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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 Aug 10. 2022

타협, 지는 게 아니라 숨 고르기라고.

Ep.118 허회경 - 그렇게 살아가는 것


대학생 때, 학보사 학생 기자로 활동한 적이 있다. 당시 보도 취재부로 발령돼, 학교 내외의 이런저런 이야기를 찾아 기사로 썼었다. 오늘 수플레는 그중 기억에 남는 취재일기 하나를 써보려 한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숨 고르기와 타협’에 대한 이야기다.


내가 다닌 대학교는 안성-서울로 캠퍼스가 나눠져 있었는데, 당시 일부 학과 통폐합을 진행한 바 있었다. 이에 대해 학생회와 교수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를 취재하러 갔었다. 학생들은 반대, 교수진은 불합리함이 없는 통폐합이라는 주장을 펼쳤다. 당시 정황은 잘 기억이 안 나는데, 한 교수가 말했던 한 마디가 꽤 오래 기억에 남았다.

“그래서 대안이 있어? 대안을 가져와야 이야기를 하지. 그냥 반대만 하면 결과 못 바꿔.”

당시엔 이건 개 꼰대 노답이구나 생각하고 교수를 노려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보니 그 문장이 조금 이해가 갔다. (말하는 태도는 여전히 납득하지 않는다, 단지 저 문장이 내포한 의미가 와닿았을 뿐)


​남을 설득시키기 위해선, “그건 아니지!” 말고, “그거 말고 이거요” 가 필요했다. ​내가 옳다고 믿는 것을 모두에게 알리려면 합리적인 대안을 내놓아야 ‘설득’이 가능한 것이다.


대안이 없고 힘도 없는데, 성격만 남은 사람을 항상 지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결과적으로 이런 유형의 사람은 항상 패배하고 부정적 결말을 혼자 오롯이 받아낸다. 원하는 대로 세상이 이뤄지지 않는다 생각한다. 근거가 모자라서 설득 못 시킨다는 생각까지 미치지 못하고.


​당시 학생들은 대안이 없었고 그렇기 때문에 결집할 힘도 모자랐다. 결국은 학교의 안은 그대로 통과됐고, 그때 그 학생들은 지금 무얼 하는지 모르겠다. 대학교는 여전히 문제없이 높은 입결과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반대의 근거와 대안을 가져오지 못했기 때문에 아무런 변화를 가져오지 못했고, 의미 없는 일이 됐다.


​우리 어머니도 몇 년 전, 회사에서 나이 어린 여자 과장이 쏘아붙이는 말투를 못 참아 회사를 때려치웠는데, 아직도 그 회사에 대해 미련이 남아 있다. 그만큼 돈을 주는 곳이 이젠 없고, 대안보다는 욱 하는 마음으로 회사를 나와버렸기 때문에.

힘이 없고 명확한 대안이 없다면, 현실과 타협을 해야 한다. 지는 것이 아니라 합리적인 판단이다. 순간의 감정은 생각보다 많은 어려움을 함께 가져온다. 참아야 할 때, 참을 줄 아는 태도는 특히 요즘 같은 시대에 더 필요한 자세 같기도 하다.


봄의 꽃을 틔우기 위해

땅 밑에서 웅크리고 있는 씨앗처럼,


나의 생각을 세상에 투영하기 위해서는 그 시기를 기다려야 한다.​ 그리고 조금씩 힘을 쌓고 하나씩 바꾸면 된다. 대리가 되고 과장이 되어 불합리하게 느낀 것 하나 지워가고, 또 그때의 막내가 커서 또 하나씩 지우면서 나아가도록.




https://youtu.be/hmOOkmynj4A

다 그렇게 사는거라 생각하고 화를 참기~

상처 같은 말을 내뱉고
예쁜 말을 찾아 헤매고선
한숨 같은 것을 깊게 내뱉는 것

쓰러지듯이 침대에 누워
가만히 눈을 감고서
다 괜찮다고 되뇌이다가
그렇게 잠이 드는 것


여성인권도, 정치도 불합리한 모든 것들이 이런 식으로 나아가면 좋지 않을까. 안타깝게도 옳은 것들도 그렇게 되기까지에도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지금은 너무도 당연한 것들이 불과 50년 전에는 당연하지 않았던 것처럼, 아주 찬찬히 긴 시간이 걸려 변화가 된다. (가끔 유튜브에 지하철 게이트를 뛰어넘고, 무단횡단하는 1990년대 영상을 보면 깜짝깜짝 놀란다 ㅎㅎ)


​그 변화에 점 하나 찍지 못할 인간 수명에서, 그래도 하나의 점을 찍어보기 위해선 타협의 자세가 필요하다. 힘없는 잽이 아니라, 가드를 올려 참고 참다 힘 모아 한 방 날리는 스트레이트 펀치 같이!


마치 지금 주식 시장에서 상승장을 기다리는 개미들 같이(?) 나만의 봄을 기다리며 씨앗 안에서 단단하게 힘을 모아볼 것. 성급하게 화부터 내지 말고!



'수요일의 플레이리스트(줄여서 수플레)'는 다섯 명의 브런치 작가가 매주 수요일마다 본인의 에세이가 담긴 음악을 소개하는 읽고 쓰는 라디오입니다. 잠들기 전 이름 모를 누군가가 추천해주는 노래를 듣고 싶으셨던 분들, 즐겨 듣는 노래에 다른 누군가는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을까 궁금해본 적이 있으신 분들이라면 매주 조금은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려주시지 않을까 싶어요.


물론 음악에 조예가 깊거나 전문적으로 음악에 대해서 잘 아는 '음. 잘. 알'들은 아닙니다. 그저 음악을 좋아하고 혼자만 듣기엔 아까운 나의 플레이리스트를 나누고 싶어 하는 사람들일 뿐이죠. 비가 오는 날엔 비 오는 날 듣기 좋은 음악을, 너무 추워서 어딘가에 숨고 싶을 땐 숨어 듣기 좋은 음악을 한 편의 글과 함께 나눠보려고 합니다. 글에 담긴 노래를 들으며 천천히 읽어 내려가시길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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