는 AI가 자동으로 포트폴리오를 구성하고
실시간으로 리밸런싱하는 로보어드바이저 서비스를 제공한다.
과거엔 프라이빗 뱅킹 고객만 누릴 수 있던 고급 자산운용 서비스가
이제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투자의 정밀도는 올라갔다.
하지만 역시 중요한 질문은 남는다.
누구의 미래를 기준으로 투자하고 있는가?
#6. 보험료도 AI가 계산한다
보험 산업에서도 AI의 등장은 게임의 규칙을 바꾸고 있다.
과거에는 나이, 성별, 병력처럼 정적인 정보로 보험료를 계산했다면,
이제는 실시간 행동 데이터가 보험료에 반영된다.
대표적인 사례는 Discovery Vitality다.
운전 습관, 식습관, 운동량 등 고객의 건강 및 행동 데이터를 수집해
보험료를 실시간으로 조정한다. 급가속, 급정지, 심야 운전이 많은 사람은
위험 운전자로 간주되어 보험료가 올라가고,
반대로 안전 운전자는 할인 혜택을 받는다.
이처럼 AI는 정적인 과거 데이터 대신
행동 기반 동적 정보(dynamic information)를 활용해
고객 맞춤형 보험을 설계할 수 있게 했다.
또한 미국의 Lemonade는 보험 가입, 심사, 청구까지의 전 과정을
AI 기반으로 자동화했다. 고객의 요청이 들어오면 챗봇이 응답하고,
청구 사유를 판단해 단 몇 분 안에 보상 여부를 결정한다.
이런 변화는 보험을 더 투명하고, 더 정교하고, 더 사용자 친화적으로 만든다.
#7. 도구로서 기술
금융의 본질은 판단이다.
누구에게 돈을 빌려줄 것인가,
어떤 조건으로 대출할 것인가.
그 판단을 사람이 하던 시절엔 느렸지만, 때로는 유연했다.
지점 직원이 "이 사람, 성실하니까 한 번 도와보자"고 말하던 시절.
이제는 AI가 그 판단을 맡고 있다.빠르고 정교하고 실수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AI는 ‘누가 정의를 만들었는가’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를 낸다.
기술은 도구일 뿐이다.
그것이 배제의 도구가 될지, 포용의 기회가 될지는
우리가 어떤 질문을 던지느냐에 달려 있다.
강의를 듣는 내내
"AI는 금융의 두뇌가 되었다."는 말에는 200% 공감이 되었다.
그러나 공정한 판단을 위해 필요한 건 기술이 아니라, 태도다.
우리가 그 기준을 명확하게 알아야 사람이 사용하는 도구로서의 AI도 공정해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